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박근혜, 반기문, 이시종, 이승훈.
요즘 사석에서 얘기를 나누다보면 언뜻 이들 네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앞의 둘은 최순실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 지도자(?)와 올해 조기대선이라는 것이 전제가 되지만 서민들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 작금의 국가 현안을 해작거리다 보면 이들 두 사람의 이름이 가장 빈도높게 출몰한다. 반면에 뒤의 두 사람은 화제를 지역에 국한시킬 때 역시 가장 많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한가지 공통점은 네 사람 다 지도자의 책임, 이른바 리더십에 관해 거론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간담회를 보고선 이젠 일말의 동점심도 갖지 않기로 했다. 부모 모두를 비명횡사로 잃고 여성 혼자의 몸으로 그 살벌한 권력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느정도 비상식적인 처신, 본인의 말대로 불가피성의 절박함에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그 날의 간담회는 이에 대한 이해는커녕 엄청난 굴욕감만을 더 안겼다.

본인은 억울함을 호소했다지만 이를 듣는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이 저것밖에 안 되냐’는 국민적 자괴감만을 재차 확인했을뿐이다. 오로지 거짓과 변명, 자기 합리화밖에 없었다. 표정이나 말투 어느 것을 보더라도 이 나라 지도자로서의 의연함이나 금도(襟度), 덕(德)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왜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고, 왜 그를 우리는 대통령으로 뽑았느냐는 자책을 수도없이 되뇌이며 세상 인심을 원망해야만 했다. 오죽했으면 원로 한완상은 방송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닌 짐승이다. 어떻게 이렇게 낮은 수준의 사람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뽑았는가 하는 그 부끄러움을 굉장히 가슴아프게 생각한다”고 한탄했겠는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책임감은 과학이 아니다. 그렇다고 논리도 아니다. 나라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임금이 식음을 전폐하고 하늘에 석고대죄를 하는 이유를 어찌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자식의 일탈에 대해 ‘모두가 내 탓이요’를 절규하며 가슴을 쳐대는 무모의 심정을 어찌 논리로써 이해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리더의 책임은 현실에 있다. 제 아무리 잘못 한 게 없더라도 나라가 이 지경으로 파탄났으면 대통령은 그것으로 죄인이다. 그런데 박근혜에겐 이런 모습이 추호도 없다. 오히려 국민, 촛불을 든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살기만 가득하다. 더 늦기 전에 단 한번이라도 국민들의 아픈 마음을 헤아렸으면 한다. 계산된 눈물이나 피해자 코스프레가 아닌 진정으로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하라는 것이다. 박근혜의 리더십은 신년 간담회로 완벽하게 종언을 고했다.

결국 반기문이 대통령에 출마한다. 사람들은 앞으로 있을 살벌한 검증을 얘기하지만 사실 그는 이미 결정적인 검증을 받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23억불 뇌물 수수 혐의는 곁가지에 불과하고 본질은 따로 있다. 그가 대망을 꿈꾸며 오랫동안 박근혜와 친박의 대리후보를 암시한 처신이나, 한일 위안부협의에 치하를 보내고 세월호 참사에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자기목소리를 못 낸 것에 대한 확실한 입장정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안 그러면 그에게 늘 따라 다니는 리더십과 정치력에 대한 우려, 즉 평생 외교관으로 지냈기에 그의 대통령 자질이 불확실하다는 정서적인 비토를 절대로 극복할 수 없게 된다. 명분이 어떻든 하루아침에 말을 갈아타는 행태는 대통령감으로서의 자질론 이전에 그의 정치적 본성(本性) 자체를 의심케 할 것이다.

반기문 지지자들의 전국 모임이 결성되고 특히 고향인 충북에서의 대대적인 분위기 띄우기가 본격화될 전망이지만 그가 내심 기대하는 보수와 중도세력들의 연대인 ‘빅 텐트’의 좌장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이를 두고 썰전의 전원책이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라고 일갈한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치 특히 대권을 전제한 연대는 자기만의 정치세력이 없으면 언제든지 허수(虛數)가 된다. 잘 나가는가 싶다가도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정몽준과 안철수를 봐도 그렇다. 막연한 대중적 인기는 언젠간 무너질 수 있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정권을 잡으려면 적어도 자기 당(黨)은 기본이고 이 것이 안 되면 전국적인 조직구축이 필수다. 몇 백, 몇 천명이 모여 환호하고 고향에서 영웅을 만든다고 해서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니다. 남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어 자리를 차지하는 건 실리를 재는 외교에선 통할지 몰라도 명분과 신념을 중시하는 정치판에선 어림 택도 없다. 지금 반기문한테 필요한 것은 상황마다의 화려한 수사(修辭)가 아니라 리더로서의 일관된 의지다. 이를 오기(傲氣)라고 해도 괜찮다. 반기문에겐 이런 면이 너무 부족하다.

이시종 지사가 사석의 단골 소재가 되는 이유는 단연 MRO(항공정비산업) 및 이란투자유치 무산과 앞으로 3년이나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방송광고를 타고 있는 2019년 세계무예마스터십 때문이다. 이시종 지사 체제에서 양대축을 이룬 이들 두 사업의 실패는 당연히 본인한테 큰 흠집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미 도민 사과도 했고 후유증의 최소화를 위해 힘쓰고 있지만 이에 대한 도민들의 잔상은 쉽게 불식되지 않는다. 두 사업을 놓고 끝까지 정상적인 추진을 강변, 변명하다가 결국 손을 든 것에 대한 평가는 차기 선거에서 반드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이 지사의 리더십과 관련해 무예마스터십을 거론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지난해 1회 행사 이후에 불거진 실패론을 극복하기 위해 이 지사가 직접 지역 여론리더층을 만나 설득한, 이른바 식사정치를 한 성과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무예마스터십에 대한 도민들의 생각은 여전히 생뚱맞다는 것이다. 콘셉트도 그렇고 향후 지속성에 대해서도 부정적 토가 많이 달린다. 이 대회의 국제행사 승인신청을 놓고 여론화의 선수를 치는 건 좋지만 정작 이 지사가 더 매달려야 하는 것은 도민들의 자발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이다. 이를 간과하면 제 2의 MRO, 제 2의 이란투자 사태를 부를 수도 있다.

또 있다. 지금 이 지사에게 필요한 처신은 좀 더 멀리 보는 안목을 가지라는 것이다. 본인이 3선에 도전하든 아니면 동향이자 돈독한 관계인 반기문의 대망론에 편승하든 이시종 지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치적 스탠스를 보여야 앞으로도 선택된 삶을 이어갈 수 있다. 꿀벌처럼 부지런히 움직이며 하나부터 열가지를 꼼꼼히 챙기는 관료형 리더십으로선 더 이상 대중들을 환호시키지 못한다. 이 점에 대해선 유시민의 말이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토기는 몇 뼘 짜리 풀밭만 있어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사자에게는 드넓은 초원이 필요하다. 어디 동물만 그렇겠는가.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선거구 하나를 안전하게 확보하고 다음 선거에서 살아남을 전망만 있으면 충분히 행복해지는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십년 이십년 후를 내다보면서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고 설계하고 변화시켜 나갈 때 비로소 행복을 느끼는 정치인도 있다”

이승훈 시장은 선거사범으로 입건돼 오랜 수사와 재판 끝에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받은 게 여전히 시민들을 자극하고 있다. 특히 요즘 들어선 이 시장 보다는 그의 중도하차 가능성에서 비롯되는 청주시정의 행태를 놓고 말들이 많다. 청주 청원 통합 이후 엇박자가 나던 시정이 정상화되는가 싶더니 이 시장 사건으로 돌연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공무원들이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일만 하지 도대체 선제적, 진취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를 빗대어 청사 주변에 나도는 얘기는 “시장은 휴가중이고 직원들은 연가중”이라는 볼멘 소리다. 가뜩이나 파벌문제로 과거 홍역을 치른 청주시임에도 요즘 청내 최고의 과제는 ‘인사를 점치고 또 이를 분석하는 일’이라는 냉소마저 들린다. 밖에서 만들어내는 말이 아니라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다.

현 시점에서 이 시장이 택할 길은 재선을 향한 좌고우면이 아닌 차라리 정면승부, 마음을 비우고 좀더 전방위적으로 시정에 임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만약 재판에서 이긴다면 향후 재선의 길은 말 그대로 시너지 효과를 알아서 낼 것이고, 설령 진다고 해도 인간 ‘이승훈’은 소신을 다한 시장으로 남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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