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수사 피해자 서원대 김정기 교수, 검찰개혁 제언

2002년 10월 검찰의 충청리뷰 보복수사 불똥이 서원대로 옮겨붙으면서 김정기 전 총장이 뇌물수수혐의로 전격구속되는 법화(法禍)를 당했다. 김교수는 자신의 사건 경험담을 바탕으로 검찰의 자성과 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지난 8일자 한겨레신문 '왜냐면' 칼럼난에 기고했다. 기고된 글의 전문을 소개한다.

송광수 검찰총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원대학교 한국사 교수이며 비리재단 축출 뒤 3년 동안 ‘총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때 청주지검의 구속영장으로 한 달을 구치소에서 지냈고, 올해 1·2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검찰도 예견했을 당연한 결과였는데, 또다시 즉자적으로 상고하는 검찰의 오기 어린 관행을 보고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수갑을 찬 대학교 총장의 모습이, 그것도 입학원서를 받는 첫날 지역 언론·방송에 도배되었으니 ‘돈 먹은 총장의 대학’에 누가 자식을 보낼 마음이 생겼겠습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저를 붙잡아들인 검사장이나 당시의 검찰총장이 저와 고등학교 동문·동창 관계였기에 청주지검은 ‘사심 없는 지검’으로 회자된 반면에 저는 지역주민들에게 ‘틀림없는 수뢰횡령범’으로 치부되었고, 제가 간여했던 시민단체와 대학교는 순식간에 저주의 나락으로 침몰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발단은 엉뚱하게도 용기있고 정의로운 이 지역 주간지의 기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충청리뷰>는 청주지검의 인신구속 양산과 군림하는 검사들의 작태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발끈한 검찰이 신문 발행인을 포함하여 광고주까지 뒤졌으나 이렇다할 성과가 없자 발행인이 저희 학교 미래창조관 토목공사에 참여한 점을 포착해, 그 수사의 방향을 검은돈의 거래라는 건설비리 쪽으로 틀어버렸습니다. 신축공사를 전담하게 된 엘지 사장(저와 대학동창)에게서 20여억원을 챙겼다는 것입니다. 양심과 우정에 기초한 저의 수의계약이 검찰의 오해를 증폭시키는 촉매제였습니다. 그리고 구속 여부를 심사하는 판사는 마침 그 부친이 선거법 위반으로 조사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강아무개 부장검사는 “이 지역 대학교 총장과 신문발행인의 부패 커넥션 척결”이라고 공언했습니다. 슬프게도 시민·노동운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일부 지역언론과 방송이 검찰의 과잉·표적수사를 여과없이 표적과잉 보도(충청일보 기자, 지역언론상 수상)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이 지역의 참언론인과 민주적으로 선출된 총장을 모함하기 위해, ‘검찰과 지역 언론·방송 간의 커넥션’이 구축된 것이지요.

먹지 않은 돈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검찰은 찾고 뒤지고 족쳤습니다. 유능하고 정직한 과장이 구속되었고, 검찰에 불려간 20여명의 직원 가운데 실어증 환자가 생겼는가 하면, 어느 부모는 자식의 행방불명을 신고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저는 뇌물수수에서 배임혐의로 축소되었습니다. 겁에 질린 거짓증언으로 저를 보고 고개 숙인 직원들의 눈망울에서 검찰로 향하는 분노의 비수를 보았습니다. 원서접수 기간만 구속을 피해 달라는 호소가 거절되었을 때, 교육자의 양심을 걸고 검은돈과 무관함을 역설하는 저를 깡패 두목으로 비유할 때, 검사들의 그 모습이 왜 그리 왜소해 보였을까요.

검찰총장님, 검찰의 자발적 재생을 위한 제 나름의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려 합니다. 총장의 지시나 제도적 개선책에는 검찰을 올바로 이끌기 위해 꼭 필요한 검찰주체의 자발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제도 변화 못지 않게 의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첫째, 해방 이후 지금까지 검찰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총장님이 국민에게 사과하십시오. 둘째, 지금까지 인권유린 사례를 빠짐없이 수집하여 공표하시고, 셋째, 인권신장을 위한 검사의 교육을 실시하시며, 넷째, ‘인권검사’의 승진을 보장하십시오. 마지막으로 ‘검찰총장’이란 직명을 바꿔보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저 역시 ‘대학교 총장’이란 명칭이 너무 권위적이어서 ‘교장’으로 대체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검찰총장의 상이 시골의 인자하면서도 엄하신 교장 선생님의 얼굴로 바뀔 때, 검찰의 권위가 제자리를 찾으리란 것을.

그래도 정든 구치소에서 통독한 <파우스트>의 한 대목 가운데, 주어만 고쳐서 총장님께 선사하려 합니다. “검찰은 노력하는 한 방황할 것이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정기 / 서원대학교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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