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호 시인의 시집 <퇴화의 날개>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심억수 충북시인협회장
 

▲ 심억수 충북시인협회장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를 생각 한다면 일본의 단시 하이쿠를 떠올릴 것이다. 일본의 단시 하이쿠는 3행 17음절로 구성되었으며 각 행은 5/7/5음절로 되어 있다. 전통적인 31 음절의 단카[短歌]라는 시의 처음 3행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애호가 100만명을 가졌다고 하니 그 인기가 대단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짧은 시 반영호의 시집 <퇴화의 날개> 단장 시는 시조 중 종장만을 남긴 것으로 3/5/4/3음절로 15자를 기본으로 시를 썼다. 노산 이은상 선생이 양장시조를 시도한 바는 있으나 단장으로 구성된 시조는 반영호 시인이 처음이라고 한다.

시인의 한 줄 시는 나에게 촌철살인으로 다가왔다. 반영호 시인의 한 줄 시 속에는 작가의 마음을 숨기고 사물의 상징성을 단아한 서정성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시인의 정형화 된 시적 구조 속에 절제된 서정적인 심상을 풀어내는 능력이 돋보인다.

▲ 퇴화의 날개 반영호 지음. 황금필 펴냄.

반 시인은 자연과 닮은 사람이다. 또한 그의 시는 서정적 미학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시 소재는 자연의 일부인 달, 꽃, 폭포, 산, 숲, 대나무, 첫눈 등을 순하게 바라보면서 그 안에 시인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시인은 소리 내지 않고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있으며 드러내지 않고 자연을 화폭에 담기도 한다. 생명 있는 것들의 고요한 화음을 만들기도 하며 그 화음에, 그 그림에, 그 소리에 자신을 숨기기도 한다.

그리고 시인은 짧은 시를 통해 삶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삶의 자세나 태도에 대한 깨달음을 시어속에 가만히 감추어 두기도 했다. 나는 그의 시를 읽으면서 그가 숨겨둔 보석 같은 삶의 편린들을 찾아내는 기쁨도 느꼈다. 그의 시에서는 삶의 순리, 사랑, 인내, 관용이나 미덕들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함축적이면서 시적 감성 드러내는 詩

“극도로 달이고 달인 소금, 또는 진신사리” 이 시는 ‘단장시조’라는 제목의 시 전문이다. 반 시인의 시 세계를 한 마디로 축약해 놓은 것이 아닐까. 바닷물 같이 넘실대던 많은 언어들을 극도로 달이고 달인 언어, 뜨거운 태양에 졸이고 졸인 언어, 그것이 하나의 결정체를 이루고 남겨진 소금, 아니 마침내 모두 태우고 남은 진신사리, 그것이 단장시집 <퇴화의 날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영롱한 진신사리 인 것이다.

오늘날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고 있다. 능률화, 효율화, 기능화 등 일방적인 기계화로 물질만능이다. 문명이 발달하여 생활이 편리하지만 점점 인간성이 결여되어 간다. 인간성을 상실한 문명의 발달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인간성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다행인 것은 아무리 물질이 변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원형은 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시인은 시대적 변화에 상실되어 가는 인간의 원형적 삶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는 시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 삶의 본질을 고뇌한다. 시인이 추구하는 값진 삶의 표출이 기존의 시조 형식을 탈피하여 마지막 종장만으로도 진한 감동을 준다.

시인은 일본 시조 '하이쿠'보다 더 함축적이면서도 시적 감성을 드러낼 수 있는 단상시를 탄생 시켰다. 한 줄의 짧은 문장에 모든 것이 내포되어 있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집<퇴화의 날개>는 시인의 진화적 변화의 고투가 역력한 정신의 기록이라 생각한다.

음성 출신인 반 시인은 문예한국 시 부문으로 등단하였으며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노을>이 시조 부문에 당선됐다. 그는 고향 음성에서 향토문단을 이끌며 지방 문학의 중심에서 왕성한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반영호 시인의 <퇴화의 날개>를 읽으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동질감에 나의 마음이 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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