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바꿔보기 위해 나서… 바로잡아야 할 첫 과제 ‘동네정치’

<정순영의 일하며 생각하며>

▲ 정순영 옥천순환경제공동체 사무국장

올겨울 들어 유난히 감기에 시달리고 있다. 두 달 넘게 이어진 감기의 여파는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남편과의 실랑이로도 이어지고 있다. 옥천에선 1년 넘게 매주 수요일 저녁 ‘옥천촛불’을 진행하고 있는데 나는 진행의 실무를 돕고 있다. 그러다보니 수요일 저녁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때가 되면 주섬주섬 짐을 챙겨 광장으로 나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남편의 주장은 이렇다. 내 감기가 수요일을 기점으로 나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 “한 주 안 나간다고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고집을 피워요”라며 걱정을 전하는 남편에게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해보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매주 수요일 광장에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단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부끄러움’ 말이다.

매주 수요일 옥천촛불을 가장 앞장 서 지켜온 이들은 옥천의 농민들이다. 지난해 농민들을 둘러싼 삶의 현실은 유난히도 힘겨웠다. 이상기온과 오랜 가뭄으로 수확의 기쁨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 농업의 기반인 쌀 가격이 폭락했고 이는 도미노처럼 다른 농산물 가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농민도 제발 웃을 일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자조 섞인 말이 과장이 아닐 만큼 혹독했던 한 해였지만 옥천군농민회를 중심으로 지역의 농민들은 매주 옥천촛불을 이어나갔다.
 

▲ 광장에 모인 옥천사람들은 서로의 삶과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 그리고 대한민국을 거론하며 더 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함께 이야기했다. 그 촛불은 2017년에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비정상시대, 뭔가 행동해야 했다

볼 때마다 골이 깊어지는 주름살, 들일을 마치고 급히 나오느라 옷에 묻은 흙도 채 털어내지 못한 그분들을 볼 때마다 나는 부끄러워졌다. 지역 노동자들의 삶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10년 가까이 이어진 지역 경제 불황은 노동자들에게 직격탄이 되어 저임금과 고용불안을 강요하고 있다. 여기에 노동조합 활동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임에도 지역의 대다수 사업장에서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하랴 노조 활동하랴 숨 가쁜 일상 속에서도, 매주 빠짐없이 옥천촛불을 지키러 나오는 이들이 바로 지역의 노동자들이다.

바쁘게 가게 문을 닫고 촛불에 나오는 동네 가게 사장님, 퇴근하자마자 아이 손을 잡고 광장에 나오는 일하는 엄마, 시험 기간임에도 잠시 들러 촛불을 켜고 가는 청소년...이들을 볼 때마다 ‘내가 촛불에 나오지 못한 이유’ 대부분은 그저 부끄러워질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부끄러움은 나만의 것이 아님을 촛불에 나온 이웃들의 이야기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저 평범하게 남에게 해 끼치지만 않고 살아도 누가 뭐라 비난할 일 없거늘, 촛불에 나온 이들은 비정상이 판치는 지금 이 시대에 뭔가 행동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국가폭력에 쓰러져간 백남기 농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차디찬 감옥에서 지금도 싸우고 있는 구속 노동자들을 일상적으로 떠올리며, 그리고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촛불을 밝힐 옥천의 이웃들을 떠올리며 조금 더 행동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마음들이 옥천촛불을 일 년 넘게 이어 올 수 있었던 동력이었고 광화문을 가득 채운 1000만 촛불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옥천주민들에게 수치심 안겨준 박근혜

1년 동안 옥천촛불을 이어오며 동네 사람들과 가장 많이 나눈 이야기는 ‘우리 더 이상 부끄러워만 말고 진짜 뭔가 좀 바꿔보자’였다. 특히 주민의 힘으로 바로 잡아야 할 가장 우선순위는 바로 동네 정치라는 것이다. 최근 옥천 사람들은 지역 주민들이 선출한 지역 정치인들 때문에 한 없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일들을 거듭 겪고 있다.

우선은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지역 주민들이 우선 소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지역 농민들이 10년 넘게 일궈온 옥천푸드 육성사업이 옥천군의회와 옥천군 사이의 의미 없는 명분 싸움과 군의회의 독선으로 좌초 위기에 놓여 있다. 지역의 근간인 농업이 무너져감에도 농민들과 진정성 있는 대화 한 번 갖지 않은 지역 국회의원은 ‘친박’에서 어느새 ‘친반’으로 갈아타고 미국까지 날아가 머리를 조아렸다고 한다.

옥천을 외가라고 하는 박근혜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옥천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고 있다. 그들에게 그 자리를 허락한 것이 우리들인데 왜 그들은 이토록 부끄러움만을 안겨주는 것인지, 이 부조리한 구조를 깨뜨리지 않고서는 우리의 삶이 더 이상 나아질 수 없겠구나란 것이 옥천촛불에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얻은 깨달음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2017년 옥천촛불은 진짜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을 밝혀내고 그들에게 빼앗긴 주민의 권리를 되찾아오는 불씨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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