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정두언이 계속 변죽만 울려대는 최태민과 박근혜 사이의 19금(禁) 이야기는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건드리고도 남는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상황이 빚어진다는 것 자체가 상식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문제의 ‘스토리’가 특검에까지 진술됐다고는 하지만 솔직한 심정은 차후에라도 공개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이미 드러난 것만으로도 나라의 격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마당에 또 헷갈리는(?) 추문이 나온다고 해 봤자 이를 삭여야 할 국민들만 더 고통스럽다.

오히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2012년 대선의 후보검증 결과 “그 분(박근혜)이 대통령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같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면서도 박근혜를 찍지 않고 중간에 기표했다”는 정두언의 고백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대통령에 당선됐고 정두언의 예언을 빌리자면 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대통령이 됐기에 지금 본인은 물론이고 나라와 국민들이 너무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근혜 예언의 단연 압권은 유시민 발(發)이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하루 전날 모 팟캐스트에 출연해 이런 말을 남겨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 있다. 내용을 추리면 이렇다.

“(박근혜 대통령 등장에) 냉정하게 말하면 첫 번째로 무섭고 두 번째로 걱정이 많이 된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무지하게 감옥에 갈 것같다(註 이 말은 나중에 무지하게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로 와전됨>.... 논리나 말로 타인을 설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힘을 쓰게 된다.

걱정이 되는 건 박근혜 씨가 이치에 밝은 지도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치에 밝은 지도자여야 아랫 사람이 속이지 않는다.대통령이 되면 엄청나게 많은 문제들을 다뤄야 하는데 5선 의원 하면서 입법을 제대로 한 게 있나, 자신의 브랜드 정책이 있었나. (하지만) 뛰어난 건 하나 있다. 의전적인 면에선 뛰어나다.

대통령이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보고받았을 때 상식에 맞다 안 맞다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옛날 환관정치, 즉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사리에 어두운 권력자를 이용하게 된다.” 결국 유시민의 말은 기가막힌 예언이 됐다.

나는 박근혜 당선자의 인수위원회 업무보고 첫날에 맞춰 이런 신문칼럼을 쓴 적이 있다. ‘박근혜, 꽃(花)으로 검(劍)을 감싸다’라는 제목의 글이다.(충청타임즈 2013년 1월 10일 게재) “오늘, 인수위원회의 업무보고를 시발로 박근혜 시대가 본격적인 채비를 알리게 됐다. 그동안 진행된 인수위 구성과정을 보면 예상대로 박근혜 당선자의 향후 전도(前途)를 충분히 가늠케 하고도 남는다. -중략-

18대 대선전이 본 궤도에 오를 즈음인 지난해 6월 20일, 세종문화회관에선 아주 흥미로운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박근혜 연구자임을 자처하는 정치학 박사 김영화가 쓴 책 ‘꽃으로 검을 베다’가 이날 행사의 주인공이었다. 당이 위기에 처하거나 무슨 선거만 있게 되면 예외없이 전면에 나서 대세를 갈라 온 박근혜 리더십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당연히 ‘꽃’은 박근혜를 지칭하는 것이고 ‘검’은 생각하기에 따라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정치의 낙후성도 될 수 있고 남성 위주의 일그러진 정치문화일 수도 있다. 어쨌든 꽃과 검은 한국 정치의 서로 다른 단면을 상징한다.-중략-

어찌 보면 박근혜 리더십의 양면성은 숙명적일 수 있다. 그가 집착하는 원칙과 신뢰는 당연히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반대쪽으로 내몰 게 된다. 수시로 경계를 넘나들며 영원한 진리, 영원한 신의도 없는 정치와 통치의 역동성을 보더라도 그렇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전에서도 박근혜를 끊임없이 괴롭힌 것은 그가 당선될 경우 이처럼 피아(彼我)가 확연하게 갈라진다는 우려섞인 예단이다. 아예 대한민국 전체가 아군과 적군으로 나뉠 것이라는 음해까지 나돌았다. 공교롭게도 대선의 결과는 거의 딱 절반의 승리로 나타났다.

박근혜가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려면 정책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국민정서의 성공이 우선이라는 말이라든가, 지금까지는 선거형 리더십이었지만 앞으로는 통치형 리더십을 키워야 한다는 말 또한 예의 양면성으로 회자된다.

분명한 것은 무슨 원칙이나 원리주의에 집착하는 결벽증의 권력일수록 자칫하다간 스스로까지 삼키게 되고 결국엔 지금보다도 더한 괴물, 이른바 리바이어던을 낳을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중략- 박근혜는 꽃으로 검을 벨 게 아니라 그 꽃으로 검까지 감싸는 통치력을 보여야 하고, 이것이 그를 뽑아준 국민들의 간절한 소망인 것이다.”

하지만 우려대로 박근혜는 결벽증의 통치로 줄곧 사람들을 갈랐고 꽃으로 검을 감싸기는커녕 그 검을 베려다가 끝내 최순실이라는 괴물 리바이어던을 자초해 자신까지 삼키도록 했다.

이들 예언의 적중은 한가지 공통적인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선거에서 우상화된 후보에게 더 이상 속으면 안 된다는 것, 대통령 한 사람한테 국가운영의 모든 것을 기대하면 결국 사기를 당한다는 것.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문재인 반기문 이재명 안철수에 환호하며 마치 그들이 무너진 대한민국을 다시 세울 것처럼 또 착각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투표하는 것 그 이상 즉 시민교육과 시민토론 등 시민프로젝트에서만이 발전할 수 있다. 정치인과 정당이 뭘 하기를 기다리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는 절대로 스스로 알아서 선을 추구하지 않는다. 시민의 압력과 요구가 없으면 변하지도 않는다’.

다름 아닌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작금의 촛불시위를 놓고 쏟아낸 말들이다.

박근혜의 몰락, 그리고 광화문의 촛불은 더 이상 대통령 후보에 연연하지 말고 국민 스스로가 주권자로서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향한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헌법적 권리주체로서 그 역할을 다할 때만이 대한민국이 올바르게 선다는 것, 바로 이런 교훈을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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