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바위능선 따라 걷는 월출산의 겨울

즐거운 인생
월간 마운틴 기사제휴·강성구 기자river@emountain.co.kr

천황사 야영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쯤이었으나 이미 깊은 밤의 모습이었다. 그 깊은 어둠 속으로 월출산의 거대한 바위는 숨었고, 여린 달빛에 자신의 테만 살짝 비칠 뿐이다. 눈을 보러 왔으나 음지로 메워진 곳의 잔설만 보인다. 12월 초순경 내린 눈 이후 큰 눈이 내리지 않은 영암 일대는 황량한 초겨울 산의 모습이었다.
 

▲ 월출산의 천황봉을 지나 구정봉으로 향하는 길. 그 뒤로 장군봉과 구정봉이 보인다.

월출산 산행의 들머리로 많이 찾는 곳이 바로 천황사다. 시내와 가깝고, 천황봉에 빨리 오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만 월출산을 다녀간 탐방객이 40만 명이 넘는데, 대부분 이곳을 선택해 올랐다. 천황사를 시작으로 정상까지는 2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 허나 빨리 오른다는 말은 오르막이 심하다는 말과 같다는 것.

역시 천황사를 초입 삼아 오른 월출산도 만만치 않은 기운을 뿜어냈다. 시작부터 마음을 재촉하는 계단이 이어지더니, 나중엔 바위에 설치된 난간을 따라 오르느라 줄 곧 땀을 뺐기 때문이다. 그렇게 40분쯤 지났을까. 월출산의 명물이라 부르는 구름다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손에 잡힐 듯 보이지만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땅에서 120m 위로 솟았기 때문이란다.

 

▲ 월출산 천황봉 정상의 모습. 해발 809m라 표기됐지만, 사실 812.7m이다.

천황봉과 기이한 바위들의 향연

구름다리를 지날 때 오른편으로 솟아오른 바위가 마치 사람을 누를 기세다. 알고 보니 그 이름이 장군봉이다. 장군봉 방향에서 월출산을 보면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육형제바위, 책바위 등의 기암괴석 덕분이다. 해발고도가 700m가 넘을 쯤, 새벽이슬은 눈 조각이 되어 등산로 곳곳에 뿌려져 있었다. 가끔 부는 바람은 나뭇가지에 붙은 상고대를 날려 버렸다. 무심히 디딘 발의 울림에도 나무에 붙은 눈 조각은 떨어져 나갔다.

긴 오르막을 지나 통천문에 이르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에 닿았다. 정상에 오르니 막힘없이 내달리는 바위 능선과 영암평야가 넓게 시야로 들어온다. 정상부는 넓게 평평한 바위를 드러내며 ‘해발 809m'의 표지석이 놓여있다.

시선은 이미 도갑사를 향해 있다. 멀찌감치 보이는 능선엔 계절 같이 않은 추위로 눈은 온대간대 없고, 누런 풀들만이 줄지어 바람에 흔들린다. 그 뒤로 보이는 돼지바위, 남근바위, 구정봉 등의 바위만이 사람들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있다.
 

▲ 미왕재에 펼쳐진 억새밭 전경.

동과 서, 속은 다르지만 겉모습은 비슷

도갑사로 이어지는 능선에서는 월출산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동쪽 천황봉 주변에는 크고 높은 형상의 바위가 굵직굵직하니 버티고 서 있고, 서쪽은 기교를 부리듯 작고 섬세한 바위의 형태로 줄지어 서 있는 형태다. 이 사이에 미왕재라는 여린 억새밭과 구정봉, 향로봉 등 홀로 자태를 뽐내는 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이제 등산로는 가파른 계단길에서 평평하고 순한 길로 변한다. ‘산에서 이런 호사가 어디 있을까’ 생각하며 걸으니 어느덧 구정봉 능선에 이르렀다. 구정봉은 아홉 개의 웅덩이가 파여 붙여진 이름인데, 그 속에서 9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한다. 구정봉을 지나 큰 어려움 없는 능선을 1시간쯤 지나니 미왕재에 이르렀다. 억새밭이 넓게 펼쳐진 모습이 사뭇 놀랍다.

미왕재를 넘으면 하산길이다. 산죽사이로 이어진 좁은 계곡을 따라 도갑사로 향한다. ‘철철철’ 도갑사 계곡의 소리도 들린다. 무덤덤한 숲의 풍경에 계곡의 물소리가 더해지니 조금 경쾌하다. 그 소리에 발걸음을 맞춰 걷는다. 묵직함이 스며있는 사찰인 도갑사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은 월출산에서 가장 큰 사찰이다. 국보 50호로 지정된 해탈문, 석조여래좌상(보물 89호) 등의 많은 문화재가 있다. 이렇듯 월출산에는 과거 99개의 사암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몇 곳의 흔적만 찾을 수 있다.

월출산의 동쪽과 서쪽의 모습은 크게 다르다. 하지만 도갑사를 빠져나와 산을 바라보니 천황사에서 바라본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마치 전날 밤, 여린 달빛에 비친 테와 흡사하다. 월출산, 그 바위산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어느 빛이든 받아 자신의 모습을 알리고 있었다.
 

▲ 천황봉 주변에서 바라본 월출산의 전경.
▲ 월출산 구정봉의 장군봉. 마치 사람의 얼굴 형태이자 월출산을 지키는 장군의 모습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월출산의 동쪽은 거친 바위산의 모습이지만 서쪽으로 갈수록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월출산 국립공원

월출산은 전라남도 영암군과 강진군의 경계에 걸쳐있는 산이다. 1988년 6월 11일 2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그 면적이 56.1km2로 21개의 국립공원 중에서 가장 작은 크기다. 주변의 마을의 이름도 월하, 월남, 월곡, 송월 등 곳곳에 월(月)이란 글자가 들어있는 곳이 많다. 삼국시대에는 산의 형체가 아름답고 달을 먼저 볼 수 있다하여 월나산이라 불렸다. 고려시대엔 월생산이라 불리다. 조선시대부터 월출산이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주봉인 천황봉을 중심으로 동쪽으론 사자봉, 서쪽으론 구정봉과 향로봉이 펼쳐진다. 기암괴석의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며,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기도 한다.

평탄한 땅에서 기이하고 육중한 바위가 치솟은 모습은 영암 시내에서도 조망되며, 시선을 사로 잡는다. 곳곳에 특이한 생김새를 한 바위들이 널려 있는데, 이름이 붙은 바위만 해도 무려 270개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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