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과 광기, 그 사이에서 표류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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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광기, 그 사이에서 표류하는 이야기
  • 충청리뷰
  • 승인 2016.12.2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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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작 <채식주의자>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이은자 前 공무원
 

▲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창비(주) 펴냄.

허락되지 않는 욕망을 꿈꾸어 본 적 있는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할,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죄의식이 들어 스스로를 원망할 만큼 불순한 욕망을 품어본 적 있는가. 아니면 당신은 모든 규범 안에 그저 들어앉아 묵묵히 자신의 역할과 일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우리 중에 하나일 뿐인가. 둘 중 어디에 속하더라도 이 한 권의 책은 당신의 생각, 그 기저를 뒤흔들기에 충분하다.

맨부커상을 수상해 화제가 된 한강의 책 <채식주의자>가 채식에 관한 어떠한 에피소드를 다룬 것에 불과한 작품이겠거니 한 나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이 책은 욕망과 금기,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생각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작품이기에 전 세계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않았나 싶다.

책은 3개의 연작 소설로 나뉜다. 영혜라는 한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꾼 꿈으로 인해 육식을 거부하게 되는 것을 그녀의 남편 시각으로 서술한 ‘채식주의자’, 실패한 예술가인 영혜의 형부가 처제 영혜에 대한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둘의 나신에 온통 꽃을 그리고 정사하는 장면을 비디오 테이프로 담는 작업의 전말을 서술한 ‘몽고반점’, 동생과 남편의 부적절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면서 자신의 깊은 상처를 깨닫게 된 영혜의 언니 인혜의 이야기를 다룬 ‘나무 불꽃’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단지 꿈 때문이라는 이유로 영혜처럼 단호하게 육식을 거부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또한, ‘예술’이라는 타이틀 아래 처제를 탐한 영혜 형부의 이야기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강은 ‘채식주의자’ 편에서 지극히 일반적인 영혜의 남편을 화자로 내세우면서 그 서술 방식이나 태도에 있어 오히려 영혜의 행동에 순수성과 당위성을 부여하고 영혜의 남편을 비겁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몽고반점’에서는 이것이 더욱 심화되어 꽃과 나신의 아름다움을 절정으로 묘사한다. 그래서 영혜에 대한 형부의 욕정이 어떻게 예술로 승화되는지 치밀하게 전개함으로써 금기와 욕망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완전히 무장해제 시킨다.

욕망 추구한 사람과 억누른 사람의 차이

모든 것을 목격한 아내와 마주하고 자신들을 호송하기 위해 들이닥친 정신병원 직원들 앞에 그가 보인 공포는 과연 무엇을 대상으로 한 공포였을까.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타고난 욕망을 광기라는 이름으로 규정짓고 우리를 옥죄는 수많은 타인들과 제재들을 향한 공포가 아니었을까. 그의 아내 인혜는 생계를 책임지면서 남편이 예술 활동에 몰두하게끔 지원을 아끼지 않고, 다른 가족들이 모두 손 놓았지만 끝까지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랬던 그가 자신의 손으로 동생과 남편을 정신병원에 집어넣은 것처럼, 때로는 따뜻한 울타리이지만 때로는 우리의 목을 죄는 일차적 제재 수단이자 감옥과도 같은 아이러니한 존재인 ‘가족’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을까. ‘나무 불꽃’에서 인혜는 자신의 욕망과 상처는 들여다보지 않은 채 엄마로서, 아내로서, 언니로서 묵묵하게 일상과 역할을 살아내다 결국 속이 썩어 문드러진 존재로 서술된다.

정신병원 신세만 지지 않았을 뿐, 표정 없는 덤덤한 얼굴을 하고 속으로 타들어가는 불꽃을 간직하고 있는 그의 상태는 나무가 되고 싶다며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동생 영혜와 어딘지 모르게 꼭 닮아 있다. 욕망을 억누르다 광기가 돼버린 여자, 그리고 욕망을 끝까지 추구하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남자, 욕망을 억누르다 속이 다 타버린 여자. 이 책을 덮을 때쯤 과연 무엇이 더 나은지 우리는 분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우리가 가진 야만적 본능과 욕망을 다 드러내고 살 수는 없거니와 우리가 옳다고 믿는 절대가치에 반하는 생각을 갖고 살기도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억누르고 규제하는 모든 것들이 과연 자신에 의한 것인지 타인에 의한 것인지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메시지를 주려는 노력들은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특별한 이유는 기존의 모든 시도들이 주체성과 개성을 강조하는 데 그친 데 반해, 원시적이고 순수한 소재와 예술적 묘사를 통해 아름답고도 강렬하게 서술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며칠 머리가 아팠던 것은 내가 어떻게 한들 모든 것을 잃어버리거나, 미치거나, 스스로 타들어가고 부서져 버리는 이 세 가지 결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깨달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가가 나에게 해답 없는 문제를 제시한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을 피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갖가지 모순이 혼재하고, 아무도 답을 알지 못한 채 무거운 가슴을 안고 치열하게 방황하는 것,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이 아닐까.

올 한 해 서평을 정성스럽게 써주신 이연호 꿈꾸는책방 대표, 권은숙 온갖문제연구실 연구노동자, 김상수 충북재활원장, 이은자 전 공무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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