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구신화열아홉번째이야기

여우리는 벌구의 너무나 당돌하고도 직설적인 그리고 어떻게 보면 몹시 황당스럽기까지한 이 물음에 대해 잠시 할말을 잃은 듯 얼굴만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싸늘하고도 침착한 아니 어찌 보면 냉소(冷笑)가 섞여진 목소리로 키가 큰 벌구를 똑바로 쳐다보며 여우리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요.,,, 제게 또 물어보고 싶다는 말씀은?”

“으음... 제가 한 그 물음에 대한 답변을 먼저 좀......”

“나머지 것도 말씀해 주시지요. 제가 듣고나서 한꺼번에 모두 대답해 드릴 수도 있으니....”

“으음. 좋소.. 그럼...”

벌구는 조금 흥분에 들떠있는 자기 마음에 안정을 되찾으려는 듯 심호흡을 길게 한번 하고나더니 곧이어 심각한 표정으로 고쳐잡은 후 천천히 다시 이렇게 물었다.

“여우리 당신도 지켜보았듯이, 나는 조금 전에 이상한 것들과 한바탕 소동을 벌였소이다. 그런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이상한 일이 아니요?”

“이상하다니요? 무슨?”

여우리가 예쁜 두 눈을 다시 크게 치뜨며 물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시요. 우리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있던 곳에서 나이 드신 분의 소개를 받아 곧장 이곳을 향해 떠났었소. 오는 도중에 당신이 얼굴을 씻다가 개울물에 본의아니게 빠지기도 하고 산돼지와 연달아 싸우는 등등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어쨌든 우리들을 앞질러 갔던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지요. 그런데, 조금 전에 무기(武器)를 챙겨든 뚝쇠 일행이 바로 저 반대편에서 나타났지 않았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모를 일이요. 어떻게 그들이 우리를 앞질러 왔는지... 그렇다면 우리가 이곳으로 쉽게 찾아올 수 있는 편한 샛길을 따로 놔둔 채 일부러 이런 험악한 산길을 택해가지고 고생고생해가며 이곳으로 왔다는 뜻이 아니오? 자, 솔직히 말해주시오. 왜 하필이면 그런 험악한 산길로 나를 데리고 왔는지를...”

“......”

벌구의 폐부를 콕콕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물음에 여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입가에 엷은 미소만 흘리고 있었다.

“여우리! 혹시, 당신의 숨겨진 예쁜 얼굴을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개울물이 흐르고있는 곳으로 나와 함께 온 건 아니오?”

“.....”

“아니면 나같이 멋지고 용감한 청년에게 홀랑 반해서 혹시라도 뭔가를 기대하며....”

“아, 아! 그 그만하세요. 가만히 놔두고 있자니 이젠 별별 소리가 다 튀어나오겠군요.”

여우리는 당황한듯 얼른 손을 앞으로 내밀며 벌구의 입에서 계속 쏟아져나오려는 말을 일단 제지시켰다. 그리고는 여우리 역시 마음의 안정을 찾아보려는 듯 큰소리가 날 정도로 군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나더니 천천히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저어, 제가 그에 대한 답을 해드리기 전에 저 역시 벌구님에 대해 궁금하게 여기는 점 두가지를 물어보도록 하겠어요.”

“어허! 내가 먼저 당신에게 물어보지 않았소? 그러니 내가 한 말에 대해 우선 속시원한 답변부터 해주시오. 그다음에 내가 당신의 물음에 대해 성의껏 대답을 하든지말든지 하리라.”

“아니, 우선 제 말부터 들어보시라니까요?”

“어허! 내가 꺼낸 말에 대해 우선 답변을 해주고나서...”

“어머머! 궁금하게 생각하기는 피차 마찬가지 아니예요? 벌구님이 궁금하게 여기는 점이 있듯이 저 역시 궁금한 점들이 있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내 궁금증을 먼저 풀고난 다음에 당신의 궁금증을 풀어보면 될것 아닙니까.”

“싫어요. 궁금증을 먼저 듣고나서 동시에 서로 답변을 듣기로해요.”

“그거 참... 분명히 내가 먼저 이런 말을 꺼냈었고 또 답변을 하겠다고 해놓고나서 이제와서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하우? 모든 일에 순서가 있는 법이지.”

벌구가 약간 신경질이 섞인 목소리로 투덜대며 말했다.

“어머머? 누가 순서를 정하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아까 난 분명히 생각해 보겠다고만 했지 답변을 해드린다고는 하지 않았잖아요?”

여우리 역시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으흠흠...."

벌구는 이에 대해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마침내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여우리에게 말했다.

“으음, 좋소이다. 그럼 당신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점을 어서 내게 물어보도록 하시오. 하지만, 순서에 따라 답변만큼은 반드시 당신이 먼저 하도록 해야하오.”

“좋아요. 그렇게 하기로 해요.”

여우리도 벌구의 이 말에 수긍을 하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 그럼 이제부터 여우리 당신이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내게 속시원히 물어보시요.”

벌구는 두 팔짱을 끼고 두 다리를 적당한 간격으로 벌린 채 아주 여유있는 자세로 여우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첫번째 궁금한 점을 물어보겠어요. 벌구님께선 돌아가신 아버님의 유지를 받들어 이곳에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자기 혈육을 찾으러 왔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벌구님께서는 아직까지 단 한번도 그 혈육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게 물어보시지 않았잖아요? 왜 그렇지요? 그게 그렇게 벌구님의 관심 밖에 있는 일인가요?”

여우리는 이렇게 말하고는 반짝반짝 빛이 나는 예쁜 두 눈으로 벌구를 빤히 올려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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