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은 열매식물의 시작이자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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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은 열매식물의 시작이자 종말
  • 충청리뷰
  • 승인 2016.12.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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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존생물학자 소어 핸슨의 <씨앗의 승리>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이은자 前 공무원
 

▲ 씨앗의 승리 소어 핸슨 지음·하윤숙 옮김. 에이도스 펴냄.

지구상에서는 대략 35만 2000종에 달하는 식물이 씨앗으로 번식한다. 식물군에서 종자식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90% 이상이다. 작은 한 톨의 씨앗 속에는 식물들이 탄생하는 데 필요한 원초적인 생명력이 응축되어 있다. 씨앗은 생태계의 가장 최하위 먹이사슬에 위치하지만 생태계 정점까지를 모두 먹여 살리는 생명의 기반으로 인류에게 음식과 경제와 생활 방식 토대를 제공한다. 소어 핸슨이 지은 <씨앗의 승리>는 씨앗이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하며 영향력 있는지를 다양한 관찰과 사례를 통해 제시하기에 더욱 흥미롭다.

인류의 주식량인 곡물은 결국 풀씨이며 이 풀 씨앗이 세계를 먹여 살린다. 풀씨는 굴러 떨어져 뉘어진 곳에 그저 최소한의 물기나 온기가 있으면 그곳이 하수구든 돌 틈바구니든 개의치 않고 왕성하게 싹을 틔운다, 또한 작고 열매가 많이 열리며, 아무데서나 잘 자라고, 빨리 성장한다. 풀 씨앗의 이런 습성 덕택에 곡물은 이상적인 식량 작물과 지배 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곡물의 이러한 증산능력은 식량난에 허덕이는 인류가 신에게 참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다.

대다수 씨앗은 두꺼운 보호막 껍질을 이용하여 수분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기 때문에 바싹 마른 상태가 되어 성장을 거의 정지 상태로 유지한다. 이렇게 더 이상 크지 못하도록 억제된 상태로 몇 달, 몇 년 혹은 몇 세기까지 견디다가 빛과 영양분과 수분이 발아에 알맞은 조건이 되면 제 풀에 스스로 벌어져 싹을 틔운다.

씨앗은 천적인 상대의 영향에 저항하기 위해 공학적 해결책을 찾는다. 먹히지 않기 위해 독을 품기도 하고, 천적의 이빨이 강해질수록 껍질이 더욱 두껍고 견고하게 변모하며, 균류의 내성에 더 강해지기 위해 더 매운 맛이나 강렬한 향을 지니기도 한다. 또한 코코넛은 물위에 뜬 상태로 최소한 석 달 이상을 살아갈 수 있어 바람과 해류를 타고 수백 킬로 수천 킬로까지 이동하기에 애초부터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렇듯 씨앗은 견디고, 방어하고, 이동하면서 다른 생명체와 달리 엄청난 분화와 다양화를 이루며 지구상의 모든 서식지까지 점령할 수 있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씨앗 한 톨이 때로는 거목으로 자랄 수 있는 잠재력을 고스란히 품고 있기에 씨앗이 생명을 이어가는 능력은 경이롭고 위대하다.

최후까지 보존해야 할 보물, 씨앗

씨앗은 꽃을 피우는 과정에서 자신의 진화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긴밀하게 얽혀 있는 동물과 곤충의 진화까지도 자극한다. 꽃에 의한 수정의 진화는 인간에게도 매우 중요하여 수분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그 결과물을 씨앗의 형태로 오래도록 보관하는 능력이 있었기에 우리의 조상은 농업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씨앗자루 베고 굶어 죽는다.’라는 말처럼 농부는 당장 굶어 죽을지언정 결코 씨앗자루를 헐지 않는다. 나 어릴 때만 하더라도 부모님은 가을이면 한 해 동안 수확한 농작물 중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씨앗을 우선적으로 선별하여 종자를 확보했다. 씨앗은 그렇게 최우선적으로, 그리고 최후까지 보존해야 할 살아있는 보물인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 종자를 구매하여 파종한다. 종자를 보관하는 데 손도 많이 가고 보관과정에서 실패의 위험도 크며, 약제 처리가 돼 있고 수확량과 상품성이 좋기 때문이다.

IMF 때 우리의 종묘회사인 청원, 서울, 흥농, 중앙 종묘 등이 외국기업으로 넘어갔다. 이제 초국적 종자 기업은 종자뿐만 아니라 농화학회사를 소유하고 있어서 농약에 맞춰 유전자 조작으로 종자를 개발하며 시장을 장악해 간다.

종자 기업은 수익성이 보장되는 위주의 종자를 생산하기에 종의 단순화는 필연적이다. 계속되는 종자의 구매는 가격인상을 불러올 것이고, 종의 단순화로 인해 한정된 품목에 한해 재배를 하게 될 것이며, 우리 식성과 기호를 서구적 입맛에 맞춰야 하는 날이 도래하게 될지도 모른다. 보다 더 큰 문제는 종의 단순화로 인해 자연재해나 병충해의 환난에 취약하여 식량위기를 초래하거나 수많은 씨앗들이 단종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생하는 씨앗은 대를 이어가기 위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창조성을 지니며 에너지를 저장하고 자손을 확실하게 확산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에 종자은행이 생겨나고 토종 씨앗을 수집하고 보존하며 분양하는 단체의 활동이 증가함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며, 이런 운동이 더욱 활발하게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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