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기대 반 우려 반, 정우택의 새누리당 원내대표(이하 존칭 생략) 당선에 대해 지역언론은 약속이나 한 듯 이런 제목의 기사를 냈다. 이정현 등 지도부가 사퇴한 상황에서 졸지에 집권여당의 대표가 된 것은 분명 ‘정우택 정치’에 날개를 다는 쾌거였지만 그 이면의 역학관계가 결코 녹록지 않음을 시사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야 3당은 정우택과는 당분간 거리를 두겠다며 집단으로 왕따를 가하고 있고,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야당의 원내대표실을 찾은 정우택은 문전박대를 받았다. 야당의 주장대로 이런 장면이 정 측의 의도적 연출이었든 아니든 향후 행로가 순탄치 않음을 예고하고도 남았다.

친박을 등에 업고 당선된 정우택이지만 그는 당선되자마자 친박과 거리를 뒀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른바 예측가능한 시츄에이션이다. 대통령 탄핵과 촛불정국에서 친박과의 연계성은 여야를 떠나 아직까지는 정치인들에게 쥐약이다. 한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우택의 발언은 훨씬 더 강도를 더해 갔다. 친박들의 결사체인 ‘혁신과통합보수연합’의 해체를 주장해 성사시켰는가 하면, 기자들 앞에선 “나는 친박의 아바타도 아니고 로봇도 아니다”고 일갈했다.

이보다 더 시원한 수사(修辭)도 없겠지만, 그러나 저승에서의 인연까지도 끄집어 내 연결고리를 만든다는 정치판에서 과연 그의 호언이 얼마나 현실화될 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친박과 비박으로 당이 반쪽이 날 상황에서 친박의 절대적 지지로 당선된 이상 앞으로 그의 당내 운신 역시 그 프레임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게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다.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정우택은 아직 ‘자기 세력’이라는 정치적 화두에선 현재 양분되고 있는 새누리당의 세(勢)구도에서 절대적으로 취약하다. 뿐만 아니라 사이버상의 아바타는 이를 조종하는 컨트롤러가 죽지 않는 한 홀로서기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정우택의 정치적 독립 역시 친박의 소멸 없이는 현재로선 기대난망이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정우택의 원내대표 등극을 단순히 권력 연장을 위한 친박의 로드맵으로 치부하는 건 무리다. 오히려 그는 오늘의 입지를 위해 자신만의 분명한 선택과 승부수를 던졌다고 봐야 옳다. 그 첫 단초는 이미 보도로 잘 알려진 박근혜 탄핵에 대한 SNS상의 항변이다.

그는 탄핵찬성측의 입장에선 낯이 뜨거울 정도로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했다. 4선의 국회의원인 정치고수가, 그동안 친박도 아니고 비박도 아닌 어정쩡한 당내 입지를 무시하고 촛불시위가 가장 수위를 높여가는 시점에서 느닷없이 박근혜 수호천사를 자처함으로써 많은 억측을 낳았다.

이를 두고 지역정가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얘기는 두가지다. 그가 현 정부에 치명적인 약점을 잡혔다거나, 황교안 이후의 총리자리를 노렸다는 것인데 이는 여전히 본인만이 알 수 있다. 다만, 남들은 박근혜를 팔다가도 돌연 거리를 두는 형국에서 정우택은 역발상의 처신으로 나왔다는 자체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비록 그가 최고위원을 지내는 등 당내 위상을 다졌다 하더라도 친박 새누리당의 최대 위기에서 당을 이끌 대안으로 지목되기까지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분명 작용했다.

여당 원내대표 정우택은 앞으로 어쩔 수없이 다음의 엄중한(!) 변곡점들을 직면하게 된다. 첫째 새누리당 분당여부, 둘째 대통령 탄핵여부, 셋째 대선, 넷째 반기문 출마여부 등이다. 분당이 되든 안 되든 그는 결국 정치력의 심판대에 놓이게 된다. 분당이 될 경우 정우택은 친박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투쟁을 벌여야 하고 다행히(?) 친박과 비박이 다시 한솥밥을 먹게 된다면 이번엔 양쪽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영토를 개척해야 하는 지난한 전쟁을 감수해야 할 판이다.

대선에 누가 출마하는가와 또한 그 대선의 결과는 곧바로 정우택의 명운을 가르게 된다. 특히 반기문의 등장은 그가 택할 당적이나 지지세력에 상관없이 서로 충청이라는 동향관계만으로도 향후 정우택의 진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연히 그가 원하는 가장 바람직한 결론은 보수정권의 재창출이겠지만 현재를 보더라도 대선 시계(視界)는 뚜껑이 열릴 때까지 어두울 것같다.

참 희한하게도 정우택의 정치역정을 보면 마치 부친 정운갑의 데자뷰(旣視感)를 느끼는 것같다. 일부러 맞춘다고 해도 어려울 정도로 유사점이 많다. 우선 고급 관료를 거쳐 정부 각료와 국회의원을 모두 섭렵했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5선을 기록한 정운갑은 일제의 고위공직자 선발 시험인 고등문과시험에 합격해 자유당 시절 농림부장관까지 지낸 후 1958년 이승만의 자유당 공천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처음으로 단다. 정우택 역시 행정고시를 패스한 후 경제기획원 등에서 중앙요직을 경험하고 국회로 진출, DJP 공동 정권에선 당시 자민련 몫인 해수부장관을 지낸다.

정치에 있어 이들 부자의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은 국가적 정세(政勢) 혹은 스스로 삶의 변혁, 변동기마다 기발한 정치적 순발력과 추동력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아버지 정운갑은 일제말기와 미군정, 한국전쟁, 유신체제 등에 쉼없이 휘둘리면서도 불리한 시류까지 자기 것으로 만들며 변치않는 양지의 출세가도를 닦았으며, 아들 정우택 또한 2004년 총선 패배(對 김종률)와 2010년 지방선거 패배(對 이시종) 등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그 때마다 행정과 정치, 교육을 넘나드는 파격의 선택으로 줄곧 무대위를 지킬 수 있었다.

2006년 도지사선거에선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자신을 낙점했다고 선수치고 나오는 바람에 재선은 따놓은 당상이라던 같은 당의 이원종 현직 도지사를 불출마케 한 사례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박정희 정권하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가장 큰 분열의 위기에 처했을 때 부친 정운갑이 보인 처신은 오늘의 아들 정우택과 연계돼 알만한 사람들의 무릅을 탁 치게 할 정도다.

1976년 5월 전당대회를 통해 이철승과 신민당의 비주류 연합세력을 이끈 정운갑은 독재의 사주로 당이 둘로 갈라지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고뇌하다가 결국 1979년 박정희가 장악한 법원에 의해 YS가 강제 퇴출당하자 총재직무대행을 맡아 야당정치의 전면에 나선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채 그해 10.26 사건을 계기로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된다. 당시 정운갑이 이끈 비주류연합의 정치적 기조는 정권에 대한 타협과 협조였고 때문에 강성인 YS계는 이들을 사쿠라라고 매도했다.

정우택이 원내대표 선거에서 내건 슬로건은 중도, 화합의 진정한 보수정당 재건이다. 그가 책임져야 할 새누리당은 꼭 40년 전 아버지가 이끈 신민당처럼 반으로 딱 갈라져 분당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아주 흥미롭게도 아버지 정운갑은 그 때 김영삼으로부터 “범국민적 항명과 혁명도 불사하겠다”는 으름장을 받았고 지금 아들 정우택은 자신이 지켜야 할 박근혜로 인해 문재인 등 야권으로부터 “탄핵이 인용되지 않으면 혁명밖에 없다”는 거센 경고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정우택의 선택은 성배가 될까 아니면 독배가 될까? 우리로선 그 것이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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