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 한덕현 발행인

“이제는 하다하다 세월호 참사까지 대통령 탄핵사유에 들어간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대형사고는 모두 대통령 탄핵 사유다.” 누리꾼들 사이에 막말의 전사로 통하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며칠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의 말을 존중해 이를 정상적으로 고친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대형사고라고 해서 모두 대통령 탄핵사유가 되는 건 아니다. 다만, 그러한 대형사고에도 대통령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300여명의 목숨이 백척간두에 놓였던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올림머리와 식사, 그리고 국민의 안전과는 전혀 무관한 또다른(?) 일을 하면서 7시간을 낭비했다면 이건 탄핵감이다.”

하지만 김진태 의원의 본색은 그의 페이스북 바로 뒷글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정치도 다 사람이 하는 것이다. 아내가 남편 흠을 보다가도 막상 동네 사람들에게 남편이 맞으면 역성을 드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만약 (같이) 멱살을 잡는다면 그 집구석이 얼마나 잘 되겠느냐. 적어도 나는 나 하나 살자고 남을 밟고 가는 그런 짓은 못하겠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것이 바로 진정한 보수다.” 박근혜 탄핵에 찬성한 당내 비주류 등을 겨냥했을 이 말은 구구절절 다 맞는 얘기다.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진정한 보수라는 말에 한없는 공감이 간다.

한데 그의 막말 한 두개만 들어봐도 이것이 얼마나 거짓이고 공허한지는 금방 드러난다. 그는 과거 “세월호 선체는 인양하지 말라.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거다” “세월호 인양은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인양을 포기하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결국 아이들이 억울하게 죽으면 그냥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고 인간의 생명보다 돈이 우선이라는 뜻을 의미할 것이다.

세월호 침몰에 대해 지금까지도 “단순한 교통사고를 언제까지 물고 늘어질거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아마 김진태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봐라, 애들을 그냥 보내니까 돈이 생기지 않나”. 이런 사람에겐 “네 새끼가 죽었어도 그렇게 하겠냐”는 질책은 이미 의미가 없다. 언론에 그의 이름을 올리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SNS에 떠도는 세월호 아이들의 동영상,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들에게 들이닥칠 죽음의 공포를 애써 외면하며 의연하려다 끝내 엄마 아빠를 부르짖으며 사라진 그 애들을 한번 떠올려 보라. 이건 교통사고가 아니라 어른들에 의한, 아니 못난 국가에 의한 예고된 집단 학살이다. 그러니 이를 생각할 때마다 느닷없이 사지가 떨려오는 이들에겐 김진태의 거짓말은 가히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그가 국민의 이름을 팔아 정치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다는 것이다.

끝내 이정현이 장에 손을 지지는 장면은 못 볼 것같다. 오히려 그는 반대파인 비박을 공격하고 나서며 정치적으로 재기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만 그가 구사하는 화법은 투박한 친밀감을 주는가 싶다가도 곧바로 무거운 부담으로 엄습한다.

언행불일치 즉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자연스런 거짓말’ 때문이다. 그가 집권당의 대표로서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겠다고 호언할 때만 해도 사람들은 믿었다. 총선과 당대표 선거에서 거침없이 누구와도 어깨동무하는, 결코 세련되지 못한 모습에서도 그 용기는 어느정도 감지됐다.

허나 현실은 정반대다. 그는 끝까지 박근혜 대통령을 감싸느라 전전긍긍했다. 그 충정이 얼마나 처절했으면 장에 손까지 지지겠다고 공언했을까 싶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역할에 직무유기를 했다. 집권당 대표로서 당과 정치, 국가를 챙긴 게 아니라 오로지 본인의 정치력을 청와대에 헌납하는데 몰입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법논리의 사실관계를 벗어나 이념과 진영의 아귀다툼으로 변질된 배경엔 이정현의 활약이 절대적이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도 확인됐듯이 여당의 본질을 권력의 친위세력로 전락시켰고 급기야 지금에 와선 나라 전체를 빨갱이와 수구꼴통의 대결장으로 몰아갔다.

이정현에게 가장 아쉬운 점은 왜 주군에 대한 충성을 그런 식으로밖에 못하느냐는 것이다. 어차피 정치가 생물이라면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좀 더 멀리, 그리고 전체를 아우를 줄 아는 이른바 ‘스탠스’다. 혈혈단신 적지인 호남에 뛰어들어 새누리당의 깃발을 꽂은 그의 뱃심을 알기에도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정현은 당 대표 이후로는 시종일관 이러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주님 리더십이 아까운 정치인을 수렁에 빠뜨렸다고 수군댔다. 주군에 대한 일방적인 추종과 맹신은 결국 그 주군을 망친다는 역사적 사실을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극명하게 보여주고도 남는다. 거짓은 곧 진실이 된다는 역설을 그는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

이번 국가적 혼란에서 국민들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당사자는 단연 대통령이다. 아무 것도 아닌 최순실 일가에게 국가권력이 사유화된 그 헌정질서의 파괴가 얼마나 참담했던지 많은 국민들은 뇌가 파먹히는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끝내 거짓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악착같이 숨긴 것도 그렇고 세 차례에 걸친 대국민 사과도 그렇다.

검찰수사를 받겠다는 약속의 번복은 차라리 인간적이다. 누구도 그 지경이 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다만 국민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거짓말을 너무 쉽게 한다는 것, 정작 위로받을 사람은 국민들인데 오히려 국민들이 대통령의 눈물을 보며 안타까워 하고 위로해야 한다는 기막힌 현실이다.

역시 워터게이트 사건을 맞아 계속된 거짓말로 끝내 하야라는 운명을 맞게 된 닉슨은, 그래도 마지막엔 이런 말을 남겼다 “대외적으로는 평화, 대내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없는 번영을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에 내 개인의 무고를 증명하기 위해 몇 달씩 싸움을 계속하게 되면 대통령과 의회의 모든 시간과 관심을 그 곳에 빼앗길 것이다. 그리하여 저는 내일 정오를 기해 대통령직을 사임하려 합니다.”

지금 국민들은 정신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다. 늦었지만 우리 국민들도 이젠 닉슨의 감동을 맛보고 싶다. 아주 간절한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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