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직언직썰/ 이헌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 이헌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이게 나라냐”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서 터져 나오는 많은 구호들 중에서 유독 이 말이 작금의 나라꼴을 가장 잘 표현한 것 같아 내 마음에 와 닿는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탐욕에 정신 줄을 놓아 버린 아줌마들과 한손에는 비아그라를, 다른 한 손에는 그 아줌마들의 치마를 붙들고 있는 쓸개 빠진 아저씨들이 뒤엉켜 뿜어내는 썩은 냄새가 천지에 진동하도록 지난 몇 년 동안 모두가 굴복하고 침묵했던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게다가 모든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이 마당에도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뻔한 거짓말을 되풀이하고 시간벌기 꼼수를 남발하면서 거머쥔 권력 하나도 놓지 못하겠다고 버틸 수 있는 후안무치함이 통하는 꼴을 보면 “이게 나라냐”고 분통을 터뜨리게 된다.

내가 이러려고 국방의무를 다하고 세금을 꼬박 꼬박 내왔던가. 내가 이 꼴을 보려고 외제의 유혹 앞에서 기를 써가며 국산품을 쓰고, IMF 시절 망가진 나라를 구하겠다고 금쪽같은 내 새끼의 돌 반지를 헌납했는가. 그래도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이 고비만 넘으면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나 같은 소시민들 모두가 자신의 책무를 다하며 묵묵히 살아 왔다.

하지만 박근혜와 최순실에 의해 찢겨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은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국정농단의 주범들은 국민들이 지난 세월 독재와 맞서 싸워 어렵사리 만든 민주주의의 공적 시스템을 한 순간에 무너뜨렸다. 그리고 국가권력을 사적으로 유용해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국민들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 버렸다.

이 과정에서 경찰, 검찰, 공직사회는 나라가 망가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고, 지성으로 치장한 대학들도 그들이 던져주는 돈 몇 푼에 몸과 마음을 팔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여기도 언론이 앞장 선 것은 당연하고, 재벌들은 이런 혼돈상황을 기회삼아서 검은 뱃속을 채워갔다. 그렇듯 우리가 힘들게 지켜 온 민주공화국은 너무도 손쉽게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대한민국은 소수 권력자, 검찰, 언론과 재벌들만을 위한 그들만의 공화국으로 전락해 버렸다.

과연 이런 나라에 희망이 있는지 고통스런 질문을 던지며 지난 시절이 억울해서, 미래의 다음세대 아이들이 걱정돼서 참여한 촛불집회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다. 주말만 되면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와서 나와 똑같이 "이게 나라냐" 또 "이런 사람도 대통령이냐"고 묻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나처럼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촛불집회에 모여서 정의와 양심이 살아 숨 쉬는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최순실의 아바타 박근혜의 무능과 국정 농단에 저항하는 촛불들이 모이고 모여서 절망의 땅에서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희망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희망의 촛불은 청와대로 부터 1,800m 밖에서 시작되었지만, 400m, 200m 드디어 100m 앞까지 진격하면서 횃불이 되어 타오르고 있다.

이미 박근혜와의 전투는 끝났다. 그가 아무리 꼼수를 쓴다고 해도 외신들이 예언한 것처럼 ‘5년 임기를 마치지 못한 한국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이고, 지금 서커스를 끝냄으로써 약간의 품위는 지킬 수 있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그가 퇴진을 하든 말든 그는 이미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박근혜가 끝났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제부터 촛불을 더 크게, 더 높이 올려야 할지도 모른다. 박근혜와 관련자들의 죄상을 모두 밝혀서 감옥에 보내야 하고, 그들이 축재한 재산을 10원 한 장까지 환수해야 한다. 그리고 부정한 권력의 앞잡이였던 검찰과 경찰을 개혁하고,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100만 개의 촛불이 살아 숨쉬는 광장이 매일 열릴 때 비로소 가능할 수 있는 일이다.

2016년 12월 오늘까지의 대한민국은 “이게 나라냐”라는 냉소 가득한 오욕의 땅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순간부터 우리의 힘으로,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치욕의 역사를 끝내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그 소명을 다할 때까지 촛불집회는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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