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들이 웬일로 모처럼 정치 한번 보여 주나보다’ 싶더니 만 이인제 민주당 고문의 ‘색깔논쟁’에 이어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의 때아닌 ‘좌파정권’ 발언이 봄 정국에 재를 뿌렸습니다. 황사가 심하다 했더니 황사보다 더 고약한 ‘색깔망령’이 또 온 나라를 뒤 덮고 있습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두 사람의 말을 한마디로 집약하면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의미가 분명합니다. 왜냐면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는 좌(左)라면 무조건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라는 용어로 일반화돼왔기 때문입니다.
좌익(左翼), 우익(右翼)이란 말의 어원은 18세기 프랑스의회가 그 진원입니다. 1789년 프랑스혁명 뒤 의회는 왼편에 과격파, 오른편에 온건파가 함께 앉아 회의를 진행하였는데 이때 왼편의 과격파를 좌파라 하고 오른편의 온건파를 우파라 불렀습니다.
그 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뒤 세계는 공산주의를 정치적으로 ‘좌’라 부르고 민주주의를 ‘우’라고 통칭해 오고있습니다. 오늘날 이념의 대결이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된 유럽에서는 일찍부터 좌파(Left), 우파(Right)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쓰면서 정권을 주고받으며 공방을 벌입니다.
지금 유럽 여러 나라는 대부분 좌파정권이 집권을 하고 있으며 우파단독 집권의 경우에도 좌파가 제일야당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고 프랑스의 경우에는 좌우가 합작하여 연립 정부를 이끌고 있습니다. 또 정당간 이념적 거리가 좁은 미국에서는 좌우개념 보다는 진보(Liberal), 보수(Conservative)란 용어를 흔히 씁니다.
우리나라는 일제시대인 1920년대 처음 좌파라는 용어가 등장해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좌우대결을 치르면서 좌익이라는 용어 는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와 같은 동의어로 통용돼 오고 있습니다.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말은 성경에도 나와있긴 합니다. 전도서에 보면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 에 있느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지혜자(智慧者)는 신을 믿는 자를 말함이며 우매자(愚昧者)란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자를 일컬음이니 세속의 좌우개념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의 좌익논쟁은 언제고 그 저의가 불순하다는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해방 뒤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통치자들은 하나같이 정적(政敵)을 제거하거나 민주인사를 탄압할 때는 어김없이 ‘좌경’이라는 용어로 색깔을 덧 씌워 용공주의자로 몰곤 했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그 동안 우리사회는 진보주의자들은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덧칠돼 금기(禁忌)의 대상이 돼왔으며 그로 하여 남을 중상할 때는 ‘빨갱이’라는 음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었고 만에 하나 그 표적이 되어 무사했던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목숨을 잃었으며 감옥에 갇혀야 했는지는 이 나라 현대사가 증명합니다.
그런데 그런 색깔망령이 21세기 이 대명천지에 다시 나타나 기승을 부리고있으니 어찌 안타깝다 아니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다 된밥’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대권이 연 이은 여론조사에서 곤두박질치고 경선 결과가 그 지경이라 ‘울고싶어라’의 심정으로 비장의 카드를 쓸 수밖에 없는 초조함의 발로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한 나라의 대권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정책과 비전과 철학을 제시해 당당히 심판을 받는 것이 옳지, 세 불리하다 하여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색깔시비나 벌이는 태도는 결코 국민의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을 들출 것도 없이 색깔논쟁은 당장 집어 치워야 합니다.
아무리 네거티브 전략이라 해도 용공음해는 안 됩니다. 우리 국민들은 그동안의 색깔논쟁에도 넌더리가 나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려거든 이겨도 당당히 이기고 져도 깨끗이 지는 그런 대인의 금도(襟度)를 보여야 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어제의 국민들이 아닙니다. 흐르는 강물을 보되 물 위만 보지말고 그 아래 물 속도 보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민심인 까닭입니다.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를 거스르지 않는 자가 천하의 주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