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구룡사~세렴폭포~비로봉 마지막 단풍산행을 떠나다

즐거운 인생
월간 마운틴 기사제휴·강성구 기자river@emountain.co.kr

▲ 치악산 비로봉에서 바라본 가을 풍경.

원주역에서는 구룡사로 향하는 버스가 30분에 한 대씩 있다. 편리한 교통 덕분에 구룡사는 치악산 산행의 들머리로 인기가 좋다. 또 비로봉 정상을 가지 않더라도 곧게 뻗은 전나무 숲에서 세렴폭포까지 이어진 아늑한 오솔길은 가파르지 않아 가족이나 연인 등 많은 사람이 오간다. 역에서 41번 버스를 타고 20분쯤 달리니 ‘치악산 국립공원 5km’라는 표지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잠시 뒤 ‘구룡사’ 푯말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기사는 과감히 핸들을 꺾었고, 치악산 입구임을 알리는 느티나무들이 반겨주었다.

나무들의 색은 11월의 초순인지라 덜 여문 모습이었다. 시끌벅적하던 계곡의 번잡함은 사라지고, 그 옆으로 늘어진 상가도 조용했다. 구룡야영장은 지난 여름의 흔적을 마무리하는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낡은 나무 데크는 쓰임을 다했는지 한편에 쌓여 있었고, 작은 포크레인과 일꾼들은 이것들을 치우기 바쁜 모습이었다.

구룡사를 시작으로 세렴폭포를 지나 계곡길을 통해 비로봉에 오를 계획이다. 이곳부터 길게 뻗은 소나무를 볼 수 있는데, 황장목이라 불리는 소나무다. 나무는 무심히 하늘을 향해 오른 모습이었다. 곧게 자란 황장목은 쓰임이 다양해 많은 이들이 탐을 냈다. 조선시대엔 벌목을 금지하는 황장금표를 설치했는데, 치악산에만 2곳이 있다. 60개의 황장목 봉산 중에서 치악산 구룡골은 유명한 곳이었다. 산사의 입구를 알리는 일주문을 지나 조용히 구룡사 앞에 닿았다.

▲ 세렴폭포 어딘가에서 만난 단풍

계절의 끝자락에서 바라본 구룡사

구룡사 앞마당에는 큰 은행나무가 서 있다. 굵은 줄기에서 뻗은 가지는 하늘로 곧게 치솟았고, 나무의 표피는 오랜 시간을 이곳에 서 버텼음을 짐작케 했다. 그 생김새가 오랜 전투를 치른 장수의 갑옷과 비슷하다. 밑동에 자란 이끼는 나무를 귀찮게 했으나, 그것도 세월의 흔적인지라 나무는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 앞으로 수령 200년이라는 푯말이 새겨 있지만 이를 비웃듯 건강한 모습으로 서 있다.

시계는 정오를 가리켰고,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은 산꾼에게 익숙한 일이다. 구룡사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탐방로는 낙석으로 폐쇄됐다. 구룡사 아래쪽으로 위치한 다리를 건너 우회해야한다. 약간 비탈진 경사를 지나 10분 정도 걸으니, 키 높은 전나무 숲을 만날 수 있었다. 전나무는 보통 40미터까지 자란다. 큰 키로 태양에서 가장 싱싱한 빛을 받아서 일까. 긴 세월을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초록빛을 발산한다. 전나무 숲에선 4대가 함께 왔다는 가족을 만났다.

계곡은 여름을 기억한다

이곳을 지나 휘황한 색으로 물든 숲으로 들어섰다. 봄엔 노란 꽃봉오리로 유혹하던 생강나무는 가을에도 노란 잎을 내밀며 설레게했다. 키가 작은 싸리나무는 채도가 낮은 노랑색으로 변해 이 계절 자신의 수명이 다했음을 알렸다. 단단하고 잎사귀가 큼직한 쪽동백의 나뭇잎은 ‘또르르’ 말린 채 가지에 매달려 있다. 이 색을 내기 위해 얼마나 기다렸을까. 당단풍은 자신을 알리는 고운 다홍빛깔을 끄집어냈다. 청명한 하늘 아래로 비춘 햇살이 그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마른 계곡을 따라 걷다보면 세렴폭포까지 닿는다. 폭포는 2단으로 구성됐으나, 수량이 적어 기세가 한풀 꺾인 모습이다. 뜨거운 여름 ‘콸콸’대며 치열히 움직인 계곡도 휴식에 접어든 것이다. 폭포에서 내려와 나무다리를 지난다. 이어진 갈림길. 곧 바로 올라가면 사다리병창을 통해 비로봉 능선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어느 곳을 택하든 땀투성이가 되지만 덜 힘든 우측 계곡길을 택한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멀리 폭포 하나가 보이는데, 바로 칠석폭포이다.

이제 정상으로 가려면 가파른 너덜 길을 올라야 한다. 크고 작은 돌이 뒤엉켰지만, 제법 질서정연하다. 바위 간격에 맞춰 발걸음은 자연스레 익숙해진다. 1시간 30분정도로 이어진 길은 지루하지만, 가끔 뒤돌아 먼 산의 단풍을 바라보며 시름을 놓는다.

긴 계곡을 묵묵히 오르니 능선을 알리는 스산한 바람이 불어온다. 해가 비치는 곳은 따뜻하지만, 잠시 그늘을 만나면 몸이 ‘파르르’ 떨린다. 추위를 탓하며 정상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멀리 미륵불탑이 보이고, 정상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쪽은 아찔한 골산이었으나, 반대편은 상냥한 육산의 모습.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발 아래로 펼쳐진 전경을 바라본다. 마치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너울과 같다. 단풍의 너울은 크기를 알 수 없는 모습으로 이 산 저 산을 옮겨 다니며 가을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 나무의뿌리

치악산(雉岳山·1288m)

강원도 원주시와 횡성군, 영월군에 걸쳐 있는 산이다. 198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가을 단풍이 유명하여 적악산(赤岳山)이라 불렸으나, 꿩의보은 설화로 꿩치(雉) 자를 쓰는 ‘치악산’으로 바뀌었다. 비로봉 미륵불탑을 시작으로 상원사, 구룡사, 구룡계곡, 성황림, 사다리병창, 영원산성, 태종대 등 ‘치악 8경’이 유명하다. 또한 구룡사로 진입하는 길에는 황장목과 황장금표가 남아있다.

치악산은 주능선을 중심으로 서쪽은 경사 지대이며, 동쪽은 완만한 지형을 하고 있다. 능선종주는 24km에 달한다. 빼어난 조망을 원한 다면 서쪽코스를 선택하고, 완만한 육산을 원한다면 동쪽 혹은 남쪽에서 올라오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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