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로 편지 / 홍강희 편집위원

▲ 홍강희 편집위원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에 국화꽃이 만발했다. 향기 또한 기가 막히다. 청남대 국화축제가 10월 22일~11월 13일 열리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국화만 있고 대통령은 없다.

지난 1983년 영춘재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청남대는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1980년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했다가 빼어난 주변환경을 보고 감탄한 뒤 그 자리에 지어졌다. 전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으니 아랫사람들이 그냥 지나쳤겠는가. 바로 별장 건립이 추진됐다.

실제 청남대 주변경관은 정말 아름답다.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서 청남대 들어가는 입구에는 은행나무가 도열해 있다. 이 길은 지금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청남대에 들어서면 잘 가꾸어놓은 자연과 탁 트인 대청호의 시원한 풍광에 관광객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대통령 별장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본관, 오각정, 골프장, 양어장, 초가정 등에서는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역대 대통령들은 여름휴가와 명절휴가를 비롯해 매년 4~5회, 많게는 7~8회 청남대를 이용했다. ‘청남대 구상’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정책들이 이 곳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대통령 한 명의 안전을 위해 한 개 부대가 주둔했고 관리비도 상당히 많이 들어갔다. 그래서 문의면 주민들을 비롯한 충북도민들이 오랫동안 청남대 개방을 외쳐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청남대 개방을 선거공약으로 제시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주민들의 품으로 돌려준다며 2003년 4월 8일 관리권을 충북도로 이양한다. 그 뒤로 순수한 관광지가 됐다. 지난해 11월 6일 관람객 900만명을 넘었고 10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곳에는 청남대를 이용했던 대통령들의 이름을 붙인 대통령길, 역대 대통령 기록화가 전시된 대통령기념관, 역대 대통령 모습을 청동상으로 제작 설치한 대통령광장이 있다. 관광객들도 꼭 둘러보는 코스이다. 현재는 이명박 대통령까지 흔적이 남아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퇴임후에는 동상과 ‘박근혜길’이 생길 것이다. 아니, 지금 국민들의 성난 여론으로 보면 설립조차 못하게 막을 수도 있다.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관 뚜껑을 덮을 때에야 일이 비로소 정해진다. 즉, 사람에 대한 평가는 관 뚜껑을 덮은 뒤에야 이뤄진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에게는 이 단어조차 사치이다. 관 뚜껑을 덮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국민들은 이번에 탈법과 불법, 무능으로 점철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고스란히 보았다. 그럼에도 바닥까지 친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간다면 일부 지지자들의 비이성적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퇴임 후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는 대통령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귀향해 농사짓고 주민들과 소탈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마저도 안됐다. 박 대통령의 노년도 보나마나 뻔하다. 오늘도 많은 관광객들이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국화꽃의 향연을 보러 청남대로 간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관광객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감격하지 역대 대통령들의 흔적을 보고 감동하지는 않는다.

충북도가 지난 2007년 청남대에 대통령역사문화관을 만들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우리에게 자랑스런 대통령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박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청남대에 기록을 남긴다면 이 때보다 더한 저항이 있을 것이다.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등 ‘한 권으로···’ 역사물을 내는 스테디셀러 작가 박영규 씨는 지난 2014년 ‘한 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을 펴냈다. 그는 앞으로 박 대통령에 관한 책을 쓸 것이다. 실록이니 사실에 근거해 쓰겠지만 이 것을 읽을 후손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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