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오원근 변호사

▲ 오원근 변호사

권력무상(權力無常). 요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실감나는 문구다. 권력에 취해 망나니처럼 칼을 휘두르던 자들이 이제는 그 칼끝 앞에 섰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급하게 귀국시킨 최순실과 몇몇 수족들을 처벌받게 하는 것으로 꼬리를 자르려고 하지만, 이제는 너무나도 눈에 빤히 보이는 수가 되었다. 국회 쪽에서 밀려드는 사퇴 압력의 물길을 이정현이라는 꼭두각시로 막아보려고 해도, 시간이 갈수록 초라하고 추해지기만 한다.

손 안에 두고 마음대로 부렸던 검찰도 이제는 제 살 길을 찾아 방향을 틀고 있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극보수 언론들도 등을 돌렸다. 한 때 대통령에 대해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라고 꼴사나운 아부를 하던 조선일보는, 레임덕이 시작되는 박 정권을 비판하기 시작했다가, 송희영 주필이 대우조선으로부터 억대 유럽여행 접대를 받았다는 폭로로 울분을 삼키며 꼬리를 내려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박근혜 죽이기의 첨병으로 나섰다.

박 정권의 불통의 상징인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검찰 조사실 안에서 팔짱을 끼고 수사검사는 그 옆에서 조신하게 서 있는 장면을 찍어 1면 톱으로 내보냈다. 우병우와 검찰이 작살났다. 사진의 위력을 보여준 특종이었다. 기자는 이 장면을 찍기 위해 검찰청사 맞은편 건물 옥상에서 저녁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있었다고 한다. 조선일보의 기회주의적 변신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권력무상의 생생한 사례라 할 수 있다.

2012년 여름, 박근혜 대통령 예비후보는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하고, 또 “지금 민생이 얼마나 중요한데 역사논쟁을 하느냐”고도 했다. 민주주의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만 갖고도 박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몰상식과 몰이해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그의 아버지 박정희는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후 권력 연장을 위해 3선 개헌을 하고, 종신집권을 위해 유신개헌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인권이 철저히 짓밟혔고,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잃고 맹목적인 군대식 획일화가 되었다. 개인은 없고 권력자가 참칭한 국가만 있었다. 이러한 상태가 더 지속되었다면, 지금의 북한처럼 되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고귀한 분들의 피땀으로 군부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질 수 있게 되었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지 않고 어떻게 제대로 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가? 민생이 어떻게 역사와 민주주의와 떨어져서 존재할 수 있는가? 돼지처럼, 노예처럼 밥만 먹여주면 행복한 민생인가? 지금이 어느 때라고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하고, “민생을 위해 역사논쟁을 접자”고 하는가? 이 말에 속아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놓으니, 자기 아버지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국정교과서를 만들고, 제멋대로 일본과 위안부 합의를 하지 않는가? 박근혜를 선택한 사람들은 자신의 민주주의와 역사에 대한 이해력을 진지하게 점검해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박정희, 박근혜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뜻의 ‘권력무상’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말이기는 하지만, 반민주적인 권력이 모습만 바꾸어 반복된다면 그것은 냉소의 대상이 될 뿐이다. 실제 우리 역사가 그랬다. 일제에 부역하며 영화를 누렸던 권력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형태만 바꾸어 그 자리를 이어왔다. 권력의 무늬는 바꾸었지만 본질은 그대로였다. 광복이, 4·19가, 10·26이, 6월항쟁이 억압으로부터 비가역적인 해방을 가져다준다고 믿었지만 언제나 착각이었다. 악순환의 고리를 제대로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

권력의 추악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특검, 국정조사 등을 통해, 누구의 말처럼, 잔인할 정도로 철저하게 조사하여 관련자들을 응징하여야 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점검이다. 나 자신, 가족, 직장, 국가에 대해 얼마나 민주적이었는지에 대한 점검 말이다.

이것은 박근혜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민주시민은 참된 자유를 추구하고, 이것이 부당하게 억압될 때는 분연히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런 개개인들이 곳곳에 수없이 박혀 있는 사회라야만, 다시 박 대통령 같은 선무당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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