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발행인

▲ 한덕현 발행인

최순실 사태가 점입가경으로 치달으면서 정치권 못지않게 요동친 곳이 있다. 이른바 메이저언론, 그 중에서도 지상파들이다. KBS는 최순실 특별취재팀을 뒤늦게 꾸렸지만 구성원들 사이에 공영방송에 대한 자아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급기야 고대영사장 퇴진 논란으로 바람잘 날이 없다. 이미 이정현 발 청와대의 언론장악 음모가 불거진 후 KBS의 내부 상실감은 극에 달한 상태다.

그러잖아도 노사갈등이 심했던 MBC의 사정은 더욱 꼬이고 있다. 자체 사옥에 ‘청와대방송 즉각 중단하라’는 현수막과 피켓이 등장했고 안강환 사장과 최기화 보도국장은 현재 전방위적인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정권의 눈치를 살피다가 최순실특별취재팀마저 제안 이후 한달이 지나서야 꾸려진 SBS 또한 다를 게 없다. 정치권력과 경영진의 보도개입 중단 및 공정방송을 촉구하는 결의대회가 열렸는가 하면, 사원들 사이에선 사실을 알고서도 보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이 넘쳐난다고 한다. 이 모든 현상은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가 시발점이 됐다.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종편 jtbc 보도가 아니었다면 최순실 파문과 지상파의 이같은 굴욕은 없었을 것이다. 더 사실관계에 천착한다면 최순실 특종은 미르재단의 의혹을 앞서 치고 나온 TV조선이 먼저다. 하지만 기껏 특종을 하고서도 자매사인 조선일보의 송희영 주필 비리로 발목이 잡혀 권력의 눈치를 보다가 경쟁사에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겼다.

jtbc가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언론 본연의 숙명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권력에 부역하며 기회주의적 생존을 이어오던 우리나라 언론이 오랫동안 잊고 사장시켜 왔던 ‘저널리즘의 본질’을 jtbc는 이번에 확실하게 다시 곧추세운 것이다. 이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되뇌이는 “만약 최순실 태블릿pc가 다른 언론사의 손에 들어갔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역설로서도 입증되고 남는다.

이러한 전후관계를 떠올린다면 최순실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가장 절체절명의 순간에 언론을 다시 일깨워 준 수호천사나 다름없다. 실제로 그 효과가 지금 언론계를 긴장시키는 기운으로 나타나고 있고, 앞서 얘기한 메이저 언론들의 사례 또한 이 것으로부터의 여파라고 해도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 이유는 이렇다.

이번 최순실 사태는 언론에 관해 그동안 전혀 경험하지 못한 아주 기발한 프레임을 하나 만들어냈다. 쉽게 말하면 특정 언론사가 다른 경쟁사에 갖는 부러움과 시새움의 새로운 추세이고, 좀 더 고차원적으로 말하면 언론사 스스로의 혁명적(?) 자기성찰이다.

과거 독재, 권위주의 시대에서 언론의 최대 과제는 권력으로부터의 자율권 확보였다. 권력의 감시 하에 과연 언론이 듣고 본 것을 제대로 쓸 수 있겠느냐가 늘 시대적 화두가 되었고, 이 것의 파생상품격으로 나온 것이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라는 흑백논리의 이분법적 구분이었다.

그런데 최순실 사태를 맞으면서 덩치큰 언론들이 궁극적으로 고민한 것은 힘의 대립관계인 대자적(對自的) 관점이 결코 아니다. 오로지 자기반성과 자아비판이 넘쳐났다. 권력에 대한 투쟁의식도 아니고 진보와 보수라는 굴레의 허우적거림도 아니었다.

대신 우리도 jtbc처럼 하자는, jtbc를 이겨보자는 부러움만이 압도했다. 이 와중에 보수와 진보라는 경계는 무너졌고 보수언론의 태두라는 조선조차 박근혜 흔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비로소 언론이 이념의 틀을 벗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닥치고 보도’라는 본연의 역할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니 최순실이 고마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보수 언론들이 박근혜 죽이기에 나선 것은 어차피 고사할 현재의 보수정권을 대체할 또다른 보수정권의 창출을 위한 ‘플랜 2’라는 지적에도 불구, 어쨌든 최순실 사태는 언론에 있어 부인할 수 없는 터닝포인트가 된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것이 비록 일시적일망정 언론은 지금 많은 것을 후회하고 있고 또 많은 것을 국민들과 소통하는 중이다. jtbc를 뺀 다른 언론들은 최순실을 모른 게 아니다. 이미 2년전부터 알았지만 권력에 기죽어 못쓰고 또 침묵했을 뿐이다.

최순실 사태의 와중에 뜬금없이 재조명된 게 있다. 지난해 연말 개봉돼 히트를 친 영화 ‘내부자들’이다. 정치와 언론, 재벌, 검찰 사이의 부당한 커넥션을 다룬 문제의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오징어 씹어 보셨죠, 근데 그게 무지 질긴 겁니다...이빨 아프게 누가 그걸 끝까지 씹겠습니까, 적당히 씹어 대다가 싫증이 나면 뱉어 버리겠죠. 우린 끝까지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나라 민족성이 원래 금방 끓고 금방 식지 않습니까. 적당한 시점에서 다른 안주를 던져주면 그 뿐입니다.” 언론사 논설주간으로 열연한 이강희(백윤식 역)의 독백이다.

코너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을 숨기기 위해 회심의 카드, 개헌이라는 안주를 던져줬지만 국민들은 더 이상 속지 않았다. 그래도 대국민담화문 등으로 끊임없이 동정론을 일으키려 했으나 실패하자 급기야 듣기만 해도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국회까지 찾아 와 몸을 낮췄다. 여전히 우리 국민은 적당한 시기에 안주만 바꿔주면 반짝 물어뜯다가 내팽개치는 개 돼지로 취급받고 있다.

최순실 사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우리가 이러려고 국민을 했나’라는 자괴감을 안기는 강남 아줌마와 그 부역자들을 반드시 색출 처벌해야 하고 그들의 재산도 모조리 환수해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우리는 과거 친일청산을 못한 국민적 원죄를 또 다시 재연하게 된다.

그 때까지 과연 대한민국 언론이 지금처럼 행동할 지는 앞으로 두눈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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