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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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을 바라보며
  • 정명숙
  • 승인 2004.10.06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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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자욱한 아침 들길을 걷는다.

길 옆에는 여름동안 낯익은 풀들이 조금씩 몸 색깔을 변하게하고 단풍은 서서히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 먼저 떨어진 나뭇잎은 아직 초록색을 더 많이 지니고 있어 빠른 이별이 서러워 보인다.

이제 너그러워진 공기는 식물들에게 수확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고 사람은 그 기쁨을 기꺼히 받아 드릴 준비를 하고 있다. 들길에는 무리지어 피여있는 꽃들이 안개속에서 수줍은 미소를 띠며 스쳐 지나는 나를 반긴다. 타인의 손에 의해 한곳에 뿌리내려 안주할수 없는 서러운 운명을 홀로 삭히며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질긴 목숨줄을 쥐고있는 들풀.

밟히고 밟혀도 어느순간 새싹이 돋는 질경이와 줄기만 땅에 닿아도 뿌리를 내리는 개여귀는 베어내고 뽑아도 어느새 홍자색 꽃을 피우고 세상을 바라본다. 끈질긴 생명력의 경이로움과 애잔한 마음을 갖게하는 그들이지만 여름에 피여나는 들꽃은 아름다움 보다는 사람의 노동을 증가시키는 잡초일 뿐이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곡식익어 수확할 시기가 되면 잡초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지는것 같다. 그 시기를 틈타 숨죽이고 있던 들풀들이 일제히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하늘을 향해 꼿꼿이 줄기를 쳐들고 있는 풀들. 단단한것 같으면서도 손끝을 대보면 금시 소멸해 버릴것 같은 순결한 꽃봉오리. 어떻게 거기 그러한 빛깔이 숨어 있는지 놀랄수 밖에 없는 아름다운 꽃잎. 일년을 기다려 보름정도을 꽃 피우기 위해 뿌리로만 버티고 서서 눈물겹게 당당하게 유한한 삶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삶의 두려움에 주눅들지 않고 꿋꿋이 견디는 것은 내일에 대한 기다림과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들꽃은 순리에 순응 하면서 자연의 섭리대로 철들어 가는 삶을 깨닿게 해준다.
잎사귀가 들깻잎을 닮은 보라빛 꽃향유가 무리지어 피여 진한 향기를 바람에 날리고 예쁜 복 주머니 같은 물봉선화도 한 무더기 피여있다. 구절초는 흰 꽃잎에 노란 꽃술을 야무지게 내밀고 하늘을 향해 미소짓고 쑥부쟁이의 애련한 자태는 이룰수 없는 사랑의 아픔이련가, 가늘고 긴 꽃대와 연보라빛 꽃잎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눈물짓는것 같아 마음이 시리다.

길옆으로 떼지어 피여있는 고마리 풀꽃은 흰바탕에 붉은빛이 감도는 작은 별사탕 모양으로 꽃이 뭉쳐서 피여나 안개속에서 마치 별처럼 반짝거린다. 그들을 바라보면 너무도 소박하고 겸손하다.
가을에 피는 꽃들은 유난히 보라색 꽃을 많이 피운다. 왜 그럴까? 따가운 햇쌀 때문일까. 아니면 소슬한 바람 때문일까?

안개가 자욱한날 아침에 마주치는 들꽃의 아름다움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누구나 마음속에 아름다움의 원형을 간직하고 산다는 생각을 하며 아름다움에 대한 본능적 그리움, 그리고 그 감동의 경험은 삶이 지속되는 동안 간직하고 싶다. 화려한 조화 보다는 황량한 벌판에 외롭게 핀 한 송이의 들꽃이 더욱 감동적인 것도 그 때문이다. 아름다움의 감동 뒤에는 꽃을 피우기 위해 고난의 봄과 여름을 지나온 들꽃의 처절하고도 슬픈여정이 꽃잎마다 맺혀 있는듯 다가와 예전의 할머니들과 어머니들의 삶을 보는듯하다. 태어날 때부터 여자라는 이유 만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자라 혼인을 해서는 새경없는 일꾼으로 대를 이어주는 씨받이로 살아온 대부분 여인네들의 삶은 인고의 세월이었다.

어떠한 역경속에서도 자식 많큼은 지켜내기 위해 타고난 운명에 적응하면서 주어진 생의보전을 묵묵히 실천하였던 질기고도 한많던 삶은 한 송이의 들꽃과도 같다.
어려움을 겪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고 난관에 부딫치는 과정에서도 생명이 있는 모든것들의 결과는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고 있으니 그 얼마나 대견하고 아름다운 삶인가?

물기 젖은 들꽃위로 안개를 헤치며 아침햇쌀이 찬란하게 쏟아진다. 그림같은 풍경은 들길을 걷는 나를 또다시 감동 시키고 발길조차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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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11 19:37:24 , IP:*****
가을 안개에 젖은 호수 같이 촉촉 한 정 작가의 눈!
그 곳에 늘 들꽃이 피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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