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밀어부치기의 반역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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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생각한다] 밀어부치기의 반역사성
  • 충청리뷰
  • 승인 2002.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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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 갈 적마다 자주 듣는 말들이 있다. 그것은 무심천 양쪽 강변을 따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참으로 보기 좋았으며, 벚꽃 옆에서 노점을 열겠다는 모 장애인단체와 청주시 사이의 완력싸움이 다소 볼성 사나웠다는 것, 그리고 집권여당 대통령후보경선의 각 도별 결과치와 야당 내부의 권력다툼에 관련한 말들이고, 참석자들 대부분이 나름대로의 감상법을 가지고 지닌 바 소견을 말하기 마련이어서, 심심파적거리로 삼기에 그야말로 제격이다.
그러나 요즈음의 진정한 화두는 ‘밀어부치기’가 아닌가 싶다. 정치인들은 그것이 실제이든 가공된 것이건 상관없이 ‘동조세력’을 끌어모아 소위 ‘대세론’으로 밀어부치고 있고, 공기업민영화와 관련하여 정부는 공권력과 해고위협으로, 노조는 시민을 볼모로 한 동맹파업으로 서로를 압박하면서 밀어부친다. 비윤리적이라는 원성을 사면서도 전국단위 파업을 통하여 톡톡히 재미를 보았던 의사들조차 현행 보건복지부의 정책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해칠 ‘염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금 파업에 나서겠단다.
역사는 위와 같은 반이성적, 비합리적 밀어부치기가 교묘한 선전선동과 결합할 경우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온다는 것을 실증하고 있다. 예컨대 제1차세계대전은 단순한 암살사건이 단초가 되었는데, 타 민족에 대한 무분별한 적대의식과 타협할 줄 모르는 군주들의 아집이 결합하여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대재앙으로 발전하였다. 무엇보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성을 신(神)처럼 숭앙하던 19세기를 막 통과한 유럽세계에서 위와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이니 온통 혼돈인 듯한 현대에 이르러 더 무엇을 기대하랴.
김대중정부는 1998년 공기업 민영화계획을 수립한 이래 ‘민영화’라는 규범적 명제를 마치 불변의 가치인양 밀어부쳤고, 이를 반대하여 파업에 돌입한 수천명의 노동자들을 가차없이 해고시키는 완력을 발휘한 바 있다. 노동계 역시 당장 대량해고와 그 몇 배에 이르는 가족들의 생계위협에 맞서야할 형편인 터에, 춘투(春鬪)를 앞두고 미리부터 기선을 제압당할 수는 없다는 절박한 처지에 있었다. 노·정 양측은 오로지 서로에게 출혈만을 강요하는 밀어부치기로 일관할 듯 하였고, 이에 평소 말많던 논객들조차 어느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못한 채, 단지 양비론이나 원칙론으로 지면을 메꾸거나, 안타까워 할 뿐이었다.
통상 상대방에 대한 ‘밀어부치기’가 진행될 경우, 이를 통제하면서 협상의 여지를 남기는 소수의 목소리는 ‘적을 이롭게 하는 발언’ 쯤으로 매도되기 십상인데, 며칠전 노·정 합의는 정부와 노동계 내부에 그러한 작은 목소리가 분명히 존재하면서 제자리를 잡아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므로 더욱 반가웠다. 그리고 여기에 덧부쳐 김대중정부가 출범한 이래 금과옥조처럼 밀어부쳐 왔던 몇몇 정책들의 공과와 그 존폐여부에 관하여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김대중정부가 출범할 당시는 IMF관리체제하의 비상시국이었고, 사정이 너무도 절박했기에 우리나라에 돈을 빌려주는 자들의 요구에 무조건 따라야했고, 우리의 경제구조와 체질을 개편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했다. 그리하여 노사간의 극한대립과 사회혼란이라는 비용을 모두 감수한 채, 대량해고라는 단순우직한 방법으로 노동시장의 탄력성을 확보하고, 공공부문의 ‘민영화’가 경제체제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첩경인양 밀어부치는 등 오직 서구자본의 구미에 맞는 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부문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교육영역에서조차 공공성보다는 수요공급의 시장원리에 보다 충실하자는 소위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몇몇 정책들이 시행되게 되었다. 최근의 자립형사립고 지정, 기부금입학제도, 교원성과급제도 등의 졸속정책들은 모두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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