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발행인

▲ 한덕현 발행인

과거 정권에서도 대통령 비선과 측근이라는 부류들의 일탈은 늘 있어 왔지만 이번처럼 온 나라를 총체적 패닉으로 빠뜨리지는 않았다. 청와대를 위시한 국정의 공적시스템이 이렇듯 한꺼번에 무너질 수가 있나를 몇 번이고 되뇌이지만 그 때마다 엄습하는 건 내가, 우리국민이 얼마나 등신이면 이 지경까지 당하느냐는 모멸감 뿐이다.

단순히 상식에 대한 유린이라면 나중에라도 고쳐잡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작금의 사태는 아예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본질’ 자체를 부정하고 심지어 증오케 하고 있다. 민주국가 체제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고,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우선 그렇다.

지금 국민들은 최순실의 범죄가 두려운 게 아니라 그 범죄에도 정신줄을 놓고 질질 끌려다니는, 오히려 이를 덮고 희석시키며 악용하려고까지 하는 위정자들이 더 공포스럽다. 나라가 쪽박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흔들리지 않고 권력다툼을 벌인다. 아무리 그들이 권력과 기득권을 누리며 살았더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까지 국민들의 생각과 어떻게 저토록 엇나가고 있을까를 고민하면 소름이 돋는다. 그래서 국민들은 요즘 대책없이 아프다.

거국내각이니 국정쇄신이니 하는 말들은 이미 물건너갔다. 후속조치라는 것들이 하나같이 진정성이 아닌 권력을 향한 간교한 계산과 이해타산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해법은 간단하다. 헌법질서를 교란한 국기문란의 몸통 박근혜 대통령은 당장 하야해야 하고, 전대미문의 국정농단여(女) 최순실은 법대로 처벌하면 그만이다.

국가와 국정의 안정을 위해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얘기야말로 파쇼적 발상이다. 이미 본색을 드러내 자격을 상실한 그들에게 더 이상 뭐를 맡기겠다는 것인가. 이 마당에 국민이 책임질 일은 나라를 졸지에 후진국보다도 못한 미개국가로 전락시킨 저들을 냉철하게 응징하고 국가의 유일한 주권자로서 새판을 짜는 것이다.

여당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야당이 헤매는 것은 정권교체에 눈이 멀어 이같은 원칙을 희석시키고 꼼수를 부리는데 따른 자가당착의 필연적 결과다. 이런 야당이 정권을 잡아 봤자 또 최순실 사태가 벌어진다. 지난날 민주화투쟁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나도 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싶다”는 국민들의 절규가 저들의 귀에는 그저 “정권을 잡고 싶다”로 들리는가 보다.

‘모든 국민은 자기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요즘처럼 혼란스런 시국에 곧잘 인용되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 1859)의 이 말은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자기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가 맞다. 그가 미국에 장기간 체류하며 직접 경험한 것을 저술한 <미국의 민주주의>에 나오는 구절인데 이 책에는 후세에게 던지는 이보다 더 살벌한 경고가 실려 있다.

“민주주의의 위험은 무정부적 취약성에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국민의 대다수를 배경으로 권력이 무소불위의 힘을 갖는데 있다. 강력한 국민의 대다수는 정치와 여론을 지배하고 때로는 압제적이 된다.” 그러면서 그는 이를 막을 수 있는 힘은 행정과 입법의 분권화와 독립적인 사법권의 존재에 있다고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가 토크빌의 예언은 생뚱맞게도 두 세기가 넘은 2016년 오늘 현실로 다가왔다. 지구가 두쪽이 나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30% 콘크리트 지지층인 국민의 대다수를 배경으로 권력이 무소불위의 힘을 남용할 때 이것을 막아야할 입법(여당)과 사법권은 적어도 jtbc의 특종보도가 나가기 전까지는 한 통속이 됐다. 그러니 민주주의 위험은 필연적 결과가 아니겠는가.

원인은 또 있다. 앞에서 말한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파쇼적인 발상’이라는 것에 대한 근거다. 모든 역사에서 비극적 운명을 맞은 파쇼는 늘 국가와 사회의 위기의식을 부각시키는 데서 출발했다. 정치현상을 불신하고 정당과 의회, 더 나아가 정부의 무능과 병리현상을 확대, 과장하면서 어느 특정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힘’의 필요성을 대중들에게 호소한 것이다.

그러기에 파쇼의 태생적 생리는 공동체 의식이 아닌 유아독존이고 자기들만의 결속과 응집이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며 엘리트의식으로 무장된 선민(選民)사상을 앞세운다. 결국 이것들의 집단화로 나타나는 국가라는 지배체제는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모든 분야를 끼리끼리의 권위주의 방식으로 통제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역사는 반드시 이를 심판했고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했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 국민들이 끊임없이 들은 얘기는 정치불신과 북한에 의한 위협 등 위기상황이다. 그러면서 친박이니 문고리 3인방이니 하며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 하고만 의기투합했다. 물론 북한의 도발과 핵실험 등에 대해선 단 한순간도 경계를 늦춰선 안 되겠지만 문제는 북한변수가 지나칠 정도로 정국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하루도 편할 틈이 없는 위기의식 속에 결국 그들은 뒤에선 나랏돈으로 말도 안되는 분탕질을 해댄 것이다. 국민들로선 복장이 터질 일이다.

왕정과 식민시대를 거쳐 암울했던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기까지 그 숱한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일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최순실이라는 일개 ‘강남 아줌마’의 손아귀에 놀아난 지금의 현실, 과연 우리 국민들의 수준은 끝내 이것밖에 안 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권력자에게는 얼마나 큰 행운인가”라는 히틀러의 말을 곱씹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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