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봉사단원 1개월간 합숙교육 ‘하나같이 선남선녀’
한국, 세계 유일 ‘원조수혜국’서 ‘원조공여국’ 탈바꿈

안남영 전 HCN충북방송 대표

“니깟 놈이 무슨 국가대표여. 너는 니 인생도 대표가 안 되는 놈이여.”

영화 ‘국가대표’의 명대사다. 제목이 참 낯선 영화였다. 흥행 공식과 좀 동떨어져 보이는, 어설픈 작명이 인상적이었지만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한데 요즘 그 딱딱한 제목이 내 일상의 키워드일 줄이야. 또 그 대사는 1년 이상 내 두뇌 회로를 수시로 제어 중이다.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은 존재 자체로 국가대표다. ‘준외교관’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단원 일거수일투족이 곧 한국의 이미지와 직결되기 때문. 한국인이 드물어서다. 반자르마신市에 10명도 안 된다. 모르는 이도 내가 자전거를 타든, 길을 걷든, 물건을 고르든 먼저 정답게 눈인사를 건네곤 한다. 한류 덕분인가 싶은데, 행동거지를 아니 조심할 수 없는 이유다.

해외봉사단원은 이런 막중한 존재적 의미를 새기도록 교육을 받는다. 지난해 7월5일. 나는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해외봉사단 제104기로 강원도 영월의 교육원에 입소했다. 교육 프로그램은 해외활동에 필요한 소양, 언어, 안전 등 8월7일까지 30여 과정이 촘촘히 짜여 있다. 사물놀이 등 전통문화 체험도 있었다. 그 당시 교육 내용 가운데 이따금 굵은 글씨로 뇌리에 부각되는 것이 더러 있다.

그 중 애국심 재충전의 기회를 잡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솔직히 해외봉사단에 지원할 무렵 주제넘게도 한국의 미래에 대한 회의와 걱정이 많았다. 뉴스추적에 몇 시간씩 보내는 뉴스정키의 운명인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사회 주체들이 보여주는 반목과 대립,혹은 도덕과 질서의식 실종을 매일 확인하는 건 고통이었다. 평소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랄까, 애국심 같은 게 고갈될 지경이었다.

그런데 교육장에서 회복의 실마리를 본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 한 가지를 접한 거다. ‘원조수혜국’에서 ‘원조공여국’으로 올라선,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 특히 수많은 저개발국이 아직도 발전 모멘텀을 못찾고 빈곤에 허덕이는 현실과 그 배경을 알고는 문득 조국애에 새살이 돋는 느낌이었다. 우리나라가 도약하지 못했다면 나의 삶은 어땠을까? “아, 대한민국!”이 가슴속에서 절로 외쳐졌다.

빈곤 불평등은 인권의 문제

▶글로벌 시대의 시민교육 ▶한국의 대외원조와 ODA(公的開發援助) 최근 동향 ▶인권과 국제개발협력 ▶개발도상국의 성주류화 전략과 사업 ▶타문화 이해와 수용 등 이런 글로벌 의제학습은 이 시골뜨기의 시야를 확 넓혀 줬다.

이런 교육받으면서 놀란 사실은 저개발국 빈곤의 최대 원인이 정부의 부정부패에 있다는 것. 2차세계대전 이후 무려 45조 달러가 원조에 쓰였지만 대부분 증발됐다고 한다. 그러니 ▶빈곤퇴치▶보편적 초등교육▶양성평등▶보건향상▶환경보전▶질병퇴치 등 어젠다는 21C 와서도 당면과제다.

그에 비해 우리의 발전은 가히 눈부시다고 할 만하거니와 이제 그 경험을 전수하는 건 인류사적 의무란 생각이 들었다. 빈곤을 인권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국제원조 동향에 관한 교육에서는 자못 숙연해지기도 했다. 하루 1.25달러로 사는 인구가 20억 명이고, 의료서비스를 전혀 받지 못하는 인구가 13억 명, 매일 기아 등으로 죽는 아이들이 2만 명에 이르는데, 그게 게으름의 문제도, 경제 문제도 아니고 인권의 문제라는 거다.

차별과 소외 등 제도적 인권침해 속에 신분상승과 소득증대 기회가 박탈됨으로써 구조적 빈곤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전후 신생독립국 중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룬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인류사적 의무 이행에 동참하게 된 나의 선택이 대견스러워졌다.

교육 중 나를 행복하게 했던 것은 동류의식이다.별의별 사람들의 종잡을 수 없는 가치관과 행태가 난무하는 세상.그 약삭빠른 부류와 전혀 다른 사람 냄새가 좋았고 교육장 분위기는 한없이 푸근했다.동기생은 64명이었다.아들뻘인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10살 많은 장교 출신도 있었다.하나같이 표정 좋고, 말씨 부드럽고, 마음씨가 고왔다.교육은 수강과 분임토의 및 발표 또는 체험 등 다양하게 진행됐다.

교육 9일째. 뜻밖에 동료 추천으로 선출 대표 후보가 됐다가 ‘쓴맛’을 보았다.이조차 추억이 아닐 수 없다. 언제부턴가 ‘동지’라는 말이 떠오르더니 ‘국가대표’라는 단어와 함께 아예 생활좌표가 되어 버렸다.4주차 대화의 시간 소감발표에서 이걸 소재로 봉사자세에 대해 발언했다.언감생심 국가대표일 수 있겠는가만 그런 자세야말로 각기 이정표가 될 만하다는 생각에서다.

‘감사보다 차원높은 봉사’

‘겁나는 교육’도 있었다.안전교육이다.의료안전과 신변안전에 관한 주제로 여러 차례 진행됐다. 풍토병,광견병,강도,교통사고,재해 등 조심할 것들 천지다.예방주사를 맞고 호신술까지 배웠다.먹는물 조심도 강조포인트였다.

특히 말라리아 모기에 관해 얼마나 겁을 주던지. 모기장,출입문경보장치,전자호루라기,비상용 ‘생존키트’등 지급 물품이 설명될 때마다 다들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더구나 교육원 한쪽에 해외봉사 중 사망한 단원들의 위패를 모신 추모원이 있기에, 이어진 생명보험 관련 안내를 허투루 들을 수가 없었다.

코이카 단원 1인당 예산이 연 3,500만 원이란다.총예산을 단원 수로 단순히 나눈 금액이어서 실제론 그에 훨씬 못 미친다 해도 상상초월이다.그만큼 국가가 받쳐 주고 있음은 여간 든든한 게 아니다. 아프면 어디서나 우리말로 24시간 전화상담하고 필요시 국내후송까지 가능한 의료시스템이나 생명보험에도 가입시켜 주는 후생은 어찌보면 ‘귀족적’이다.비교 대상은 아니겠지만 슈바이처나 고 이태석 신부의 자취에 비하면.

요즘 우스갯소리에 ‘박사<밥 사<술 사<감사, 그보다 차원 높은 것이 봉사’라던가? 그러나 최근 코이카 해외봉사단에 대한 일부 부정적 보도가 나가 안타깝다.완전무결한 조직은 없다.그 점에서 보도 내용이 침소봉대되고 균형감을 놓쳤다는 생각이다. 대부분 코이카 봉사단원들은 교육받은 대로 실천하며 보람을 쌓아가고 있다고 믿기에 말이다.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2천여명 봉사단원 활동

우리의 개발신화는 개도국엔 부러움의 대상이다. 세계 최빈국에서 7번째로 50-20클럽(인구 5천만 명 이상, 1인당 GDP 2만 달러 이상)에 이름 올린 나라가 한국이다. 우리나라는 1987년 수출입은행(EDCF)을 통해 유상원조 시작, 1991년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코이카 설립 이후 공적개발원조(ODA)사업과 봉사단파견을 본격화했다.

2010년 OECD의 개발원조위원회(The Devolopment Assistance Committee, DAC)에 가입, GDP 0.25% 지원을 목표로 각종 원조 사업을 제도적으로 수행 중이다. 해외봉사단 규모는 점점 커져, 현재 40여 나라에 한국어·컴퓨터 등 37개 분야 2천여 명이 파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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