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적 신문이라 할 수 있는 ‘독립신문’이 창간된 것은 1896년 4월 7일이었습니다. 미국에서 귀국한 서재필이 주동이 되어 창간한 독립신문은 제호로부터 3면에 이르기까지 순 한글을 사용, 주 3회 발행했는데 민간이 운영하고 유료광고를 싣고 지대(紙代)를 받는 등 오늘날과 같은 신문의 틀을 갖춰 현대적 신문의 효시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지금 ‘신문의 날’을 4월 7일로 정해 기념하는 것은 독립신문의 창간일 에 따른 것입니다.
오늘 현존하는 신문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은 조선일보입니다. 조선일보는 3·1운동이 일어난 다음해인 1920년 3월5일 창간되었고 그로부터 26일 뒤인 4월 1일 동아일보가 창간호를 냈으니 두 신문은 올해로 82년의 역사를 쌓은 셈입니다. 충북의 ‘원조’인 충청일보는 해방 다음해인 1946년 3월 1일 창간돼 올해 56년을 맞았습니다.
이 땅에 현대적 신문이 등장한지 106년, 바야흐로 이 땅의 신문들이 춘추전국시대를 맞고있는 가운데 7일 은 ‘제46회 신문의 날’입니다. 한국신문협회는 올 신문의 날 표어로 ‘공정한 보도’ ‘책임 있는 신문’ ‘신뢰받는 언론’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우리 신문이 기나긴 세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국가사회에 공헌한바 지대하다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실 언론의 역할 가운데 이 세 가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러나 신문의 날 표어가 말해주듯 공정, 책임, 신뢰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던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흔히 신문을 가리켜 ‘제4부’라 하고 ‘사회의 목탁’이라고 합니다. 또 신문기자를 ‘무관의 제왕’이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신문의 명예와 사회적 책임을 한마디로 압축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신문현실은 어떻습니까. 과연 공정했고, 과연 책임 있었고, 과연 신뢰를 받을 만 했습니까. 이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될지 궁금합니다. 사랑 받고 신뢰를 받기는커녕 ‘조폭언론’이란 비난마저 감수해야 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신문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문이 권력 아닌 권력이 되어 온갖 탈법과 비리를 일삼아 온 것을 누가 부정 할 수 있습니까. ‘관언유착’을 통한 이익 챙기기, 협찬요구, 광고강요, 구독강요, 임금체불등 온갖 부조리가 관행화 돼있는 것을 누가 아니라고 부정하겠습니까.
국민소득 1만불시대에 일선기자들이 호구지책에 전전긍긍해야한다면 어찌 언론인의 품위와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경영주들이 ‘너희들이 알아서 벌어먹어라’는 무책임한 풍토에서 어찌 좋은 신문이 나오고 언론의 구실을 논할 수 있을까요. 알아서 벌어먹다니?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알아서 뜯어먹으란 말과 무엇이 다를까요.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태어나지 말아야 할 신문들이 우후죽순처럼 태어나 온갖 관폐 민폐, 저임금에 상습체불로 종업원들에게 고통을 준다면 그것은 이미 언론의 책임을 포기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내가 그 지경으로 깨끗하지 못하면서 무슨 낯으로 날마다 남의 잘못을 까발립니까. 그러니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게 당연하지요.
신문협회에 따르면 지금 전국에는 44개 일간 회원사가 있다고 합니다. 협회에 가입하지 못한 신문까지 합치면 100개가 넘는다고 하니 그 폐해가 어떠리라는 것은 짐작되고도 남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또 신문이 생긴다고 하니 이게 도대체 무슨 연유인지 의아하기만 합니다.
좋든 싫든 기자들은 신문의 날 하루를 쉽니다. 일년에 한번 신문종사자로서 직업에 대한 긍지를 느끼는 날인 셈이지요. 그런데, 그러면 뭐 합니까. 가장으로서 아내에게, 자녀들에게 부끄러운 날이 이 날이기에 말입니다.
신문경영자들은 신문의 날을 성찰의 날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표어대로 신뢰받는 언론으로서 자리 매김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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