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엔 ‘풍교야박’ 한산사의 종소리 … 한국엔 두타모종
진천은 팔경의 고장…상산‧벽오‧어은‧평사‧통산별업 팔경

▲ 두타산에서 바라본 전경. 멀리 덕문이들녘이 보인다.사진/육성준 기자.
▲ 두타산 영수사 전경. 조선시대 선비 김진환은 두타산 영수사의 저녁 종소리를 중국 한산사의 종소리에 비유했다. 사진/육성준 기자.
▲ 소두머니에서 바라본 두타산. 저 멀리 두타산 정상이 보인다.

기획취재 상산8경을 찾아서
① 임꺽정 이야기
② 미르 숲
③ 이심이 이야기
④ 소두머니의 전설
⑤ 거물래‧흑양군
⑥ 평사낙안
⑦ 두타효무

“이상설 선생이 난 생가 터를 보면 15m 대혈 자리야. 김유신과 이상설 선생이 난 터의 혈이 이상하게도 크기가 같아. 행적을 비교해 봐도 같아. 이상설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로 임시정부를 세우고 정통령으로 선출이 됐잖아. 만약 통합 임시정부때 살아계셨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거야. 김유신도 생전에는 장군이었지만 돌아가신 후에 흥무대왕으로 추존을 받았거든. 두 분의 생가터를 보면 크기가 같아. 그래서 직품도 비슷한가 봐. 이게 우연 같지가 않아.“(변해종 진천군 유도회장)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의 두타산(頭陀山)은 해발 598m로 높은 산은 아니다. 그러나 주변에 높은 지대가 없어 매우 두드러져 보이는 산으로 숱한 전설을 품고 있다. 영구리 용의 전설부터 임꺽정굴의 설화가 전해진다. 초평호 한반도 지형도 두타산에서 내려다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 두타산은 가리섬, 배넘이고개 등 다른 이름을 품고 있다.

신화는 43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여기서 시작된다.

단군의 명령에 의해 팽우씨(彭虞氏)가 부하를 데리고 물을 다스리고 있을 때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내렸다. 결국 강물이 불어서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높은 곳으로 피난을 가야 했다. 피난을 가지 못하고 물속에서 헤매는 사람도 많았다.

팽우씨가 부하 몇 명을 데리고 나라 안을 돌아다닐때였다. 배를 타고 가도가도 펀펀한 물 뿐이었다. 그런데 저 쪽을 바라보니 뾰족하게 솟은 섬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모두들 “섬이 보인다”고 아우성을 쳤다. 노를 저어 가 보니 그곳은 조그마한 섬이었다. 섬에는 이미 피난민들 몇십 명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팽우씨가 배를 대고 잠깐 쉬고 있는데, 저쪽에서 누가 배를 저어 오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은 바로 하우씨(夏禹氏)였다.

모두들 시장하였기에 팽우씨는 부하를 시켜 가지고 온 음식을 내어놓으라고 명령하였다. 음식을 맛있게 먹은 후 하우씨와 팽우씨는 헤어졌는데, 팽우씨가 부하를 데리고 물을 다스릴 때 이익을 주었다 하여 이 섬을 가리섬(加利島)이라 부르고 떠났다. 얼마 후에는 물이 다 빠져 산 위에 있던 사람들이 낮은 곳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때 산의 모습이 드러났는데, 그 산의 상상봉을 ‘가리섬’이라 하고, 가리섬에 배가 닿았던 곳을 ‘배넘이고개’라 부르게 되었다.

또 산의 이름은 산꼭대기가 섬처럼 조금 남아 있었다 하여 두타산(頭陀山)이라고 지었다. 두(頭)는 ‘머리’를 뜻하고 타(陀)는 섬을 뜻한다.

 

영수사의 종소리

중국인이 가장 아끼는 3대 시인으로 이태백과 두보 그리고 당나라의 시인 장계가 꼽힌다. 장계는 누구이던가. 그는 과거에 낙방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풍교에 배를 정박하고 있는데 때마침 한산사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장계는 썩을 때로 썩은 부패한 정치권력 속에 56세가 되도록 과거시험에 낙방한 참담한 심정을 시를 지어 표현했다.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우는데 하늘 가득 서리가 내리네. 풍교에는 고깃배 등불을 마주하여 시름 속에 자고 고소성 밖 한산사에는 한밤 중에 종소리가 객선에 이르네.” 바로 풍교야박(楓橋夜泊)이란 시다.

중국에 한산사의 종소리가 있다면 한국엔 두타산 영수암의 종소리가 있었다. 중국에 장계가 있었다면 진천에는 김진환이 있었다. 그는 ‘두타모종이란 칠언 율시를 통해 두타산 옛 절 영수암에서 저녁놀이 질 때 치는 종소리의 정취를 한시로 읊었다.

김진환의 시에서 장계의 ‘풍교야박’에 나오는 고소성과 비교하며 어디가 좋으냐고 묻는다. 풍교야박에 나오는 강풍어화를 언급한다. 이곳 두타산을 가로지르는 초평천 하류 소두머니에는 갈탄어화의 전설이 배어있다.

상산팔경에는 ‘두타모종’이 들어가지만 이외에도 두타산의 안개낀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유수응의 ‘두타효무’(頭陀嘵霧)도 있다.

이렇듯 진천에는 상산팔경만 있는 것이 아니다. 봉암 채지홍은 송강정철 선생의 사당이 있는 문백면 어은마을의 아름다움을 ‘어은팔경’으로 읊었다. 두타효무를 지은 유수웅은 ‘상산모운’, ‘관촌석연’, ‘두타효무’, ‘주두광야’ 등으로 읊었다. 안타깝게도 8경중 4개만 전해온다.

적암 신국은 ‘노은팔경, 남당 한원진은 ’통산별업팔경‘을 지었다. 또 평사팔경도 별도로 전해진다.

전설과 설화, 아름다운 팔경은 선조들이 지은 아름다운 시소리와 함께 가을을 깊게 물들이고 있다.

 

두타모종 - 김진환

암자가 고사 동쪽에 있다는 말 들었더니
치는 종소리 황혼부터 새벽까지 울려 퍼지네
그 소리 구름을 뚫으니 달조차 일렁이는 듯
멀리 들리는 그 소리 그윽이 바람을 끄는 듯
놀란 새 떼들은 깊은 숲 속에서 흩어지는데
산은 비었는데 저녁 햇빛 속으로 울려 퍼지네
고소성과 같다면 어디가 좋으랴
강풍어화가 빈 배에 가득하구나

 

두타효무(頭陀曉霧) - 유수응

졸지에 높은 산이 잠시 벽해가 된 듯하더니
나무꾼 노래소리와 고기 잡는 노래가 서로 화답하네
새벽빛이 개일 무렵 하늘에 비가 떨어지는데
그 가운데 노승은 조용히 미타경만 외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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