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발행인

▲ 한덕현 발행인

“(최순실의 대통령 연설문 개입은)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과 최순실은) 아는 사이인 것은 분명하지만 절친하게 지낸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지난 국감장에서의 이원종 비서실장 발언은 거짓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많은 사람들, 특히 충북도민들은 처음 이 말을 들을 때부터 심히 걱정이 컸다. 비서실장이라는 위치에선 어쩔 수 없는 처신이었다 하더라도 앞으로 이 말에 대한 ‘책임’이 조만간 대두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결국 며칠을 못가고 현실로 다가왔다.

그 후유증은 곧바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공직자상의 사표(師表)로 인정받으며 도민들로부터 이론의 여지가 없도록 존경받던 그가 졸지에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이다. 더 이상 망가지기 전에 자리를 정리해야 한다는 주문도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이 자리에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앉았다 하더라도 국감장에서의 답변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이 그나마 위안이 될 법하다.

사실 개인적으론 이원종 전 지사의 청와대 비서실장 발탁을 크게 반기지 않았다. 그동안 수차례 총리감으로 지목되다가 고작(?) 비서실장으로 낙점된 것에 대한 상실감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평소 인품을 잘 알기에 정치판, 그것도 권력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일종의 조바심 때문이다.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그가 앞으로 대통령이라는 주군을 대리해서 처신하는 것과 지금까지 세상을 헤쳐오며 본인에 대해 스스로를 표현해 온 것의 차원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예단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하기에 결코 정치적이지 못한 ‘자연인 이원종’으로선 끊임없는 권력다툼이 벌어지는 주변을 감당하기가 결코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를 실체적 사실로써 확인한 건 취임 후 얼마되지 않아서였다. 언론들이 반기문 대망론과 연계해 같은 연고인 그의 역할론을 거론하며 충북출신 저명인사들의 모임인 청명회와 반기문 사이의 관계를 묻자 “나는 처음듣는 얘기”라고 손사래를 친 것이다. 이 말의 진위는 그가 몇 달전 청명회의 고문으로 위촉됐고 반기문 또한 청명회의 회원임이 밝혀지면서 곧바로 가려졌다. 비록 고의까지는 아니더라도 뻔한 말실수를 했다는 점에서 향후 그의 앞날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았다.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이제껏 본인이 지켜온 ‘언행일치’라는 이미지는 훼손을 피할 수가 없었다.

권력은 밖에서 바라보면 끊임없는 의구심을 발하지만 반대로 그 권력을 안에서 경험하게 되면 늘어나는 건 자기확신이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나라 의전서열 17위인 그가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는 그저 아는 사이일 뿐이고, 최순실의 대통령 연설문 개입설에 대해서는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하기까지는 어쨌든 자기확신이 너무 과했다.

한 번의 선택이 나쁜 결과로 이어지고 이것이 빌미가 돼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자꾸 반복되어 나타나게 되면 사람들의 인식 또한 이렇게 고착된다. 다름아닌 머피의 법칙이다.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항상 잘못된다(Anything that can go wrong will go wrong). 권력에 기대는 지나친 자기확신이 왜 위험하고, 한 번의 잘못에 대한 자기변명과 합리화가 또 어떤 결과로 이어질 지는 이 말 한 마디가 분명한 경고를 내리고 있다. 그러잖아도 지금 우리나라에선 권력차원의 자기확신이 수도 없이 넘쳐나지만 이것이 번번이 가식과 허위로 드러나면서 국가적 혼란이 쉴틈없이 야기되고 있다.

이원종 비서실장은 이번 국감장에서의 본인 발언과 그 것의 종언(終焉)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끝까지 갈 것같던 (김)기춘대군이 중도하차하고 누구보다도 청와대 업무의 정곡을 찌를 듯하던 이병기가 총선패배라는 어설푼 이유를 들어 비서실장에서 물러난 이유를 한번 곰곰이 되새겨보길 바란다. 그 둘은 ‘이게 아니다’ 싶을 때 자기확신을 던져버린 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원종’은 본인의 본질적 성향 때문에도 절대로 비겁하게 주군과 자리를 박차지 않는다는 사실이고, 바로 이것이 그를 아끼는 많은 도민들의 심정적 딜레마다.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쁘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다.” 한 때 누구보다도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받던 전여옥이 남긴 말이다. “정권이 끝나면 저처럼 불행한 사람이 나와서는 안 된다. 순간은 막을 수 있지만 영원은 막을 수 없다.” 국감장에서 전직 비서실장 박지원이 DJ 퇴임 후 자신의 감옥생활 경험을 염두에 두고 현직 비서실장 이원종에게 던진 말이다.

비서를 뜻하는 시크리터리(secretary)의 어원은 ‘분리된’ 혹은 ‘구별된’ 의미의 라틴어 세체르네레(secernere)라고 한다. 이를 원용한다면 비서라는 자리는 결국 책무와 자아가 분리되는 역할을 해야 하고, 주군과 늘 거리를 두는 조력자 역할에 충실해야 성공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그만큼 비서는 그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에 빠지기가 쉽다. 할 말은 아니지만 한방에 갈 수도 것이 비서의 숙명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차라리 이원종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임기 말이 아닌 임기 초에 탄생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그의 탁월한 조직관리 능력과 정권 초기 막강한 힘의 조화로 적어도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은 지금보다 덜하지 않았겠는가.

그가 끝까지 신의와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성공하는 비서실장으로 남길 바란다. 그러려면 불가항력에 대해서는 사안마다의 대응이 아닌 물 흐르듯 넘겨버리는 것도 상책이다. 정권의 레임덕에다 개헌공방까지 겹치는 앞으로는 지금보다도 엄청난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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