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로 편지/ 권혁상 편집국장

▲ 권혁상 편집국장

정치판에 이어 행정에도 아젠다 세팅(Agenda setting)과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가 끼어들 판이다. 두 가지 개념은 언론의 대중석 속성을 이용한 것이다. “여론은 실제 환경이 아닌 뉴스 미디어가 구성한 의사환경과 일치한다”는 언론학자 리프만의 말대로다. 언론매체들이 어떤 의제를 비중있게 다루면 일반 대중은 그 이슈를 따라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언론을 활용하는 것이 선출직 정치가와 행정가에게 필수적인 덕목(?)이 되고 있다.

도내 여야 정치권이 샅바싸움을 벌인 청주공항 MRO위기가 KTX세종역 등장으로 단번에 ‘훅’ 사라졌다. 졸속 시비에 휘말렸던 청주국제무예마스터십에 대한 뒷담화도 묻혀버렸다. 도민 사과와 함께 수세에 몰렸던 이시종 지사는 KTX세종역으로 이슈가 바뀌면서 공세로 전환한 모습이다.

일요일 저녁 긴급 민관정 회의를 소집하고 범도민 반대운동에 불을 지피고 있다. 정당별, 단체별로 성명을 발표하고 이 지사는 여의도에서 정당 대표를 만나 읍소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MRO(항공정비산업)에 대한 이해 자체가 피상적인 도민들은 KTX역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에 더 열광할 수밖에 업다.

하지만 KTX세종역 신설 요구는 세종시의 2대 선출직인 국회의원과 시장이 내세운 또다른 아젠다 세팅 전략이란 지적이다. 대중적 휘발성이 큰 이슈를 제시하고 집중된 힘을 자신에게 쏠리도록 하는 것이다. 설사 불발로 끝나더라도 타당성 조사 용역을 발주한 국토부에 책임을 떠넘기면 그만이다. 그 이후엔 대선, 총선 국면을 통해 정치적 해법을 제시하며 또다시 이슈 선점을 노릴 것이다.

청주 오송역과 공주역 사이 구간이 44km에 불과한데, 중간에 세종역이 생기면 20km 거리에 KTX 기차역이 3개나 되는 초미니 구간이 된다. 이는 철도시설공단 스스로 KTX 역 간 적정 거리라고 하는 57㎞의 절반도 안 된다. 얼마 전 서대전역에 KTX 정차를 요구할 때도 이같은 기본적인 제약에 막혔다. 세종시는 2030년 인구 50만명을 목표로 설계된 도시다.

2012년 1월부터 지난 8월까지 4년 8개월간 세종시로 전입된 인구는 13만 4734명. 이 가운데 60%는 충청권이었고 30%가 서울·경기였다. KTX세종역이 생기면 수도권 출퇴근 공무원의 유입효과는 크게 떨어질 것이다. 수도권 인구분산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세종시 건설 취지에 어긋나는 결과다. 무엇보다도 세종시 관문역을 KTX오송역으로 정하면시 기투자된 인프라 비용이 엄청나다. 세종~오송(BRT)도로와 오송~청주공항간 도로 건설비만 4천억원에 육박한다.

돌이켜보면 오늘의 상황을 예상한 아쉬운 대목이 있다. 3년전 KTX신설역 명칭을 정할 때 본보와 일부 여론지도층에서 청주세종역과 오송세종역을 대안으로 제시했었다. 하지만 지사와 청주시장은 청주청원 통합 아젠다에 함몰돼 ‘오송역’을 고수했다. 이해찬 의원은 노무현 정부 당시 국무총리로 세종시 건설을 주도한 주인공이다. 이제와서 관문역을 바꾸겠다면 국회의원직에 목을 맨 졸장부로 여겨진다. 역사에 남는 리더는 더 멀리 내다보는 지도자였다. 지금의 세종시가 그것을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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