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발행인

▲ 한덕현 발행인

며칠전 우연하게 청주 용화사에서 열린 하나원 행사를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이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생 가정체험’의 마지막 날 환송식이다.

탈북민들이 자원봉사원의 집에 초청돼 실제적으로 한국생활을 체험하는 이 이벤트는 이미 언론 등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날 탈북민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마이크를 부여잡고 쏟아내는 말들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얘기 도중에 하나같이 울먹이는 모습 역시 머리속을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다.

행사 주최측과 탈북민들 사이엔 행사 내 내 공감의 소통이 이어졌지만 유독 한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탈북민들은 한국 가정에서 경험한 1박 2일의 자유스럽고 인간적인 삶에 최고의 찬사를 표현한 반면 주최측은 틈만 나면 “남한에서 한눈팔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탈북민들이 국가로부터 받은 일정액의 현금으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야간 쇼핑을 즐긴 것에 대해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과 추억이 될 것”이라고 말하자 주최측은 “그 늦은 밤까지도 일하는 남한 사람들을 보지 않았느냐”면서 자본국가의 치열한 사회를 설명하려 애썼다.

이를 지켜보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비록 숱한 세월을 다르게 살았더라도 단 몇 초, 몇 분이면 서로가 민족적 동질감을 확인할 수 있건만 누가 저들을 저렇게 갈라놓고 있는가를, 아울러 둘 사이를 한 순간에 적으로 만들 수 있는 국가체제라는 것과 또 이를 이끄는 각각의 지배세력들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이성적인 지를 되물은 것이다.

하나원으로 상징되는 우리나라 탈북민 정착교육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었다. 탈북민들이 이수하는 약 3개월의 하나원교육 과정중에서 남한사회를 실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이번같은 가정체험이 전부다. 때문에 이날 교육생들은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못하면서도 당국에 의한 주입식 교육보다는 일상의 남한생활을 체험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은연중에 시사했다.

어차피 박근혜대통령이 북한주민을 향해 “남으로 오라!”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이상 탈북민 정책은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할 때다. 적어도 대량 탈북을 대비한다면 지금까지의 지원 위주에서 앞으로는 자립과 자활로 방향을 바꾸는 게 시급해 보인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독일 통일의 결정적 단초는 단연 서독을 향한 동독인들의 대규모 엑소더스였다. 1989년 8월 19일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개최됐던 한 평화축제장에서 600여명의 동독참가자들이 일거에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사건을 시발로 동독인들의 대탈출이 이어졌고 여기에다 독일 통일을 미리 보도한 유럽언론의 오보(?)까지 겹치면서 동독은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게 되자 끝내 그해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직업과 계층을 떠난 북한 주민들의 전방위적인 탈북러시가 이러한 조짐의 전조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문제는 당시 독일의 상황과는 너무도 다르다는 데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서로가 서로를 극도로 적대시하는, 최근 한창 고조되고 있는 전쟁의 분위기다.

6.25의 상흔이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동안 철저하게 금기시되던 ‘전쟁 가능성’이 어느덧 우리사회에 거리낌없이 출몰하는 단골 소재가 됐다.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은 물론이고 ‘김정은 제거’라는 과업(?)이 일부 못난 언론으로부터 부추김까지 받는다. 본인은 물론이고 자식까지 병역을 기피함으로써 군대의 문앞에도 가보지 않은 이 나라 지배세력들이 거품을 물고 내뱉는 ‘전쟁불사!’가 시나브로 전쟁에 대한 국민감각을 마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마당에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통일에 대한 맹목적인 아전인수를 경고하는 것들이다. 첫째 북한의 급변사태가 곧 한반도의 통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둘째 지금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사회는 절대로 남북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셋째 현 시점에서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는 우리로선 곧 재앙이다.

쉽게 생각해도 전시작전권조차 없는 우리나라에서 만약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우리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돌아간다.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찢어발림만 벌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이젠 중국조차도 핵에 집착하는 김정은의 제거를 고민한다는 외신보도이고 보면 벼랑끝에 몰린 김정은 세력들의 충동적인 전쟁도발로서, 이럴 경우 한반도는 최악의 비극을 맞게 된다. 핵무기에 의한 수백만명의 죽음이 아니라 아예 나라 자체가 30년 뒤로 후퇴할 지 모른다. 때문에 김정은도 자기의 목숨을 재촉하는 전쟁은 쉽게 일으키지 못한다.

한데 영악하기 그지없는 송민순으로부터 촉발된 작금의 종북시비 이른바 ‘북한팔이’를 보면 치가 떨린다. 권력이란 게 참으로 더럽고 추잡하다는 생각 뿐이다. 더 구역질나는 것은 이러한 북한팔이에 번번이 휘둘리는 대중심리다. 이럴 때 민중은 나향욱의 말대로 영락없는 개,돼지 수준이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피해자 코스프레로 동정심을 산 성냥팔이 소녀가 하나 둘 성냥에 불을 붙이면서 순간 누린 행복은 환각일 뿐이다. 다시 제 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를 기다린 건 겨울밤의 혹독한 추위와 죽음이었다. 현 정부들어 유별날 정도로 쉴틈없이 가해지는 북한팔이가 성냥팔이의 운명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그 경고를 이미 70년전 나치 지도자 헤르만 괴링이 전범 재판정에서 토해냈다.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말이다.

“국민을 전쟁에 불러내는 것은 아주 쉽다. 우리가 적에게 공격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애국심과 안보의식이 없다고 격렬히 비난하기만 하면 된다.”

어쩌면 이렇게 현 시국과 판박이로 닮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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