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고 밀고 썰고…장명옥 씨의 제면(製麵)인생 27년
새벽 4시 반부터 영업…울산, 제주에서도 주문받아

토박이 열전(15)
이재표 청주마실 대표
 

국수는 밥을 이길 수 없다. 아무리 면을 좋아한다고 해도 삼시세끼 국수만 먹고산다는 사람은 듣도 보도 못했으니 말이다. 구휼(救恤) 음식까지는 아니더라도 과거의 국수는 쌀을 아끼기 위해 먹던 음식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과거에는 라면에도 칼국수나 소면을 섞어서 끓였다. 라면이 귀하던 시절의 얘기다. 6.25전쟁 직후 우리나라에 구호품으로 쏟아져 들어온 것이 밀가루였다. 그래서 국수는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한 끼, 때우는 음식이 된 것이다.

그래도 국수는 밥과 견줄만하다. 밀의 재배와 국수의 역사는 기원전 5000~6000년 전 메소포타미아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BS가 ‘누들로드(noodle road)’라는 대작(大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을 정도로, 국수는 전 세계로 전파된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국수를 먹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려시대에 절에서 국수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절에서는 국수를 ‘승소(僧笑)’라고 부른다. 공양으로 국수가 나오면 ‘승려들이 웃는다’는 의미다. 승려들만 웃는 게 아니다. 점심 한 끼라도 면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름에는 냉면이나 콩국수를 찾고, 비오거나 쌀쌀한 날, 뜨끈한 칼국수가 땅기는 것은 흔한 입맛이다. 고기를 먹고 나서 꼭 소면을 먹어야 식사가 끝나는 이도 있다.

청주를 대표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칼국수’라고 주장하는 축이 있다. ‘청주칼국수’는 특별히 ‘누른국수’ 또는 ‘누룽국’이라고 불렀다. 밀가루반죽을 최대한 얇게 밀어서 돌돌 만 뒤 칼로 고르게 썰면 즉석에서 국수가닥이 나왔다. 멸치국물을 내는 것도 호사였다. 맹물에 감자나 호박을 썰어 넣고 간만 맞추어 끓이면 누룽국이 완성됐다. 반찬은 젓갈은커녕 속도 거의 넣지 않은 짠지로 충분했다. 치대고 숙성시켜서 쫄깃한 면발이 아니라 씹지 않아도 후루룩 넘어가야 누룽국이다. 청주사람들이 칼국수를 즐겨 먹는다지만 세대에 따라 호불호가 엇갈린다. 나이가 들수록 밋밋한 누룽국을 선호한다. 어려서 누룽국에 질렸던 사람들도 추억의 입맛을 다시 찾게 되니 신기할 따름이다.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 347번지는 북부시장 안에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장 외곽에 있는 쇠락한 주상복합건물이다. 청주의 대물림업소로 유명한 ‘삼미족발’이 있는 그곳이다. 여덟 평짜리 점포 스물두 개가 1층에 있고, 여덟 평짜리 살림집 스물두 채를 그 위에 얹은 세 동짜리 2층 건물이다. 그곳에 ‘우암국수’가 있다. 347번지, 6호다. 우암국수는 식당이 아니다. 칼국수와 마른국수, 그리고 만두피를 판다. 우암국수가 유명한 것은 국수를 떼다 파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 팔기 때문이다. 가게는 국수틀과 건조대, 쌓아놓은 국수로 협소하지만 27년째 성업 중이다. 쥔장 장명옥(58) 씨는 한 때 서울 여의도에서 장사를 했단다.

“서울에서 과일장사를 하다가 남편(연육흠, 1956년생)이랑 농사를 지어보자고 고향인 괴산 청안으로 내려왔었죠. 그런데 내가 팔을 다쳐서 농사짓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청주로 나와서 뭐 할 게 없나 찾아보다가 여기 시장으로 들어와서 이걸 시작한 거예요. 장사가 그럭저럭 잘됐죠. 이 집에서 아들 둘 키우고 장가까지 보냈으니까요. 지금까지 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이제는 노후를 위해서 더 벌어야죠. 장사가 여전한 걸 보면 청주사람들이 국수를 좋아해요.”

두 평 남짓한 이 가게에서 네 식구가 살았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우암국수에는 천장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나무 층층계가 있다. 그 끝에는 사람이 겨우 드나들 만큼 작은 구멍이 뚫려있다. 가게 윗집 바닥을 뚫어 연결통로를 만든 것이다. 당연히 윗집은 장 씨의 집이다. 347번지에서 이렇게 아래 위를 뚫은 집은 우암국수가 유일하단다.

“25년 동안 저 구멍으로 오르내리며 애들 키우고 장사도 했어요. 새벽 네 시 반부터 가게 문을 열고 준비해야 하니까요. 그때부터 손님이 와요. 밤에 택시운전하고 들어가는 분들, 야근 마치고 퇴근하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오니까. 다른 손님들도 아침나절에 많아요. 2년 전에 율량동에 집을 샀는데, 지금도 날씨가 춥거나 궂으면 그냥 저 위에서 잡니다.”

예전에는 밤 아홉 시까지 장사를 했는데 아파트를 산 뒤로는 저녁 일곱 시 반쯤 문을 닫는단다. 시장 안에 있는 허름한 가게니 국수 값이 싸지 않겠나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단다. 칼국수는 대형마트보다 싸지만 소면은 조금 비쌀 거라고 했다. 소면도 칼국수도 한 관(3.75kg)에 9000원을 받고 반 관은 그 반 가격이다. 2000원, 3000원 어치도 달라는 만큼 판다. 소면 한 관이면 40명 정도가 먹고 칼국수 한 관은 20명분이란다. 함유된 수분의 무게 차이리라. 마트보다 크게 쌀 것도 없는데 단골들이 몰리는 이유는 무얼까.

“일단 방부제를 쓰지 않잖아요. 칼국수는 그날그날 만들어서 팔고 소면도 석 달 안에 팔 만큼만 만들어요. 칼국수는 콩가루를 듬뿍 섞는 편이고, 소면은 오래 치대서 마트 것보다 쫄깃합니다. 만두피를 사러오는 사람들도 많아요. 설 무렵에는 줄을 서서 사는데 결국 떨어져서 못 팔정도예요.”

북부시장에 있다고 동네사람들만 오는 게 아니다. 복대동, 가경동, 고은3거리, 내수에도 단골들이 있단다. 몇 차례 언론에 나온 적도 있고, 인터넷 블로그에도 오르다 보니 서울은 물론이고 육지에서는 울산, 바다 건너 제주까지 택배로 국수를 보냈다. 상냥하고 친절한 눈빛과 몸짓, 말투도 장사를 한 몫 거드는 게 분명하다. 포장한 국수를 뜯어 국수를 자르고 저울에 다는 과정을 시연해 주니 말이다. 마른국수만 보고도 군침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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