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談話/ 오옥균 경제부 차장

▲ 오옥균 경제부 차장

지난달 25일 러시아 동부 사하공화국 야쿠츠크공항, 해외출장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나에게 예기치 않게 길동무가 생겼다. ‘엘레나’라는 이름의 60대 여성이다. 청주의료원에 입원해 있는 친척-정확한 관계는 말이 통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다-을 돌보기 위해 난생 처음 한국에 가는 길이다.

야쿠츠크시는 러시아연방 사하공화국의 제1도시로 충북이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필자 또한 야쿠츠크의 시장성과, 충북 의료관광의 성장 가능성을 취재하기 위해 처음 야쿠츠크를 방문했던 것이다.

일주일에 1회 운행하다보니 항공편은 항상 만석이다. 그 많은 승객 중 충북 소재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의 보호자가 환자를 만나러 청주를 간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마음에 일행이 되기를 자처했다. 그렇게 낯선 곳에서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나와, 불안함을 떨치지 못한 채 낯선 땅으로 향하는 엘레나는 같은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엘레나와 나는 눈짓과 몸짓으로 대화했다. 엘레나의 표정에서는 불안함이 떠나질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60대라고 해봐야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나이다. 노인보다는 중년에 가깝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60대인 이 나라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 오래 걷는 것도 버거워 보이는 엘레나는 인천공항에 도착해 입국심사대로 걸어가는 동안 내 소매를 놓지 않았다.

외국인과 내국인을 구분해 진행하는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잠시 떨어져 있을 때도 엘레나는 시야에서 나를 놓칠까 노심초사했다. 다시 만나 짐을 찾고, 나는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무리 급해도 밥은 먹고 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몇 분을 고민하다 내린 결정이었다.

나는 오랜 출장 끝이라 집에 빨리 가고 싶었고, 엘레나도 친척을 만나는 것이 우선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끼니땐데 밥은 챙겨드려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지하 식당에 내려간 나는 또 고민이 생겼다. 한국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엘레나가 무슨 음식을 좋아할지 짐작할 수 없었다. ‘고깃국을 시킬까?’ ‘면 음식을 시킬까?’ 고민 끝에 나의 선택은 ‘호박죽’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치아가 시원찮아 보였고, 맵고 짠 음식은 호불호가 갈리는데다 긴장한 탓에 소화기능도 떨어졌을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보기 좋게 ‘꽝’이었다. 호박죽을 한입 떠먹은 엘레나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내가 시킨 짬뽕을 덜어 드렸지만 같은 반응이었다. 이제 선택은 빨리 먹고 나가는 것뿐이었다.

허겁지겁 식사를 버스를 타고 청주에 도착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청주의료원에 도착해 미리 연락해 둔 간호사에게 엘레나를 부탁했다. 대기 중인 택시를 타려는데 누군가 다급히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다. 엘레나였다.

분명 고맙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엘레나는 내 손을 잡고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그렇게 몇 번을 무어라 말했다. 처음으로 엘레나에게서 평온한 눈빛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며칠 전 한 관계자는 말했다. “충북은 다른 도시에 비해 뛰어난 의료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진정성을 가지고 대한다면 충분히 승산은 있다.” 문득 엘레나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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