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환자 한경식씨와 대학 동기의 아름다운 만찬

최근 청주대 법학과 84학번 동기들은 아주 특별했던 9월말 저녁모임을 잊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저녁 청주 비하동 한적한 식당에 50대 중년의 대학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학과 동기회 강대식 총무(54 충북정론회 회장)의 연락을 받고 나왔지만 실제 초대자는 한경식 동기(54·맨위사진 오른쪽 첫번째)였다.

노무사인 한씨는 한국노동문제연구소, 국가인권위원회 등 공직에서 일하다 몇년 전 늦깎이 개업을 한 친구였다. 대학졸업후 서울에서 일하다보니 청주 친구들과 마주할 기회는 애경사 뿐이었다. 그랬던 대학 동기가 80년대 캠퍼스 친구들을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취한 것.

“난 이미 소식을 들어 경식이 친구가 대장암과 싸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몇사람이 병문안을 다녀왔는데 말기암이다보니 단체로 만난다는 건 우리도 생각조차 못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먼저 ‘다들 얼굴 한번 보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온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전화상으로 연락을 취했는데 20여명이 모이게 돼 다행스러웠다”

암세포가 전이돼 온몸은 수척해졌지만 또렷한 눈빛과 미소띤 얼굴로 모든 친구들을 맞았다. 이날 모임에 함께 했던 82학번 윤인노씨(56)는 “6년전 위암 수술을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한 후배의 태도가 참으로 인상깊었다. 노자, 장자의 무위론을 비유해 인생에 대한 자기 성찰을 얘기했다. 자칫 자리가 무겁기 십상인데 자기가 먼저 나서 ‘노래 한곡 하고 싶다’고 자청해 분위기를 바꾸기도 했다. 병마 속에서도 의연한 모습이 내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한씨가 부른 노래는 80년대 대학 민주화운동 집회에서 즐겨 불렀던 ‘광야에서’였다.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가늘지만 단단한 목소리의 노래가 끝나자 우레같은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한씨에 대한 격려와 응원이었지만 어쩌면 자신들의 빛났던 20대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었다. 노래 한곡으로 숟가락 들기를 주저하던 분위기는 반전되고 격의없는 우정의 무대가 펼쳐졌다.

한 총무는 “재주가 많은 친구였다. 노무사로서 정부의 법령대전만들기 사업에도 참여하고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자신의 영어공부 경험을 살려 영어교재까지 집필한 노력파다. 누군가 ‘가장 슬픈 게 뭐냐’고 물어봤더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더 오래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쉬움은 있지만 두려움은 없다’고 대답했다. 신앙심이 돈독해 마음의 고통은 이미 극복한 것 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처와 1남 1녀의 자식을 둔 병석의 친구를 위해 동기생들은 한달동안 700만원을 모금했다. 모금액은 약소하지만 이별을 준비하는 친구로부터 받은 그 무엇은 모두에게 슬픔이자 큰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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