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금 우리 사회는 다시 ‘변절의 시대’가 도래한 듯 합니다.
정당들의 지지도가 제각각 이라서 어제 자신을 당선시켜준 정당으로는 당선이 불확실하므로 인기(?)있는 정당으로 말을 갈아타는 ‘정치 철새’들의 변절이 러시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한때 깃발만 꽂아놔도 당선이 되던 XX당은 한물이 갔고 또 다른 XX당은 유권자들이 싫어하고, XX당에 가야만 당선이 유리한 고로 변절자 소리를 듣더라도 당선되고 보자는 게 요즘 지역 정치 판의 주류인 듯 싶습니다.
사전에 보면 변절(變節)이란 ‘사상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절개를 지키지 않고 바꾸는 행위’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 역사를 되돌아 보면 시대를 굽이굽이 지나쳐올 때마다 어김없이 ‘변절의 군상’들이 출현합니다. 그것은 의리를 중시하던 왕조시대에도, 일제 식민지시대에도, 그리고 민주적 가치를 기본으로 삼는 해방이후에도 그랬습니다.
변절자는 언제고 변혁기에 많이 나타납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거나 정치권력이 바뀔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게 변절자입니다. 고려가 망할 때 그랬고 세조가 왕위를 찬탈할 때가 그랬고 국운이 기울던 한말, 그리고 일제식민지시대가 그러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정권이 바뀔 대마다 우리는 수많은 변절자들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 때마다 변절자들은 정권에 빌붙어 독재 이론을 개발하고 일신의 영달을 누리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곤 했습니다.
해바라기처럼 권력만을 따라 다니는 사람들, 신념이나 절개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권력에 기생하는 부류들에게 변절은 철 따라 갈아입는 의복보다도 편리합니다. 세파에 적당히 처신하면서 일신의 안일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변절은 하나의 삶의 방편이 됩니다.
그러나 변절자들은 아주 중요한 것을 잊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도덕적으로 청절(淸節)한 인물에 대해 그 지조를 높이 사는 전통적인 민족정서가 있으며 그로 하여 역사는 목숨마저 초개같이 버리고 절개를 지킨 이들을 추앙해 받들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하지만 절개를 버리고 배신한 변절자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는 설명이 필요치 않겠습니다.
변절이란 무엇입니까. 눈앞의 이익을 위해 양심을 버리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개인의 도덕적 타락을 의미합니다. 나 아가 당선이라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이 당 저당을 오고간다면 그것은 정상배(政商輩)에 다름 아닙니다.
정상배란 무엇입니까. ‘정치 장사꾼’입니다. 겉으로는 정치라는 허울을 내 걸고 뒤로는 잇속을 챙기는 것이 정상배 입니다. 변절을 일삼는 정상배는 일개인의 도덕적 타락을 넘어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범죄행위를 저지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변절은 사회정의와 도덕률을 파괴하고 국민을 정치적 허무감에 빠뜨린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그 동안 그러한 정상배 들에게 국정을 맡기는 어리석음을 번번이 되풀이 해왔습니다. 그것은 마치 고양이에게 푸줏간을 맡긴 것과 하등 다를 게 없는데도 말입니다.
C·클라크는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정상배는 다음 선거를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오늘 변절을 일삼는 이들을 가리 켜 정상배 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성싶습니다.
정상배 들은 몸을 팔아 자신의 안일을 얻어 기름지게 살지 몰라도 변절자란 추한 이름을 후세에 남기고 가문을 먹칠하는 어쩔 수 없는 업보를 얻게됩니다.
배가 난파하면 가장 먼저 나서는 것이 쥐들이라고 합니다. 동물적인 본능이라고도 하겠지만 제 목숨만 생각하는 쥐들이 바다에 뛰어들었을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고 보면 쥐나 인간이나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하기야 마키아벨리는 역저 ‘군주론’에서 ‘권력을 얻는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변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
옛말대로 백로 사라진 숲에 까막까치만 모여들고 잉어 떠난 호수에 잡어들 만 번성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질서인지 모릅니다. 오늘 이 나라가, 이 지역 사회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의 사회가 된 것은 불행하게도 잡새와 잡어들 이 판을 치며 반역사적으로 국민들을 배신하는 때문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오늘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고, 오늘 나쁜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인간만사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가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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