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소니 드 멜로 신부의 <깨어나십시오>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김상수 충북재활원장
 

▲ 깨어나십시오 앤소니 드 멜로 지음·김상준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

앤소니 드 멜로 신부님은 강론집 <깨어나십시오>에서 말씀하십니다. ‘잠든 채 태어나고, 잠든 채 살며, 잠 속에서 혼인하고 잠 속에서 자녀를 낳으며, 깨어나 본 적이라곤 없이 잠 속에서 죽습니다. …… 더군다나 사람들은 깨어나기를 원치 않습니다. 또한 행복해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동의하기 어려운 난해함과 불편함이 있습니다. 신부님은 영성을 경건, 헌신, 종교, 예배 이런 것이 아니라 ‘깨어남’으로 정의 내렸습니다. 그래서 영성이란 신비로운 어떤 것, 비실재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실제적인 것이라 말합니다. 진정 깨어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기만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인정해야만 합니다.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이 행복의 요건들을 상정해서 조건부의 행복을 기대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합니다. 행복에는 조건이 없으며, 깨어남에는 어떠한 설정도 붙지 않습니다. 영적 지도자로서 신부님이 해야 할 일은 단지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이해하도록, 이해하도록 돕는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자비’와, ‘이타심’의 실천을 고매한 인격과 행복을 위한 훌륭한 덕목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반적 가르침에 내재한 견고한 허상을 보아야합니다. 예수님께서 명하신 “회개하라”의 의미는 최면에 걸린 채 잠자고 있는 우리가 온전히 새로운 마음으로 깨어나라는 명령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천국이 ‘지금 여기에’ 있음을 아는 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선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과 분쟁을 겪으셨습니다. 신실하다는, 선하다는 그들로 하여금 자기 관념을 뿌리 채 흔들어 꿰뚫어보는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깨달음은 나를 자각하는 것부터 시작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엄중한 자기관찰만이 잠든 자신을 깨울 수 있습니다. 아무런 해석도, 변명도, 감정도 섞지 않고 자신과 동일시된 것들을 관찰함으로써 오랜 관념의 허상으로부터 깨어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성취라 믿었던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고통스럽게 목도해야 합니다. 삶을 혼란스럽게 하는 세뇌되어 견고한, 관념의 실체를 꿰뚫는 도전 없이 잠에서 깨어나기는 불가능합니다. 사물에 대한 깊은 자각, 반응과 현존에 대한 깊은 자각 그리고 그 자각하는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만이 허상을 깨고 실재를 만나게 합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두려움입니다. 불확실하게 붙들고 있으면서도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될까 우리는 노심초사합니다. 이 두려움이 실재로서의 진정한 듣기와 배우기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상실을 겪지 않으면 진정한 보기와 듣기는 불가능합니다.

깨어난다는 것은 지식을 덧대고,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에고의 성취들이 풀려나는 것입니다. 진정한 무지, ‘모른다’와 자유와 해방인 ‘하늘나라가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깨어났다느니, 잠들어 있다느니 하는 이름표조차 소용이 없어집니다.

우리는 온통 기쁨과 행복과 사랑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의식하지 못한 채 잠들어 있습니다.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고통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오는 방법은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을 자각함으로써, 잠으로부터 깨어나는 길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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