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발행인

▲ 한덕현 발행인

본인은 살아서 돌아왔노라!고 흥분했지만 이를 듣는 많은 사람들은 그저 답답함만을 느꼈다. 세상이 뭐 이러냐는 냉소가 순간 순간 엄습해 왔던 것이다. 윤창중 얘기다.

지난 3일 있은 윤창중 출판기념회에서의 발언과 분위기는 마치 대선출정식을 보는 것같았다. “국민여러분 그리고 해외동포여러분 저 윤창중이 살아서 돌아 왔습니다. 3년 4개월 전보다 더 가열차고 강인한 윤창중으로 다시 태어나 반(反)대한민국 세력과 싸워나갈 것입니다.” 이렇듯 그는 해외동포까지 거론하며 자신의 활동 복귀를 만천하에 고했다.

윤창중은 박근혜 정부의 1호 인사라는 닉네임을 달고 청와대 대변인을 꿰찬 인물이다. 그의 임명 배경은 다름아닌 ‘언론 전문가’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언론에 경험있는 사람들은 그를 언론인으로 규정짓는 것을 극히 꺼린다. 언론과 정치를 거침없이 넘나든 화려한 이력 때문이다.

대충만 살펴봐도 이렇다. 한국일보 입사-코리아타임스 정치부기자-KBS 국제부기자-세계일보 정치부장-청와대 정무비서실-세계일보 복귀-이회창 캠프-문화일보 논설위원-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문위원-새누리당 인수위 대변인-청와대 대변인... 이같은 전력을 고깝게 보는 사람들은 윤창중을 ‘줄타기의 명수’라고 꼬집었다.

그는 출판기념회에서 대통령의 방미수행중 벌어진 자신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 “조선일보와 세계일보가 가장 악랄하게 기사를 썼다”고 말했다. 한 때 자신이 속했던 세계일보가 인지상정(?)을 어기면서까지 그를 그렇게 대했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추정컨대 신문사 후배들이 그를 선배로서 인정하지 않았던지 아니면 말 그대로 사적 관계에 휘둘리지 않는 추상같은 직필을 곧추세웠던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가 대통령의 눈에 띄어 청와대로 입성하기까지는 단연 종편에서의 활약이 컸다. 검증되지 않은 편향적 시각으로 박근혜 후보에겐 지나칠 정도를 호의를 보이면서도 상대인 문재인과 안철수에 대해선 막말까지 동원하며 인신공격을 해대는 바람에 종편이 만들어낸 ‘언론 이단아’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그는 “청와대가 나를 죽이려 한다. 모든게 날조다”며 하극상도 서슴지 않았다. 언론에 보도된대로 당시 상관인 이남기 홍보수석과의 파워게임을 인정하더라도 자신을 발탁한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 추문을 일으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조용히 물러나 있는 게 사회적 상식이다.

역사를 보면 성공한 지도자는 맹신(盲信)의 추종자를 경계했다. 되레 눈을 멀게 하기 때문이다. 종교나 사상에서 맹신적인 교조주의가 대개는 반문명, 반역사, 반인간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윤창중은 누가 뭐래도 현 정권에 대한 최고 맹신자였고 그러다가 힘을 얻게 되자 그만 분수를 잊고 말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반 대한민국 세력’이란 말을 아무리 곱씹어봐도 머리엔 윤창중밖에 그려지지 않는다.

진정 그가 전문 언론가라면 이것부터 깨달아야 할 것이다. ‘언론이 권력을 탐하면 그 권력은 반드시 방향을 잃는다’고 했다. 종편 등 보수언론의 일방적 밀어주기에 편승한 현 정권이 이른바 보수의 대부라는 조선일보와 막장 다툼을 벌이는 현 상황이 이래저래 국민적 관심을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창중을 지켜본 언론계 인사들은 일찌감치 ‘언젠간 사고칠 인물’로 그를 지목했다고 한다. 다시 활동을 재개한 그가 또 어떤 사고를 저지를 지 걱정이 앞선다.

나라에 해를 끼치고도 이를 모른척하는 나쁜 사마리아인은 이뿐만이 아니다. 우선 우병우는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자기가 모시는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진작 용퇴를 했어야 마땅하다. 설령 정적이나 언론으로부터 의도적 타깃이 되었다고 해도 그 정도의 의혹을 일으켰으면 이 나라 최고 공직자로서 더 이상 할말이 없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말초적인 신의차원에서도 그렇다는 것이다. 고개를 숙일 때는 언제고 장관에 임명되자마자 흙수저를 자임하면서 “시골출신에 지방학교를 나와 청문회에서 무시당했다”고 뒷통수를 친 김재수도 그렇다. 시중금리가 8%인 상황에서 2%도 안 되는 이자로 거액을 대출받아 대형 빌라를 매입했다면 지나가는 삼척동자가 들어도 웃는다. 더군다나 그가 “정의와 진실은 항상 승리한다”고 외쳤다니 참으로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는 생각이다.

어느덧, 공직자의 도덕성이 초토화됐다는 말이 사회 각계에서 탄식으로 터져 나온다. 요즘은 성별 나이 직업 불문이다. 과거에는 공직후보자가 자녀 학교를 위한 위장전입만 해도 제척 대상이었는데 요즘은 호랑이 담배피우는 시절의 옛날 얘기가 됐다. 부동산 투기는 필수가 됐고 군대 기피는 으레 있을 수 있는 선택이 됐다. 위장전입과 농지불법매입 등은 아예 과목 축에도 못 낀다.

군대의 문턱에도 안 간 사람들이 북한과의 ‘전쟁 불사!’를 외칠 때는 가장 핏대를 올린다. 막상 전쟁이 발발할 경우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상상하면 오금이 저려온다. 그 흔한 제식훈련은커녕 군대 식판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그들이다. 공직자의 도덕성이 초토화되는게 아니라 나라 자체가 초토화될까 걱정스럽다. 이러한 가짜들이 더 이상 나라를 어지럽게 해선 안 되겠다.

하지만 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있다. 그 가짜들에게 속고 있는 이들이다. 아니 나쁜 게 아니라 어리석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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