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오원근 변호사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적이 있었던가? 내 기억으로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이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대기업들로부터 수백억원의 불법자금을 차떼기로 모은 사건을 수사한 것이 거의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이는 정경유착의 실제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것으로, 이후 금품선거가 비약적으로 줄어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안대희 대검중수부장은 이 수사의 성공으로 일약 국민검사가 되었고, 나중에 대법관이 되었다.

▲ 오원근 변호사

그러나 안대희 씨가 대법관에서 퇴임한 지 한 달 만에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아 박근혜 대선캠프에 관여하고,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총리 후보자로 나섰다가 낙마하면서 정치검사의 오명을 남긴 것처럼, 대한민국 검찰도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가까스로 세운 영광을 전혀 잇지 못하고 권력의 시녀라는 비웃음의 수렁에 빠져 지금도 허우적거리고 있다. 우리 검찰은 왜 혼자 서지 못하는가?

이명박 정부 초기, 양극화가 사회의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3급 이상 공무원들 봉급에서 3%을 떼어 이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같은 단체에 주어 사회적 약자에게 나누어 주려고 했다. 정부는 대상 공무원들을 상대로 동의 여부를 물었는데,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하던 난 동의하지 않았다.

명분이야 좋지만, 양극화 해결은 부자증세나 재정효율성 강화로 재원을 조달하고, 그 정책 시행도 전문가인 관련 정부기관이 나서야 한다. 공무원을 상대로 한 봉급떼기는 생색내기 쇼였다. 하루 정도 지나 부장이 불러 갔더니, 150여명의 검사 중에서 나만 반대하였다고 했다. 대다수 검사들은 불합리한 정권에 반대하기보다는 순응하는 것에 익숙해 있다.

과거 대검찰청에서 간부가 지검에 지도점검을 나오면, 지검 검사들이 검사장실 앞 복도에 연수원 기수와 나이에 따라 한 줄로 죽 선 다음, 한 사람씩 안으로 들어가 대검 간부 앞에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검사 ○○○”하고 관등성명을 말하였다. 오랜 기간 군사독재가 심어놓은 조폭문화다. 이런 조폭문화가 검사를 정권에 순응하도록 만들었다. 이 문화는 김대중 정권 중반 쯤 사라졌다.

검찰 독립을 위해선 무엇보다 대통령의 태도가 중요한데, 박 대통령은 반대로 검찰을 사유화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채동욱 검찰총장 사태 아닌가. 채 총장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제대로 칼을 빼들자, 박 정권은 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정보기관을 통해 수집한 혼외자 문제를 들추어내어 그를 총장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대낮에 저열한 백색테러를 저질렀다.

검찰독립은 검사 개인, 검찰 조직문화, 최고 집권자의 역할이 다 중요하지만, 이것들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제도가 더 중요하다. 요즘 대안으로 나오는 것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고비처)이나, 세월호특위나 최근 이석수 특감에서 경험한 것처럼, 집권세력이 방해하면 목적 달성은 어렵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은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의 평결에 기속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은 배심원들이 평결을 해도 판사가 마음대로 그 결론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배심원의 평결에 기속력을 인정하면 엄청난 변화가 생겨난다. 직업법관만 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던 재판을 일반시민도 할 수 있다고 하면, 법조인의 불합리한 권위는 사라지고, 일반시민들의 주인의식은 높아질 것이다.

법조인들은 일반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을 존중해야 하고 또 소통 가능한 쉬운 말을 써야 한다. 학교에서 배심재판 교육을 하면서 지금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도 크게 바뀔 것이다.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가 크게 발달하고 사회의 토양이 달라진다. 이런 토양 위에서 어떻게 권력에 기대어, 자기의 안위만 즐기려는 고위공직자가 자라날 수 있겠는가.

검찰 개혁은 사회전체의 개혁과 같이 가야 한다. 그동안 기속력은 없었지만, 배심원들의 평결과 판사의 판결 내용의 일치율은 90%를 넘었다. 이 정도라면 배심원들에게 재판권을 전적으로 맡겨도 되지 않는가. 민주시민과 민주사회만이 민주검찰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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