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오옥균 경제부 차장

▲ 오옥균 경제부 차장

지난 17일 보은군 수한면 질신리 주민 10여명이 군수실에 들이닥쳤다. 주민들은 왜 그랬냐고 군수에게 따져물었다. 취재진의 눈에는 “힘없는 우리에게 왜 그러셨냐?”고 묻는 것처럼 느껴졌다. 군수를 만나기까지 몸도 마음도 지쳐, 간신히 서 있는 그들의 눈에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 당한 사람처럼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이들을 그런 눈으로 바라본 것은 아닌가보다. 같은 시간 군수실에 자리했던 공무원들의 표정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군수실 앞을 막고 진입을 막던 공무원들의 얼굴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왜 여기서 난리냐는 표정이다.

주민들은 4년을 참았다고 하소연했다. 대답없는 보은군에 민원을 제기하면서도, 언제 돌아올지 모를 회신을 기다리면서도 참고 참았다고 했다. 한여름 무더위에도 악취때문에 문을 열지 못하고, 그렇게 긴긴날을 참다가 더는 참을 수 없어 달려왔다고 했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했다고, 우리를 도와달라고, 내편이 돼달라고 왔는데 상대방의 표정은 무섭도록 차갑다. 배신감에 악이 받쳐 외마디 욕을 했더니 ‘수준이 그것밖에 안되냐’는 듯 조소섞인 시선으로 멸시한다.

그동안 얼마나 참아왔는지 한번 터진 말문은 그칠 줄 모르고,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랬더니 상대방은 “당신말만 하지 말고 내말도 들어라” “귀 먹지 않았으니 작게 말하라” 훈계조로 말한다.

한마디로 듣는 이의 자세가 안됐다. 민원을 경청하겠다고 주민들과 마주앉았지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주민들의 궁금증도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왜 수백번 민원을 제기했는데 답변이 없냐는 질문에 “해당업체에 대한 점검을 통해 위법사항을 적발해 행정조치를 진행 중”이라고 일방통행식으로 답했다. 민원인들이 얼마나 자주 민원을 제기했는지 그때마다 보은군은 어떤 답변을 내놓았는지 끝끝내 답변하지 않았다.

“어떤 절차를 거쳐 우리 마을에 폐기물처리업체가 들어올 수 있었냐”는 질문에도 적법한 절차라고 답변할 뿐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소득은 있었다. 보은군수가 책임지고 이번 일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군수는 처음 듣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사실이던 궁색한 변명이던 주민들은 또다시 믿고 기다릴 명분이 생겼다.

그날, 주민들이 안내한 폐기물투기현장에서 취재진은 듣고도 믿기지 않는 말을 들었다. 주민들이 삽으로 폐기물더미를 파헤쳐 보이며 공무원들과 기자들에게 증거물을 내보이는데 그걸 지켜보던 간부급 공무원의 첫마디는 “이게 그 회사에서 했다는 증거가 있느냐?”고 주민들에게 되물었다. 그는 덧붙여 “증거를 찾아내서 군에 알려 달라”고 당부(?)했다.

그들이 정말 민원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간 것일까. 공무원 귀가 어두워 목소리를 높인 게 아니라 억울하고 답답해서,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는 것을 그들은 정말 모를까.

이 글이 독자들에게 읽힐 무렵이면 지난주 조사내용을 발표한 뒤가 될 것이다. 어떤 내용을 담았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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