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로 편지/ 홍강희 편집위원

▲ 홍강희 편집위원

올 여름은 참혹했다. 8월 한 낮 35도가 넘는 아스팔트 위에서 우리는 자주 절망했다. 그러나 기적처럼 가을이 왔다. 삭막한 여름의 끝에 가을이 왔다는 건 얼마나 눈물겨운 일인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 뜨거운 삼복더위를 이겨낸 사람만이 가을을 즐길 수 있다. 올 여름 8월 폭염에 온열환자는 2000명을 넘었고 17명이 숨졌다는 통계가 있다. 가축 420만 마리, 양식장 물고기 300만 마리가 죽어 18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한창 뜨겁던 여름날, 청주시내를 둘러봤다. 시내가 너무 복잡해 더 덥게 느껴졌다. 행정기관 벽면, 도로변, 시내 곳곳에 왠 플래카드가 그렇게 많은가. 충북도청 정문에서 ‘함께하는 충북 행복한 도민’이라는 도정목표를 보고 들어가면 본관에 ‘함께하는 충북 행복한 도민’ ‘생명과 태양의 땅 충북’이 또 있다. 벽면에는 ‘생산적 일자리사업 전국 최초 시행’ ‘충주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확정’ ‘2016 청주세계무예마스터십’이 나란히 붙어있다.

그리고 ‘일등경제 으뜸청주’라는 시정목표를 바라보고 청주시청에 들어가면 ‘국립철도박물관은 청주 오송이 최적지입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두 군데 붙어있고 ‘청주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 ‘세계最古 금속활자본 우리민족의 자랑 직지’ 문구를 볼 수 있다. 이 참에 충북도와 청주시의 도정·시정 목표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다. 양 지자체의 목표는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한다. 구호가 난무했던 독재정권시대보다는 표현이 순화됐으나 관선시대에 으레 등장했던 구호와는 차별성이 없다. 아마 이를 기억하는 도민들도 몇 명 없을 것이다. 감동적이면서도 지자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목표를 보고 싶다.

또 도로변에는 ‘무단횡단, 세상과 작별하는 지름길입니다’ ‘이 곳은 불법주정차 단속지역 입니다’ ‘무단횡단 금지’ 등과 ‘000아파트, 분양개시’ 등이 어지럽게 걸려있다. 경찰청이 건 플래카드는 표현도 무시무시하다. 무단횡단이 세상과 작별하는 지름길이라니... 불과 몇 백미터 밖에 안되는 길에 무단횡단 금지 플래카드가 몇 개씩이나 된다.

그런가하면 학원 벽면에는 ‘우리학원이 배출한 우수생’ 이름이 가득 쓰여 있고, ‘취업을 축하합니다’라며 취업생 이름을 적은 플래카드가 있다. 학교 교문에는 ‘000 특별 강조기간’, 벽면에는 ‘000전국대회 우수상 수상’ 경축 플래카드가 대부분 걸려있다. 시내 한복판에는 음식점 개업 플래카드, 상가 유리창에는 ‘폭탄세일’ 광고가 붙어있다. 새로 지은 원룸 벽면에는 노란 바탕에 빨간 글씨로 ‘지금 분양’문구와 함께 전화번호가 큼직하게 쓰여있다. 저축은행 앞에는 ‘직장인 신용대출, 임대보증금 대출’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유럽여행을 가서 감탄하는 것 중 하나는 잘 가꾸어놓은 도시 모습이다. 간판은 작고 아름답고, 정원은 정성스럽게 손질돼 있고, 창가에는 작은 화분을 내놓았다. 구호성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는 거의 없다. 환경과 삶의 질을 소중히 하는 선진국답다. 갈 때마다 부러웠다.

우리도 도시를 가꾸는 일에 나서야 한다. 자치단체장들은 터널을 뚫고, 도로를 놓고, 건물을 짓고, 행사를 벌이는 일에만 열중이다. 우선 행정기관부터 구호성 플래카드를 내리고 도정·시정목표도 작게 걸어라. 시내 상가 간판도 작게, 도로변 플래카드도 가능한 걸지 않게 관리 감독하라. 지금 청주시내는 너무 복잡하다. 플래카드들이 ‘날 좀 봐달라’고 외치지만 글자의 홍수속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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