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발행인

▲ 한덕현 발행인

추미애의 등장에 많은 언론들이 친노(親盧)와 친문(親文)당의 부활이라고 마름질을 해대지만 나는 아니다. 오히려 야당과 야당성(性)의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오랫동안 야당의 부재와 이로 인한 부작용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현 정권에서 야당은 결코 대안세력이 되지 못했다. 야당이라는 탈을 쓴 이익집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앞으로 한반도 운명을 가를 사드문제를 놓고서도 국회에서 그 흔한 공론화조차 한번 제대로 갖지 못한 게 지금의 야당이다. 이러는 와중에 사드문제는 ‘전자파 피해’로만 국한돼 여론이 왜곡됐다.

야당이 얼마나 만만했으면, 정부는 드러내놓고 국민들을 상대로 후보지 흥정을 벌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전쟁의 위협을 내세워 안보장사를 하려 한다면, 야당은 한 발 더 나아가 그 전쟁을 막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함에도 오히려 저들보다 더한 안보팔기에 급급하다. 그것도 ‘사드불가’라는 내부의 당론을 숨긴채 철면피하게도 말이다. 사드문제의 본질은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아직도 씻어내지 못한 한반도를 또 다시 전쟁의 화약고로 만드느냐 마느냐와 그 효용성의 여부이지 결코 특정 지역의 전자파 피해가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규모로 보면 껌값 수준의 푼돈(10억 엔)에 국가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가 대책없이 짓밟히는가 하면, 우병우라는 기상천외한 초인(?)이 온 국민을 좌절시키고 있는데도 야당은 그저 앉아서 말 대포만 쏘아대며 손을 놓고 있다. 행동없는 야당은 있으나마나다. 안철수에 이은 김종인 체제가 야당에 남긴 기여는 이렇다. 투쟁성이 사라진 야당, 그리하여 어느덧 관료화돼 스스로 알아서 안분지족하는 집단으로 전락시켰다.

집권세력은 끊임없이 야당에 대해 국정, 특히 안보와 민생의 동반자임을 내세우며 순치될 것을 강요했고 이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뒀다. 시나브로 야당한테 야성(野性)이 사라진 것이다. 오죽했으면 현 정권을 향해 야당 복(野黨 福)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겠는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면 이 또한 현 정권과 여당의 잘못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야당의 책임이다. 이같은 역사의 후퇴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야당다운 견제는 그동안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추미애는 당선 직후 “대통령이 국민이 가라는 길을 외면하면 단호히 맞서겠다”며 “선명하고 강한 야당이 되어 수권(受權) 비전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유수언론들이 약속이라도 한듯 다시 친노, 친문으로 무장한 강경노선은 패가망신만을 초래한다며 일제히 열을 올렸다.

야당성의 회복은 과거처럼 운동권 주축의 강성으로 변하라는 게 아니다. 이념에 매몰돼 파벌세력의 결집을 구축하라는 건 더 더욱 아니다. 추 대표의 공언대로 더불어민주당이 선명하고 강한 야당이 되는 길은 지난 총선에서 국민들이 투표로써 명령했듯 ‘야당의 역할’에 제대로 충실하는 것 뿐이다.

야당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을 안고 있다. 약자와 반대편 입장에서의 어깃장과 반골기질이다. 누가 잘되면 또다른 누구는 반드시 어렵게 되고, 밖으로 드러난 현상이 있는 반면 밖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진실도 있다. 이럴 때 후자에 먼저 천착하는 것이 야당의 근본이라면 그럴 수 있다. 단어적인 의미를 보더라도 야당(野黨· opposition party)은 주류에 대한 이성적 대척이 우선인 것이다. 세상의 어떠한 일에도 거기엔 반드시 양면성이 따르기 때문이다. 타협과 조율은 그 이후의 문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야당엔 이에 대한 절박함도 없고, 말 그대로 들판(野)으로 뛰쳐나가 한판 맞장뜨겠다는 결기도 없다. 배부른 정치관료, 그것도 자기이익에 너무도 민첩한 꾼들만 넘쳐난다. 국민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되레 집권세력의 의중을 먼저 살피며 여론의 물타기까지 서슴지 않는다. 대통령이 야당을 향해 “왜 자기들이 집권했을 때하고 지금하고 다르냐”고 꾸짖어도 꿀먹은 벙어리다.

추미애 체제가 또 다시 안보와 민생을 내세우는 현 정권의 의도된 프레임에 갇혀 세월호와 사드문제 그리고 우병우에 대해 제대로된 목소리를 못낸다면 도로묵당이라는 비야낭을 백번이고 들어도 싸다. 안보와 민생은 여당과 야당이 제 역할만 제대로 하면 저절로 해결된다. 권력과 정치가 국민들의 민생을 내것처럼 돌본 지가 지금까지 단 한번이라도 있었는지 오히려 묻고 싶다.

더불어민주당을 보면 마치 ‘스톡홀름 증후군’을 심각하게 앓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상대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상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감 때문에 어느덧 그들에게 동화되어 가는 병리현상, 이는 상습적인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동과 부녀자들이 경험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해방 후 친일청산에 실패한 이유를 여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반민특위의 활동을 결정적으로 좌절시킨 것은 친일세력 뿐만이 아니다. 이들 친일세력에 빌붙어 국가위기를 들먹이며 자기 안위를 먼저 도모했던 당시의 정치기득권 세력이다. 만약 지금, 우리 국민들이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이같은 느낌을 갖는다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역사는 절대로 기회주의자들에게 국가권력을 쥐어주지 않았다. 추미애의 말대로 야당이 수권(受權) 비전을 만들어 정권교체까지 꿈꾸겠다면 이런 것부터 달라져야 할 것이다.

오늘, 국민들은 명령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다시 야당으로 돌아가라고! 누군가에 의한 갑작스런 급변침으로 맹골수도의 거센 물살에 휘청거리는 대한민국호(號)의 정신나간 동승자는 더 이상 되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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