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원, 그들은 오늘도 전주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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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원, 그들은 오늘도 전주에 오른다
  • 충청리뷰
  • 승인 2002.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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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직종 불구 투철한 직업의식·사명감으로 근무
공기, 물 다음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 있다면 단연 전기일 것이다.
전기가 없으면 모든 생활이 마비될 뿐 아니라 산업현장에서도 공장가동이 멈추고 지하철 등 교통수단도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전기원들이다.

사고 당하면 최소한 중상

10월 31일은 한국전력 전기원들의 생일이다. 전기원들은 정전이 발생하면 현장에 출동, 고장을 수리하고 전기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올해로 서른네번째를 맞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이렇다 할 관심없이 조촐하게 자축하며 지내왔다.
그러던 것이 지난 95년부터 한전 전기원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포상이 이뤄지면서 전기원들의 사기가 높아가고 있다.
연중 무휴, 하루 2교대 근무를 하며 철통같이 전기를 지키는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일을 하고 있다. 항상 살아있는 전기를 만지며 감전의 위험 속에서 작업을 하다보니 사소한 사고라도 경상에 그치는 일은 거의 없다. 충북지역에서 지난 10년간 6건의 전기원 감전사고가 발생해 1명이 사망했으며 5명이 큰 부상을 당했다. 아직도 2명은 병상에서 끝없는 투병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전기원들은 남들이 다 쉬는 명절이나 공휴일에는 쉴 엄두를 못낸다. 다만 2교대 근무에 따른 비번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항상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간직하며 빵점짜리 가장 이라는 자조섞인 푸념을 하고 있다.
“"어린이날은 그저 잊고 살아오고 있다. 한마디로 가족들 볼 낯이 없다. 그래도 남편을 믿고 아빠를 따르는 가족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고 말했다.

1인당 담당 가구수 10년전의 4배

한전 충북지사에서 관할하고 있는 면적은 서울시 면적의 1.6배에 달하며 전주만 해도 10만3000여본, 고압 전선로 길이도 2,220km로 서울과 부산 거리의 5배가 넘는다.
매년 봄철이면 까치와의 전쟁을 치러야 하고 여름에는 급증하는 냉방부하에 대비해 철야하기 일쑤다. 그 뿐인가 태풍이나 장마, 폭설이 내릴 때도 어느 한순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근무여건은 좋아지기는커녕 갈수록 업무부담과 직원들의 노령화로 힘에 겹기만 하다.
90년도만 하더라도 청원지역의 경우 면소재지까지 출장소가 있어 39명이 근무했으나 93년 경영합리화 작업의 일환으로 출장소가 모두 폐지되는 바람에 지금은 19명만이 청주와 청원 전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전기원 한 명이 담당했던 가구수도 10년전 3000여호였던 것이 지금은 1만4000여호로 4배 이상 증가했다.
이렇듯 전기원이란 직업이 위험하고 과도한 작업량으로 3D 직종이란 인식이 퍼지면서 전기원을 희망하는 젊은이도 없어 현재 근무하는 19명의 평균 연령이 43세에 이르고 있어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러나 각종 장비는 현대화 돼 자전거에서 오토바이를 거쳐 지금은 승합용 작업차로 현장을 누비고 있으며 전주에 올라 위험스럽게 로프에 의지해 작업하던 것도 이제는 활선차를 이용하는 등 안전도는 크게 향상되고 있다.
전기원들은 격무와 위험에 시달리면서도 깜깜하던 가정이나 공장에 환히 불이 들어오는 것을 보며 보람과 긍지를 느끼고 있다.
또한 3년전인 98년 424건의 고장이 발생했던 것이 지난해에는 212건으로 절반이상 감소하는 등 갈수록 고장발생이 감소하고 있어 뿌듯한 자부심마저 느끼고 있다.



전기의 날 대통령 표창 받을 한전충북지사 김 홍 진 배전운영실장
“10년 휴가 얻은 것보다 더 기쁘다”

10월 31일 34회 전기의 날을 맞아 전국에서 2명의 전기원에게 대통령 포상이 수여됐다. 그중 한 명이 한전충북지사에 근무하는 김홍진 배전운영실장(54)이다.
김 실장은 1974년 전기원으로서 첫발을 내딛인 이후 27년간 전주를 누비는 전기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명절과 휴일을 단 한 번도 즐겨보지 못했다는 김 실장은 그러나 이번 포상이 10년 휴가를 얻은 것보다 더 기쁘다며 감격해 했다.
"대통령 표창은 잘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 충북지역 모든 전기원들의 노고를 대신해서 받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 전기원들이 더욱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김 실장은 27년 간의 전기원 생활중에서 가장 보람있었던 일로 농촌 지역의 하우스 정전 수리를 꼽는다.
"언젠가 폭설로 농촌 지역 하우스 단지에 정전이 발생했다. 난방이 끊기면 곧바로 막대한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농민은 물론 우리 전기원들도 모두 초긴장 했다. 도로도 폭설로 막혀 걸어서 사고 현장까지 가야 했다. 전기를 만지는 손에 한 겨울이었음에도 땀이 날 정도로 작업을 했다. 다행히 별 피해 없이 복구할 수 있었으며 그 때 좋아하던 농부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래도 봄 만 되면 김 실장은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바로 까치와 전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는 까지들이 전주에 집을 짓기 때문에 언제 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사실 전기원들에 대한 관심이 저조해 여간 서운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95년부터 정부에서 포상이 실시된 것을 계기로 지금은 긍지와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말로 그간의 서운함을 털어냈다.
이런 가장에 대해 가족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김 실장의 막내 용식씨(23)는 "초등학교 때 어렵게 어린이날 대공원에 놀러가기로 했으나 갑작스런 정전 사고로 아버지가 비상소집되는 바람에 도중에 차를 돌려 온 적이 있다. 그때는 어버지가 어찌나 원망스럽던지 엉엉 울었다. 그러나 지금와 생각하니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진 아버지가 자랑스럽기만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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