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로 편지/ 권혁상 편집국장

▲ 권혁상 편집국장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십수년전 유행했던 히트가요다. 알쏭달쏭하고 부박한 세상을 까놓고 풍자했다. 느닷없이 이 노래가사가 떠오른 건 요즘 언론계 상황 때문이다. 한마디로 “언론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기 때문이다. 우선 청와대와 보수언론의 대표주자인 조선일보간의 충돌사태가 아리송하다.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로 정권의 눈엣 가시였던 채동욱 검찰총장을 혼외자식 단독보도 한방으로 날려보낸 신문. 최근 성주 사드 반대 집회에 외부세력 개입설을 보도해 ‘기레기 언론’ 오명을 기꺼이 감수한 신문. 열과 성을 다해 보수 정권의 병풍 역할을 해온 그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 아니였던가. 그런데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입술과 이빨이 서로 물고뜯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조선일보는 7월 우 수석 처가와 넥슨간 부동산 거래 특혜의혹을 1면 톱기사로 보도했다. 이후 다른 언론매체를 통해 의경 아들의 운전병 보직 의혹, 가족 회사의 배임 혐의, 처가의 불법 농지매입 의혹이 더해졌다. 조선일보가 우병우 밀어내기의 첫 신호탄을 쐈고 결국 청와대는 특별감찰관을 임명했다.

하지만 지난 16일 MBC는 특별감찰관이 특정 언론에 감찰 내용을 누설했다고 폭로했다. 팩트는 감찰관과 조선일보 기자간 에 주고받은 문자내용이었다. 이틀뒤 조선일보 취재기자가 경찰을 통해 불법으로 우병우 가족 차량조회를 한 혐의로 입건됐다. 같은 날 특별감찰관은 우 수석을 직권남용 및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마치 권력과 조선일보간에 핑퐁게임을 보는 듯한 형국이었다. 어쩌면 정권의 임기말이라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개각과정에서 우 수석을 재신임해 조선일보의 ‘뜻’을 저버렸다. 특별검찰관의 수사의뢰 다음날인 19일 청와대는 특별감찰관이 감찰내용을 언론에 유출했다며 ‘중대한 위법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보수 시민단체가 특별감찰관을 고소하면서 결국 우 수석과 특별감찰관 모두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청와대는 한발 더 나가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을 운운하며 조선일보를 압박했다. 때맞춰 검찰의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연임 로비 의혹 수사 과정에서 조선일보 고위인사가 거론됐다. 세계일보는 “검찰은 박 대표와 친분이 있는 유력 언론인 A씨가 3억원 상당의 금품을 받아 챙겼다는 의혹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불법 차적조회한 조선일보 기자의 불구속 입건은 견제를 위한 ‘쨉’이었다. 하지만 조선일보 고위인사의 비리 의혹은 명치 끝을 겨냥한 ‘어퍼 컷’이다. 역시 충격을 받은 탓인지 조선일보는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하지만 우병우·특별감찰관 수사와 신문사 고위인사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화력을 다시 집중할 가능성도 있다.

<미디어오늘>는 조선일보의 의도를 “우병우 민정수석을 남겨두고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차기 정권을 위해 현 정권에 메스를 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통의 화신’ 박 대통령은 조선일보의 충정(?)을 ‘역린’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세상도 요지경, 언론도 요지경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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