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발행인

▲ 한덕현 발행인

이정현의 여당대표 등극으로 국정운영에 친박의 컴백이 현실화되자 반기문 대망론에 다시 힘이 쏠리고 있다. 익히 예상된 것이지만 이번엔 차원이 다르다. 보수언론들은 아예 차기 정권의 구도까지 점치는 청치담론을 쏟아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정현 스스로도 4년 중임제 개헌을 언급하며 정·부통령제를 들먹였다.

그들이 구상하는 반기문 대망론은 이미 윤곽을 드러냈다. 간단히 말해 충청대망론의 구세주가 된 반기문이 충청도 표를 책임지고, 여기에다 호남 불모지에 깃발을 꽂고 당대표까지 맡음으로써 한창 탄력받고 있는 이정현이 그의 호언대로 호남표를 가져오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치판에선 늘 있을 수 있는 얘기이지만 우리로선 비위가 상한다. 지금까지 반기문은 새누리당 정권재창출의 외부 영입인사로 꼽혀온 터라 듣기에 따라선 친박의 슬하에 차기정권을 들인다는 것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충청대망론의 실체다. 충청대망론은 망국적인 영호남 패권구도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지 결코 이들 세력에 기생(寄生)해서 판을 짜자는 게 아니다. 그럴 경우 충청대망론은 결국 영호남 패권구도의 변질된 아류로 전락하는 꼴밖에 안된다. 더 심하게 말하면 꼭두각시 정권이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치공학적 정권창출은 국가 미래에 대한 희망는커녕 또다른 저주만 가져오게 된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는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리더십을 한번 심각하게 고민할 시기가 됐다. 1년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벌이는 변함없는 ‘천박한 운신’ 때문이다. 누구는 턱수염을 기른 채 전국을 헤매는가 하면, 또 누구는 산에 숨어들어 선문답을 나누는 게 무슨 대수라도 되는냥 행세하며 대권을 운운한다.

북한 핵과 사드, 그리고 총체적 경제난으로 인한 절체절명의 나라안팎 상황을 감안한다면 다음번 국가리더는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무슨 이미지나 혹은 기득권이 작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순간의 우상에 의해 결정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또 사기를 당하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하면 가장 능력있고 가장 정직하고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게 상식이겠지만 현실에선 안 그렇다. 오죽하면 미국에선 이런 속담으로 이를 경계하겠는가. -The biggest people with the biggest ideas can be shot down by the smallest with the smallest minds-우리식으로 직역하면 제 아무리 잘난 사람도 별 볼일 없는 사람한테 당한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가 리더십에 있어 이러한 현상을 예방하는 방안은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그건 끊임없는 국민들의 검증밖에 없다. 여론이 불리할 때마다 시장 바닥으로 달려가 굴비부터 들어올리는 리더, 턱수염을 기르고 마치 초인처럼 행동하는 리더의 코스프레에 환호할 게 아니라 그들의 이면을 까발리며 그 머리와 마음속까지도 들여다보려는 국민들의 의지와 내공이 절실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행동만이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지니게 된다”(알렉시스 드 토크빌)는 비아냥에 맞설 수 있다.

엊그제 광복절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꾸짖은 ‘국민들의 자기 비하’는 더 이상의 위장된 국가리더십을 거부하는데서부터 근절될 것이다. 많은 식자들은 현재의 한국사회에 대해 심각한 정서적 파쇼와 집단적 리플리 증후군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다. 세계 역사에서 비극적 문명파괴를 불러온 파쇼는 늘 국가와 사회의 위기의식을 부각시키는 데서 시작됐다. 국내정치의 불안감을 강조하고 정당과 의회의 무능과 부패등 병리현상을 확대, 과장하면서 어느 특정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힘’의 필요성과 그것의 도래를 대중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파쇼의 태생적 생리는 공동체 의식이 아닌 유아독존이고 자기들만의 결속과 응집이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며 엘리트의식으로 무장된 선민(選民)사상만을 앞세우는 것이다. 결국 이것들의 집단화로 나타나는 국가라는 지배체제는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모든 분야를 극도의 권위주의 방식으로 통제하려 한다.

집단 리플리증후군은 가짜들이 만들어 내는 허구를 어느덧 진실이라고 믿으며 그들의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고 이에 동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짜는 결국 가짜일 뿐이고 이를 솎아내지 못하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어차피 친일청산을 못한 우리나라는 국가 리더십에서부터 원초적으로 리플리 증후군을 앓을 수밖에 없다. 가짜들이 국가리더십을 거머쥔 채 득세, 횡행하는 가운데 국민들은 그 가짜들에게 끊임없이 속고 현혹당하면서 살아간다. 졸지에 민중이 개, 돼지로 추락한 상황에서 어렵게 재림(再臨 ?)에 성공한 친박세력들이 꼭 새겨 들어야할 내용들이다.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40도를 위협하는 살인더위에도 전기료 폭탄이 걱정돼 에어컨을 못켜고 밤잠을 설치는 민중들 앞에서 그 값조차 따지기 어렵다는 송로버섯에다 바닷가재, 훈제연어, 캐비아 샐러드, 샥스핀 찜, 능성어 회, 한우갈비 등으로 어우러진 질펀한 ‘궁전 식사’를 즐긴 이들은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말라고 했거늘, 지금 그 개들은 아예 밥맛조차 잃은 채 잔뜩 독을 품고 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