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의 고위 여성공무원 중 여성관련 부서에 있는 사람에게는 본 업무외에 또 하나의 일이 있다. 자치단체장의 부인을 수행하는 일이다. 군단위 역시 마찬가지다. 자치단체나 여성단체에서 주관하는 여성관련 행사에는 부인이 단체장을 대신해 자리를 빛내는 것이 관행처럼 돼있다. 이들이 함께 동행하기도 하지만 이는 매우 드문 일이다.
지난 8일 청주시 상당구청 민방위교육장에서는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충북여성한울림’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도 이원종 지사 부인인 김행자 여사와 나기정 시장 부인인 노양자 여사가 참석했다. 그런데 이들을 수행한 것은 개인비서가 아니라 충북도와 청주시의 여성관련 담당 계장이다.
행사참석 일정표를 손에 든 계장은 이들이 행사장에 들어와 관람을 하고, 여성계 인사들과 악수하며 담소를 나눈 뒤 행사장을 빠져 나갈 때까지 옆에 서서 모든 시중을 들어야 한다. 더욱이 행여 불편할세라 바짝 긴장하고 비서역할을 하는 공무원의 모습이 좋게 보일리 만무다. 이들은 도내 시·군에서 행사가 열릴 때는 다른 업무를 뒤로 미루고 따라다녀야 한다. 지방선거가 바짝 다가오자 최근 단체장 부인들의 나들이가 눈에 띄게 늘었다. 표를 의식한 이들은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유권자들에게 눈도장을 찍는다. 선거운동 하는 것이야 그렇다치지만 이들을 여성공무원들이 수행해야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해 단체장의 부인은 자연인일 뿐이다. 그래서 이것을 곱지 않게 보는 사람들은 “가뜩이나 모자라는 여성공무원들이 업무는 뒷전이고 단체장 부인들을 일일이 모시고 다니는 것은 행정력 낭비다. 왜 그 일을 여성공무원, 그것도 하위직이 아닌 계장급 혹은 과장급들이 해야 하는갚라며 “남성 공무원들이 업무에 충실할 때 여성공무원은 업무 이외의 일로 시간을 뺏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실제 충북도에서 계장급, 청주시에서 과장급이면 정책결정권자로 해야 할 일이 많은 고위 공무원이다.
또 모씨는 “어떤 행사에서는 단체장의 부인에게 가장 먼저 축사를 요구하는데 이것도 우습다. 마치 단체장이 2명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아무리 단체장 부인이라고 해도 자연인인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으냐”고 한마디 거들었다. 이런 관행은 관선시대 때도 있었지만, 민선시대에 들어와서 더 ‘극성’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자치단체에서는 예우차원에서 단체장 부인이 공식행사에 나갈 때에 한해 수행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꼭 이런 것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수행비서가 반드시 필요하다면 개인비서를 두고 그에 따른 경비 역시 개인이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여성관련 행사에 단체장의 부인이 참석하는 것도 불만이다. 당연히 단체장이 와야 하는 것 아닌가. 모든 행사를 다 챙길 수는 없다고 치더라도 중요한 일에는 참석해야 하지만 거의 모든 일에 부인들이 나서고 있다.
단체장이 행사장에 직접 와서 여성들의 요구를 들었을 때와 부인들이 전달할 때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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