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5년 하반기 증가율 전국 2번째
충북대병원·하나병원 1등급, 김숙자소아청소년과 5등급

정부 2020년 감기 항생제 처방률 50% 낮추기 대책 발표

도내 403개 병의원 54% 1·2등급, 4·5등급은 30% 정도

정부가 오는 2020년까지 감기 항생제 처방률을 절반으로 낮추는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을 지난 11일 발표했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항생제는 감염병 치료에 필수적인 의약품이지만 오·남용 때문에 항생제가 듣지 않는 내성균이 출현하면서 인류의 생존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더욱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35%가량 많아 항생제 내성균 위험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항생제 내성균은 신종 감염병과 유사한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지난 5월 영국에서 나온 보고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2050년이 되면 전 세계에서 연간 1000만명이 항생제 내성균 때문에 사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충북의 경우 각급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률이 전국 평균을 웃돌고 있다. 특히 2014년 대비 2015년 하반기 급성상기도감염(감기 증상)의 항생제 처방률 증가율이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세종시(10.2%)에 이어 2번째로 높은 8.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 당국의 지도감독에도 불구하고 충북의 항생제 처방률이 높아진 것은 우려할 만한 변화로 볼 수 있다. 이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근 발표한 ‘병원평가정보’를 토대로 도내 주요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항생제 오·남용은 다른 나라에 비해 심각한 수준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국은 항생제를 처방받는 사람이 하루 1000명 중 31.7명꼴이다. 이는 산출기준이 비슷한 OECD 12개국 평균 23.7명보다 35% 많고, 스웨덴(14.1명)의 2배를 넘는다. 이에 따라 한국의 장알균 반코마이신 내성률도 36.5%까지 치솟았다. 장알균에 감염된 환자 100명 가운데 36.5명은 반코마이신 항생제로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독일(9.1%), 프랑스(0.5%)에 비해서도 훨씬 높은 수치다.

최경림 제네바 대사에 따르면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들은 최근의 지카 바이러스나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메르스보다 항생제 남용이 인류 건강에 더욱 심각한 위협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0월 콜레라균이나 살모넬라균 감염 시 치료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는 항생제 콜리스틴(colistin)에 대한 내성을 가진 균이 중국에서 발견됐다는 논문이 공개됐다. 이후 다른 지역에서도 동일한 균을 발견했다는 논문이 국제학술지에 30편 이상 발표됐다. 이 세균이 대규모로 전파될 경우 콜레라균이나 살모넬라균 감염을 치료할 약이 없어질 수도 있다. 이처럼 항생제내성이 커지고 있음에도 기존 항생제와 다른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 중인 제약회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성 커지면 새 항생제 필요

항생제내성은 증가하는데 새로운 항생제가 나오지 않게 될 경우 제왕절개나 장기이식 등과 같이 일상화된 외과수술도 중단될 수 있다. 최 대사는 ‘의학의 암흑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고 지적했다. 경제적 파급효과도 만만치 않다. 영국 정부 산하의 항생제내성 검토위원회의 보고서는 현재 추세가 유지된다면 2050년에 세계적으로 연간 1000만명이 항생제내성으로 사망하고, 이에 따른 비용이 100조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는 것.

한국에서 항생제 사용량이 유독 많은 이유는 단순 감기에도 항생제를 처방받는 관행 탓이다. 감기를 포함한 급성상기도감염의 경우 대부분 바이러스가 원인이라 항생제 사용이 권장되지 않음에도 처방률이 44~45%에 달한다. 잘 듣는 감기약으로 여기는 인식 때문에 먼저 항생제를 요구하는 환자들도 있다. 그러다보니 병원측 역시 편의를 위해 쉽게 항생제를 처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조사결과 2015년 하반기(7월~12월) 17개 시도의 평균 항생제 처방률은 43.3%였다. 광주가 48.12%로 가장 높고 대전이 38.38%로 가장 낮아 무려 10%의 차이를 나타냈다. 대전은 지난해 2014년에도 38.3%로 가장 낮았고 충북은 40.76%로 평균보다 낮았다. 하지만 충북은 1년만에 상황이 크게 바뀌어 44.33%로 평균을 웃돌았고 증가율도 8.8%에 달해 세종시에 이어 2번째로 높았다. 전국의 평균 증가율이 1.5%인 것에 비하면 ‘도덕적 해이’로 볼 수 있는 증가율이다.

최병원 1등급, 증평 연세병원 5등급

도내에는 상급종합병원인 충북대학교병원 1곳을 비롯해 종합병원 10개소, 병원 16개소, 의원 376개가 운영되고 있다.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가운데 항생제 처방률이 1등급은 충북대병원, 하나병원 단 2곳으로 나타났다. 병원급에서는 청주 아이웰어린이병원(주성동) 씨엔씨푸른병원(강서동) 최병원(복대동)이 1등급인 반면 청주 김숙자소아청소년과(운천동), 증평 연세병원은 항생제 처방률이 매우 높은 5등급 판정을 받았다.

항생제 처방률 5개 평가등급은 처방 비율을 백분위로 나눠 매겨진다. 1등급은 백분위 40이하, 2등급 40초과~55이하, 3등급 55초과~70이하, 4등급 70초과~85이하, 5등급 85초과~100이하인 경우다. 결국 5등급 병원은 1등급에 비해 2배 이상 처방을 남용하고 있는 셈이다. 평가기간내 급성상기도감염 진료건수가 100건 미만인 의료기관은 ‘등급제외’ 판정을 받는다. 도내 병원급 의료기관 가운데 상당수는 ‘등급제외’에 해당돼 조사결과에서 빠졌다.

도내 조사대상 의료기관 총 403 개소 가운데 1등급은 164개소(40.6%) 2등급 56개소(13.8%) 3등급 59개소(14.6%) 4등급 66개소(16.3%) 5등급 58개소(14.3%)로 나타났다. 전체의 절반 정도인 54%는 1·2등급으로 양호한 편인 반면 4·5등급이 30% 정도에 달해 개선의 여지가 높았다. 5등급의 경우 진료과목별로 골고루 포함돼 특정 과목 편중현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라나는 세대를 진료하는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항생제 처방률 5등급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의료계 “무조건 줄이면 국민건강 위해”

이에대한 의료계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항생제 처방을 낮추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나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강제적으로 병·의원들을 압박하고 있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정부의 항생제 처방률 50% 감축 계획에 대해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2003~2012년까지 국가 항생제 내성 안전관리사업을 진행하면서 병의원에서 항생제 사용량을 많이 줄였다. 항생제가 독약처럼 나쁜약도 아닌데 아예 쓰지 말라는 것이냐? 내성부분은 가축에서의 항생제 사용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정부 정책을 따르겠지만 감기환자가 폐렴이나 합병증으로 악화될 경우 환자들은 의사 탓으로 돌릴 것이고 1차 항생제만 써도 되는 것을 3차 항생제를 써야하는 상황까지 악화될 수 있다. 대책없이 무조건적으로 항생제 처방을 줄이는 것은 오히려 국민건강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감기는 주로 바이러스 계열이 많은데 목이 빨갛게 부어오르거나 귀에 물이 찼다고 하면 바이러스에 의한 건지 세균에 의한 건지 감별할 수가 없어 병원에서 항생제를 그냥 준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소염진통제만 먹어도 좋아질 수 있다. 세균감염을 의심할만한 증상이 전혀 없는데도 항생제를 통상적으로 처방하는 경우는 근절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병원 처방률 ‘극과 극’ 어떻게 설명할까?
1등급 하나병원 “병원내부 위원회의 모니터링·논의 결과”
5등급 김숙자소아청소년과 “희귀난치성질환 정기환자 때문”

도내 10개 종합병원 가운데 청주 하나병원(원장 박중겸)이 유일하게 항생제 처방률 1등급을 받아 주목받고 있다. 하나병원의 전신은 1995년 한마음의료재단 설립과 함께 개설된 신남궁병원이다. 이듬해 청주 가경동에 신축병원을 건립하면서 1997년 11개 진료과목으로 종합병원 하나병원을 개설했다. 올들어 척추관절센터를 열고 치과 등 총 18개 진료과목으로 확대했다. 박 원장은 항생제 처방률 1등급 판정에 대해 “병원내에 분야별로 15개의 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진료 현장의 문제점을 상호토론하고 환자편의를 위한 대안을 늘 찾고 있다. 항생제 처방 문제도 약제위원회나 감염위원회 등에서 논의하며 모니터링 하고 있다. 아직은 완벽하다고 말한 순 없고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의료진 내부의 소통과 대화를 통해 자체적으로 항생제 처방을 자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숙자소아청소년과는 1982년 김숙자소아과로 개원한뒤 1999년 부설 ‘한국유전학연구소’를 개소했다. 이후 선천성대사질환, 희귀난치성질환 환자들을 특화 진료하고 있다. 김숙자 원장은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이유에 대해 “우리 병원은 일반 소아청소년과가 아니다. 희귀난치병이나 선천성 대사질환 환자 400여명이 청소년기를 지나서도 전국에서 진료를 받으러 온다. 이같은 환자들 때문에 항생제 처방률이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 일반 감기 환자들에게 항생제를 처방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유소아중이염항생제 처방도 5등급 판정을 받은 것에 대해 재질의하자 “우리는 의원이 아닌 병원이기 때문에 상태가 중한 경우 내원한다. 축농증이나 부비동 증상이 보일 경우 항생제 처방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주시내 똑같은 병원급 소아청소년과 3곳의 유소아중이염항생제 처방률은 3등급 2곳, 4등급 1곳으로 확인됐다.

항생제 남용 어떻게 줄일 수 있나?
농·축·수산업 항생제 과다사용도 제재수단 강화

정부는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수가를 조정해 감기 항생제 처방을 줄이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현재 항생제 처방률에 따라 의료기관 외래관리료를 1% 가산 또는 감산하고 있는데, 이를 2019년까지 3%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닭·돼지 등 농·축·수산 영역에서의 항생제 과다 사용 방지를 위해 수의사 처방이 필수인 항생제를 20종에서 40종 이상으로 늘릴 방침이다. 이미 발생된 내성균의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내성균 환자의 이동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의료기관 내 항생제 관리활동을 맡을 전문인력을 한시적으로 양성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인체 항생제 사용량을 20% 줄이고 감기 등 급성상기도감염 항생제 처방률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잡고 있다. 한편 의료계에서는 항생제 남용을 막으려면 신속한 진단 기법 개발, 의사의 적절한 처방, 환자들의 의료 지시 준수 등이 지켜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세균감염을 신속하게 진단하는 키트를 개발하면 항생제 처방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제안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청주 개업의는 “환자유치를 위해 가벼운 증상에도 항생제를 무분별하게 처방하는 경우가 있다. 의과대학에서 배운대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실제도 많은 의사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만 일부에서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환자들 역시 항생제를 감기치료약과 동일시해 의사에게 요구해선 안된다. 항생제는 ‘기적의 약’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남용하면 '침묵의 살인자'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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