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뼈를 묻은 작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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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뼈를 묻은 작가의 이야기
  • 충청리뷰
  • 승인 2016.08.1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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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의 포토 에세이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김상수 충북재활원장
 

▲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사진·글) Human & Books 펴냄.

사진작가 김영갑의 책<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덮고, 필시 이어도가 육화되어 잠시 살다간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전설이었던 섬, 그러나 실재하는 섬. 사람이 살기에 힘이 드는 중산간, 습하고 외진 곳을 찾아 자연의 내밀함에 말을 걸었던 사람, 그가 김영갑입니다. 거친 파도에 자신을 담군 채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어도처럼 말입니다.

문명과 문명이 집단화시키는 것은 곧 권력이 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길이라 말하고 진리라 일컫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하든, 집단으로부터의 인정여부가 그것의 가치를 말해줍니다. 그래서 김영갑의 삶을 만나고 나면, 답답함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왜 자신을 학대하지? 라는 반감도 생깁니다.

그러나 부끄러웠습니다. 사진으로 포착되어 돌아온 자연을 보며, 깊은 되새김과 순간의 황홀경만으로도 그는 온전함을 누렸으니까요. 그것만으로 그에게 삶은 온전한 풍요가 되었으니까요.

현대문명에서 우리는 무엇으로도 풍요롭지 못합니다. 이내 갈증을 채우려 이런 저런 것을 찾고, 싫증 느끼기를 반복합니다. 소비를 통해 존재의 기쁨을 확증하며, 자신을 문명의 벼랑으로 내몹니다.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진정 좋아하고 기뻐하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자연과 사람과 사물에 대한 인식이 얄팍합니다. 주는 것과 받는 것에 대한 산술이 우선순위가 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명예와 부가 따라야만 스스로도 가치를 인정합니다.

대자연의 절대 우위를 모르는 시대를 향해, 제주 사람이 되어야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그러나 그 가치를 몰랐던 것들을 그는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에서 드러내 보여주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오직 하느님을 신앙하기 위해 사막으로 나아갔던 교부들이 떠올랐습니다. 사막으로의 여정은 삶에 대한 도피가 아니라, 삶에 대한 처절한 이해와 열림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하느님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온갖 모순과 나약함이 제련되어 오늘날까지 교부들의 가르침은 영성의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제주가 그랬습니다. 거친 바닷바람과 숨 막히는 습한 기운이 신성함으로 남겨졌습니다.

김영갑의 초연한 선택

자본과 권력 모두를 갖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법재산을 형성한 기득권자들의 뉴스가 폭염보다 뜨겁습니다. 왜, 무엇을 위하여, 그들은 그렇게 많은 것을 쌓아올려야 하는 것일까요?

지도자의 품격을 상실한 사회구조는 자본과 불법 권력이 높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다수의 대중은 불법이든 합법이든 그 자본과 권력만을 해바라기합니다. 이른바 천민자본주의가 배태하는 사회의 가치는 갈수록 천박하고 얄팍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속도가 붙어버린 사회에서 사진 찍는 사람 김영갑의 선택을 사람들은 얼마나 비웃었을까요? 혹자는 잔칫집에 출사해서 돈이라도 버는 것이 현명하다 했겠지요. 높은 값에 사진을 팔아 이름값을 높이라고도 했겠지요. 하지만 굶주림과 혹한과 무더위조차, 제주사람들의 홀대조차, 그의 선택에는 고려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책을 통해, 타인의 선택과 타인이 가치를 가지는 것에 대해 너무 쉽게 평가하려했던 저의 어리석음을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의 외로움과 아픔과 탄식이 빚어낸 자연의 소리를 물질 가치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단지 그는 물질의 시대를 스치듯 건너간 온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용기 내지 못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래도 좋다. 오케이’라고 말해줍니다.

책을 덮고 나면 그가 겪은 루게릭이라 불리는 병의 고통이 아리듯 느껴집니다. 숨죽인 시대의 아픔을 묵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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