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발행인

▲ 한덕현 발행인

도종환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 위원장 선거에 단독 입후보했다. 최종 결과는 오는 17일 충북도당 대의원대회를 지켜봐야 알겠지만 지금으로선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차기 도당위원장이 확실해졌다. 19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전격 입문한 그는 지난 20대 총선 재선 이후 충북도당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아왔다.

이에 앞서, 지난 총선에서 도종환에 패한 새누리당 송태영은 원외 신분임에도 불구, 도당 운영위원회의 만장일치로 차기 도당위원장에 추대돼 눈길을 끌었다.  정통 당료 출신인 그는 17대 대통령 당선인 부대변인, 한나라당 상근부대변인, 국회 정책연구위원 등을 거치면서 이미 도당위원장을 역임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외형상으로 보면 둘은 또 재대결의 맞수가 됐다. 1년 앞으로 다가온 내년 대선을 지휘할 지역 수장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송태영의 입장에선 오랫동안 와신상담 준비해 온 지난 4.13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청주 흥덕을) 출마를 전혀 예상못했던 도종환에게 일격을 당한 터라 나란히 도당 책임자를 맡는 것이 남다를 수 있다.

한데,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둘에 대한 사석의 평가가 전임자들보다는 훨씬 더 기대감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이유가 뭘까? 이를 곰곰 되짚어보면 무슨 새정치니 세대교체니 하는 화석화된 이미지보다는 그들이 지금까지 보여온 ‘현실적인 것’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우선 든다.

노영민 전 의원의 갑작스런 총선불출마로 비례대표에 이어 지역구출마까지 결심하게 된 도종환의 선거 슬로건은 “시를 쓰는 마음으로 정치를 하겠습니다”였다. 기성정치인과는 차별화됨을 내세우고자 했지만 예상외로 역풍이 만만치 않았다. 표를 호소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은 얘기는 “시나 쓰지 무슨 정치를 한답시고...” 식의 냉소와 질책이었다. 그는 19대 총선 비례대표에 당선되던 날에는 지인으로부터 근조화분을 받았다고 한다.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시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특히 클 수밖에 없었던 것같다. 결국 도종환은 한국 사회에서의 ‘정치와 시’라는 함수관계를 유권자들에게 화두로 내던진 꼴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시와 정치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였다. 사회의아주 작은 현상에서도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하고 발견해내는 시인은 정치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회의 바로미터가 되어 왔다. 시는 정치에 대해 때론 협력자로, 때론 저항의 표상으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현실사회를 반추했다.

동서고금의 사례를 보더라도 뛰어난 정치가들은 시(詩)와 시가(詩歌)에 능했음을 알 수 있다. 옛 영국의 왕실에서 계관시인을 떠받든 것도 이런 정서적 맥락에서 해석하면 무리가 없다. 서로 아주 무관하게 멀어 보이는 시와 정치가 실은 아주 가까운 관계인 것이다. 우리에게 ‘가지 않은 길’로 유명한 시인 프로스트는 “문학과 정치는 서로 통한다”는 말을 남겨 현실사회에서의 둘간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단정했다.

도종환을 만나 보면 우리가 늘 접하던 정치인과는 분명 다르다. 사람들은 그의 어투와 행동이 여전히 시인 수준(?)이라고 입방아를 찧는다. 마치 이웃집 아저씨를 대하는 것같다고도 한다. 시와 정치의 교집합은 이렇듯 살갑게 다가와서 좋다.

송태영이 가까운 지인들과 깊은 얘기라도 나누게 되면 종종 등장하는 것이 하나 있다. 어린 시절 등 지난날의 가난 얘기다. 듣는 이로 하여금 울컥하게 만드는 이 소재는 조금도 과장된 게 아니다. 서민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 그의 선거 때 목소리는 그래서 믿음이 간다.

일찌감치 정당에 들어가 밑바닥부터 정치를 익혔기에 본인의 능력보다는 가문과 부모, 화려한 공직출신 등을 ‘빽’으로 하여 힘안들이고 정치에 입문한 사람들과는 분명 다르다. 꼭 큰 정치를 하고싶다는 그의 변함없는 욕망은 이렇듯 온 몸으로 부딪치며 닦아온 자신의 정치적 경험과 신념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소진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의 진정성은 지난 총선에서의 패배 이후에 더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당락이 확정된 후 상대인 도종환에게 “자랑스러운 청주를, 충청권 중심으로 우뚝 세워달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내며 깨끗이 승복했다. 그러고서 한 일은 큰 글씨로 ‘반성합니다’를 새긴 팻말을 목에 걸고, 도로 한복판으로 나가 지나가는 시민과 자동차를 향해 허리를 굽히는 것이었다. 달랑 현수막 하나로 이를 대체하는 후보들만 보다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계속되는 송태영의 ‘석고대죄’를 보면서 시민들은 그에게 우산을 씌워주면서까지 무언의 지지를 보냈다. 당시 그는 국민들의 뜻을 어긴 정치에 대한 반성과 함께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들을 향한 속죄의 심정으로 거리로 나섰다고 한다.

한국정치의 부패구조와 비교돼 툭하면 인용되는 덴마크와 스웨덴 등 국민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들은 흔히 ‘정치강국’이라고 불린다. 정치인들의 끗발이 좋아서가 아니라 정치인과 국민들이 서로 완벽하게 신뢰하고 함께 보조를 맞추며 민주주의 강국, 복지 강국을 구현하는데 따른 것이다. 당연히 국회의원들의 특권은 있지도 않고 그 개념조차 모른다. 이들 나라에선 ‘정치가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한다.

그렇다. ‘접시꽃 당신’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가 표현하고자 하는 도종환의 처절한 자기성찰, 인간사랑과 공동체의식이 송태영이 추구하는 뼈속까지 때묻지 않은 서민의식과 마주한다면 우리에게도 ‘꽃보다 아름다운 정치’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를 충북에서부터 시험할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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