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세평/ 백신영 베이지편집장

▲ 백신영 베이지편집장

청주 북문로는 얼마 전 거리를 정비하고 환경을 개선하면서 많은 변화를 했다. 다니는 사람도 많아지고 오랜시간 걸려있던 간판들은 새로운 간판으로 하나둘 바뀌기 시작했다.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땅값도 비싸졌다. ‘대림라사’는 그렇게 변화해가는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양복점이다.

80년대 중반 양복점을 시작한 강충열 사장님은 ‘옛날에 이 동네만 해도 열 군데가 넘게 양복점들이 있었어’라며 좋았던 그 시절에 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양복점들이 본격적으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만 IMF때다. 양복점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이 사라진 시기라고는 하지만 한가지 기술로 수년간 일해오신 분들에게는 정말 잔혹한 시기였을 것이다.

어느 정도 경제가 회복된 2000년대에도 양복점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강충열 사장님은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라고 그 이유를 짤막하게 설명해주신다.

나는 ‘그래도 최근에는 젊은 사람들도 맞춤 양복점들을 개업하지 않나요’라며 조금은 철없는 질문을 했다. 이번 질문에는 길게 대답해주셨다. 요약하자면 우리가 최근 흔히 볼 수 있는 ‘로드샵’들은 기성복을 수선하는 정도이지 정말 맞춤 양복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두가지에는 큰 차이가 있다며 맞춤 양복의 우수함을 설명해주셨다.

강 사장님은 “흔히들 이태리 명품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좋은 것으로 아는데 우리가 만들어내는 양복들이 그것들보다 훨씬 명품이야”라고 말했다. 놀라웠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좋은 기술을 정작 한국에서는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제기능대회를 나가면 한국사람들이 12연패를 할 정도로 기술이 좋아’라며 놀라운 이야기의 신빙성을 더해주셨다. 나 역시 무조건 외국의 특정브랜드를 고집한 적이 있다. 심지어 그 물건이 다른 것들과 비교됐을때 월등히 뛰어나지 않아도 그 브랜드의 상품이라는 이유로 무작정 구매하곤 했다. 무심하게 대중의 편으로 들어서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절박한 문제라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여러모로 안 좋은 상황이지만 그 오랜 기간을 버텨오신 분답게 강 사장님은 자부심을 잃지 않으셨다. 청주 양복협회의 회장직은 겸하고 있어서 해외에 나가 한국의 기술을 알릴 기회가 많다시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외국인들과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웃어 보이셨다. 더불어 맞춤 양복 기술들이 후세에도 전해질 수 있도록 힘을 써야 한다며 다짐을 내보이기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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