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오옥균 경제부 차장

▲ 오옥균 경제부 차장

협상장을 나오는 권옥자 분회장의 얼굴은 묘하게 흔들렸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표현이 그의 얼굴을 통해 이해됐다. 병원의 일방적인 결정에 파업을 결정하고 거리로 나온 지 850일이 지났다. 시청 앞 천막에서 벌써 두 번째 여름을 맞았다.

투쟁기간이 길어지면서 몇몇 동지들은 버티지 못하고 떠나갔다. 천막만 지키고 있다고 생활비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목구멍이 포도청인 이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찾았다. 최후까지 남은 스물세 명만 끝이 없을 것 같던 마침표의 현장을 함께할 수 있었다.

그냥 기다리기만 해서 얻은 복직이 아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투쟁가를 부르고, 쥐가 창궐하는 음습한 비닐 천막 안에서 수백일간 밤을 지새우며 만들어낸 결과다.

부탁하기도, 때론 윽박지르기도 했지만 그들이 느끼기에 청주시의 대응은 차가운 벽과도 같았다. 청주시로부터 답을 얻기 위해 단식도 했고, 분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업무집행방해를 했다는 고소장과 행정대집행이란 이름의 농성장 강제 철거였다.

그나마 밤이슬을 피하던 천막은 철제 펜스에 밀려 더욱 옹색해졌다.

25일, 노조원 전원 순차적 복직이라는 마침표를 찍었을 때 권옥자 분회장을 포함한 23명의 노당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제 집으로 돌아가 발 뻗고 잘 수 있게 됐지만 마냥 기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함께하지 못한 동지들이 생각났을 테고, 그동안의 투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힘들었던 기억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힘들게 했을까. 아마도 육체적 고통보다 더 큰 정신적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진실을 왜곡하는 사회의 시선이 그들을 힘들게 했을 것이다.

물론 일부의 시선이지만 사회적 약자이자, 피해자인 이들이 언젠가부터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되기 시작했다.

1차 공모가 무산되자 원인을 강경한 노조에게서 찾으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노조가 사사건건 운영을 방해해 일이 이 지경이 됐고, 노조 때문에 수탁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논리다. 전 병원장이 주장했고, 청주시가 거들었다. 3차 공모 때부터는 고용승계 조항을 삭제하고, 청주시의 거리두기는 더 확연해졌다.

25일 전격 타결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시민들은 노동자들이 엄청난 것을 얻기라도 한 듯 비꼬는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얻은 것은 ‘빠른 시일 내에 복직시켜 주겠다’는 약속뿐이다.

대부분 간병사인 이들은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갑자기 노동자가 사용자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이전보다 근무요건이 월등히 좋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지난 2년여의 투쟁을 통해 그들이 얻은 것은 그게 전부다. 그동안의 고생은 누구도 어떤 식으로도 보상받지 못한다.

소회를 밝히는 자리에서 권 분회장은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해 2년 넘게 절규하고 몸부림쳤다”며 “이 곳이 좋아서 돌아오려고 한 것이 아니다. 이 곳이 우리의 일터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청주시노인전문병원은 그런 존재다. 돌아가야 하는 직장이지만 결코 좋은 추억을 간직한 곳이 아닌, 애증의 장소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