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사노 요코와 그의 엄마 이야기 <시즈코상>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이연호 꿈꾸는책방 대표

▲ 시즈코상 사노 요코 지음 윤성원 옮김 펄북스 펴냄

우연의 일치일까? 이번에 잡은 책도 '엄마'가 중심에 있다. 지난번에 읽은 <종의 기원>도 이야기 중심에 '엄마'가 있었다. '악'의 근원을 살피는 자리에 '나'와 '엄마'는 다르지 않은 무게로 있었다. 어쩌면 작가 정유정이 응시하고 있는 시선의 끝자리에도 분화되지 않은 '나'와 '엄마'가 따로 혹은 같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책의 제목으로 쓰인 '시즈코상'은 저자인 사노 요코 여사의 '엄마' 이름이다. 사노 요코는 이미 <백만 번 산 고양이>로 국내에 잘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그런데 엄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시즈코상'이라니... 참으로 쌀쌀맞은 제목이다.

지금은 유명을 달리했지만, 이 글을 쓰던 때 사노 요코는 암 선고를 받고 시한부 삶을 살고 있었다. 치매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추억하고 기록하는 제목으로는 냉정함이 지나쳐 얄밉기까지 하다. 그것도 생의 끝자락에서라니… 책은 자전적 소설에 가깝게 읽힌다. 단순한 연대기를 따르지 않고 기억을 길어 올리는 이야기의 구조는 흔한 소설 작법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선은 엄마와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적절한 거리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좁혔다 늘리기를 반복하면서 엄마의 삶을 조망한다.

사노 요코는 평생을 엄마의 편애에 시달렸다. 열한 살에 죽은 오빠는 죽어서 엄마에게 영원한 그리움으로 남았다. 그럴수록 아들과 남편의 부재와 상실은 엄마의 삶을 더욱 단단하게 격리시켰다. 결코 내부를 드러내지 않는 철옹성을 구축하며 삶을 지탱하는 힘으로 작동했다. 그런 엄마 곁에서 살아 있는 사노 요코는 내내 엄마의 미움과 타박을 받아내야 했다.

“어린 네 살짜리 딸이 무심코 잡은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던 엄마였고, 사랑은커녕 증오와 무시의 시선으로 딸을 내려다보던 엄마였다. 허세 가득한 말과 행동으로 딸을 질리게 했던 엄마여서 어린 사노 요코에게는 몸서리칠 기억으로만 남았다.”

“치매에 걸려줘서 고마워”

사노 요코에게 '엄마' '시즈코상'은 그랬다. ‘엄마’와의 기억을 기록하는 그녀의 태도는 단호하고 냉정했다. 가족이므로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연민도 느낄 수 없는 때, 읽는 이는 어이없고 당혹했다. ‘엄마’와 ‘딸’의 거리가 먼 만큼 '엄마'와 '시즈코상'의 거리도 아득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저만치의 거리가 아득해서였을까? 애써 그 거리를 좁히려하지 않아서일까?

어느 순간 ‘엄마’가 아닌 힘든 시절을 반듯하게 살아 낸 여인 ‘시즈코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밤이면 완벽하게 화장을 하고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심지어 목걸이에 하이힐까지 챙겨 신는 엄마를 보면서 사노 요코는 “어쩌면 엄마는 약한 사람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비로소 ‘엄마’로서 견뎌야 했던 그 고통의 무게가 조금씩 전해졌다. 이야기는 조금씩 ‘시즈코상’에서 ‘엄마’의 자리로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시즈코상’과 ‘엄마’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시즈코상’과 사노 요코’의 관계가 이해 가능한 거리 안쪽에서 보였다. 마침내 ‘엄마’에게 이르는 ‘딸’의 연민과 공감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마친다.

서로의 거리가 좁혀지고 만져지는 호흡이 불편해지지 않을 무렵, 사노 요코는 비로소 뜨거운 화해의 말을 토해낸다. “치매에 걸려줘서 고마워. 엄마” “고마워요, 엄마. 저도 곧 갈게요” 엄마는 여든의 나이에 찾아든 치매로 인해 힘겨웠던 기억을 하나둘 지워내는 중이었다.

2010년 출간되었다가 출판사가 문을 닫은 탓에 사라졌던 원고를 경남 진주에서 지역의 문화적 힘을 배짱 삼아 출판을 하고 있는 출판사 펄북스가 다시 살려 냈다. 여러 모로 주목받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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