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 고구려비는 역사왜곡의 허구 입증
동북공정은 결국 한반도 통일 의식한 것

1979년 중원 고구려비의 발견은 국내 사학계의 일대 사건이었다. 그 때만해도 고구려는 한강유역까지만 진출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이 고구려비의 발견으로 고구려는 충주의 남한강 유역까지 영토를 확장, 한반도 전체에 영향을 미친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러한 고구려비가 오늘에선 중국 역사왜곡의 허구를 밝히는 결정적 근거가 되고 있다. 중국이 의도하는대로 고구려가 변방의 속국이기는 커녕 한반도를 호령한 명실상부한 고대국가였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해석은 아직도 분분하다. 당초 국가적 대응이 헷갈렸던 것도 그 저의를 정확하게 적시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우리나라 표기인 ‘간도’라든가 일본 제국주의가 사용한 ‘만주’라는 표현 대신 ‘동북’이라는 용어를 쓴다. 때문에 동북공정이라는 것은 결국 동북 3성 즉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에 대한 장기 프로젝트(工程)를 의미하고, 이의 핵심은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던 간도를 원초적인 중국영토로 귀속시키려는 저의를 넘어 고구려를 아예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시키려는 의도인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 조상의 혼과 얼이 서린 ‘만주벌판’을 의식에서조차 빼앗으려는 고도의 목적이 숨겨져 있다.

   
중국이 10년 전부터 은밀하게 동북공정을 추진한 배경은 한반도 통일논의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남북한이 통일될 경우 당장 간도문제가 한·중국간 첨예한 대립을 초래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이래 ‘간도’에 대한 언급이 양국 외교의 금기사항이었던 것도 ‘간도’라는 용어 자체를 꺼리는 중국 때문이었다. 간도는 1909년 간도협약을 통해 일제가 남만주에 철도 부설권을 얻는 대가로 청나라에 넘긴 우리나라 영토다. 그러나 한국을 배제시킨 이 간도협약은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을사보호조약이 2차대전 종전 후 무효가 됐기 때문에 역시 무효가 될 수 밖에 없다. 중국이 우려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지난 4일 열린우리당 김원웅의원 등 여야의원 59명이 서명한 ‘간도협약 원천무효 결의안’이 전격 국회에 제출됨으로써 그 성사 여부를 떠나 중국의 고민은 더 커지게 됐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헌법에 명시된 한반도의 영토조항을 개정하려는 운동이 전개되는 것도 중국을 긴장시키는한 요인이다. 1948년 공포된 헌법 제3조는 ‘우리나라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규정, 간도를 제외시켰다. 당시에도 논란이 컸으나 외교마찰을 우려한 피해의식의 발로였다는 비판을 뒤늦게 받는 것이다.

 만약 간도협약이 무효화되면 한중간 국경문제는 첨예한 대립을 보였던 1885년과 1887년의 국경회담을 넘어 조선 숙종 38년(1712년) 청이 일방적으로 세운 백두산 정계비까지 거슬러 올라가 다시 논의될 수 밖에 없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어차피 간도협약은 도마위에 올려지게 된다. 이럴 경우 한국 동포가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간도’는 반드시 흔들릴 것이고, 가설이지만 55개 민족으로 이루어진 중국 전체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이러한 징후는 중국이 점차 개방화 서구화로 가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견제에도 불구, 중국이 독립을 주창하는 티베트를 살벌하게 짓밟는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중국이 개방되고 점차 서구화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앞으로 중국의 가장 골칫거리는 역시 소수민족과 국경문제다. 구 소련이 붕괴된 후 나타나는 민족분쟁과 내전 등 각종 부작용(?)을 중국으로선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동북공정은 이러한 싹을 자르겠다는 의도를 다분히 품고 있다.

어쨌든 중원 고구려비가 동북공정 논란을 계기로 새롭게 인식되면서 충북에 서려 있는 고구려 역사에 대한 재조명도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충주시는 세계무술축제 기간중인 10월 5일쯤 국내 전문가들을 초청, 고구려비에 관한 학술회의를 가질 계획이다. 이 학술회의는 새로운 사실보다는 고구려비에 대한 재평가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지역 학계에선 차제에 북한 중국 일본 학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국제 학술토론도 한번 모색할 것을 주문한다.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만큼 고구려비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호기도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학의 교양과목에서도 빠질 정도로 천대받던 역사를 동북공정이 다시 일깨운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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