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 중원벌 내달리던 그 “기상”
중국 동북공정 계기로 새롭게 조명받는 충북의 고구려 혼

 고구려사 논란이 연일 식을 줄을 모른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계기로 촉발된 고구려사 논란은 충북에도 큰 화두를 던졌다. 중원 고구려비 때문이다.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의 중원 고구려비는 한반도 내의 유일한 고구려비로 그 역사적, 사료적 가치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인식과 조명은 미흡하기 그지없다. 특히 고구려 유적과 역사에 대한 지방자치단체들의 소극성이 도마위에 올려졌다. 

 자치단체의 몰역사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이번 동북공정을 계기로 점차 커지는 것이다. 중원 고구려비는 충북 내 고구려 역사의 존재를 실증적으로 알리는 유물이지만 해당 지방자치단체들의 그 흔한 행사 어디에도 이를 구체적으로 기리는 내용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다. 역사적 가치가 무색하게 천대시된 것이다. 

 한반도를 긴장시킨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역시 아이러니컬하게 충북의 고구려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있다. 지난 15일 충북대 강연에 나선 백기완씨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아예 역사에 대한 침략과 찬탈로 규정하며 철저한 역사관에 입각한 접근과 대응을 주문했다. 학계에선, 고구려를 자신들의 변방국가쯤으로 보고 속국화하려는 중국의 의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게 충북의 중원고구려비라고까지 한다. 고구려가 한반도 전역에 진출하고 영향을 미친, 명실상부한 한반도를 대표하는 고대국가였음을 중원고구려비가 입증한다는 것이다.

 중원 고구려비(국보 제 205호)는 지난 1979년 아마추어 역사 애호가들로 구성된 예성동호회에 의해 최초 발견돼 세상에 알려졌다. 비석의 4면에 글씨가 각인돼 있음을 예사롭지 않게 여긴 예성동호회측이 당시 단국대 박물관 정영호교수팀에 연락하게 됐고 이를 조사한 정교수팀이 고구려비임을 처음 확인한 것이다. 비문은 약 800여자로 되어 있는데 이중 판독된 것은 지금까지 200여자 정도에 불과하다. 전면은 그런대로 판독이 가능하지만 좌·우측면은 몇자만 보이고, 뒷면은 성한 글자가 거의 없다. 때문에 비문에 대한 해석은 판독 가능한 글자를 이리저리 연결시켜 얻어낸 것이다.

 고구려와 신라가 국경문제로 다투다가 화친을 맺었는데 고구려가 형님국가 신라가 아우국가가 된다는 내용과 고구려 영토가 소백산맥을 경계로 조령과 죽령에 이른다는 내용으로 보아 학계에선 백제를 침공한 장수왕 때쯤 영토확장에 따른 정계비를 세운 것으로 여긴다. 비의 형식과 글씨체가 만주 퉁구의 광개토대왕비와 유사함으로써 발견 당시부터 주목을 받았다. 

 비문 판독이 중원 고구려비의 비밀을 밝힐 결정적 단초가 되지만 워낙 비문의 훼손 정도가 심해 그동안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 1999년 타계한 우리나라 금석학의 대가 임창순선생도 생전에 “중원 고구려비는 영구 미제로 남을지도 모른다”고 언급할 정도로 비문의 추가 해독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지난 2000년 1월 한·중·일 학자들이 참석한 국제 워크숍에서 적외선 촬영을 이용한 정밀 재판독이 시도돼 24자를 추가로 판독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21년만의 성과로 추가 판독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였지만 최첨단 기술도 비문의 글자가 완전 훼손된 상황에선 무력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학계에선 중원 고구려비와 연계된 유물이나 유적의 출현을 학수고대해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가금면 장천리 장미산성(사적 제 400호), 가금면 누암리 고분군(충북기념물 36호), 가금면 봉황리 마애불(보물 제1401호), 단양 영춘면 온달산성(사적 제264호) 등이다.

 그러나 장미산성은 최근 충북대 차용걸교수팀에 의해 백제가 축조한 것으로 확인됐고, 발견되기전 이미 심하게 도굴된 누암리고분군은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신라 분묘로 인식된지 오래다. 제작 연대가 미상인 봉황리 마애불 역시 고구려적 ‘색채’가 강하지만 딱 짚어 고구려 불상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며,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된 온달산성은 그 실체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근거보다는 아직도 각종 설화 및 구전에 의거하는 이른바 ‘전설따라 삼천리’의 성격을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중원 고구려비의 비밀을 밝힐 어떤 징후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중원 고구려비의 판독은 임창순선생의 우려대로 영원이 미제로 남을지도 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