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과 만들고 없애기 바쁜 대학들
“짧은 시간에 교수들의 전공전환 제대로 될까"

 자긍심이요? 시쳇말로 목숨이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상황인데 그런 걸 찾는다는 건 사치예요. 학생 없는 선생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니 이 악물고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아야죠.”

 교수사회, 특히 지방 사립 전문대 교수들의 위상이 동요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 사회에서 이런 얘기는 전혀 새로운 사실조차 못된다. 일반 사회만 제대로 실상을 몰랐을 뿐이다.
 개교 10년이 넘는 지역의 모 전문대를 예로 들어보자. 이 대학은 결코 길지 않은 지난 세월 실로 헤아리기 힘들만큼 숱한 커리큘럼과 학과를 만들었다가 인기가 시들해 지는 징후가 보이면 또다시 다른 학과를 설치하는 등 몸부림 쳐 왔다. 학생 없는 학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맞춤교육’ 내세워 인기학과 만들기 풍조 만연

이러다 보니 어떤 학과는 불과 1∼2년 만에 사라진 것들도 있다.

 모 대학은 올해 영상애니메이션과를 비롯, 귀금속세공디자인과, 로봇완구과, 방사선과, 읠정보과, 레저스포츠과, 부동산과를 신설하고 컴퓨터를 이용한 설계기술을 가르치는 캐드(CAD)응용설계과 는 없앴다. 이에 앞서 2002년도에 바이오 생명과, 골프경영과, 작업치료과를 신설했던 이 대학은 2005년에는 인터넷 만화과, 건강다이어트과, 플라워 아트과, 애완동물과 등을 신설하는 동시에 골프경영과(올해 신설한 레저스포츠과에 흡수)를 비롯해 로봇완구과 등 10여 개 학과를 없앨 계획이다. 로봇완구과는 신설한 지 불과 1년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

1년 만에 없어지는 학과도 생겨

 이 대학의 사례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립 전문대와 비교할 때 학과의 신설-폐지 관행이 유별나게 두드러진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타 대학들도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처럼 대학들의 재빠른 변신 노력이 집주되고 있는 데 대해 근본적이고 중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상아탑이 일반사회와 완전히 분리된 속에서 독야청청 남아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런 변신노력을 자연스런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소리가 있는 반면 “이처럼 정신 없이 새로운 학과가 만들어지고 없어지는 상황에서 과연 교수들이 새 학과에 필요한 전문 지식과 교수법을 제대로 익혔겠는갚하는 회의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물음에 대해 대학사회 내부에서조차 “교수들이 불과 6개월, 길더라도 1∼2년 만에 전공전환을 위한 새로운 학과 지식을 충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우려한다. 다시 말해 아무리 실용학문을 위주로 가르치는 전문대라고 해도 이런 짧은 준비기간으로는 충실한 교육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짙은 회의가 일고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해당 교수들도 “뼈를 깎는 전공전환 노력을 기울인다지만 당초의 전공과목에 비해 강의내용이 부실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러니 정상적인 학사운영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해 보인다.

   

정상적인 학사운영 기대하기 힘든 실정

 앞에서 경기도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충북출신 교수의 예를 들었지만, 당사자인 K교수가 자신의 끊임없는 전공전환 이력에 대해 “같은 대학에 있는 동료 선후배 교수는 물론 본인의 케이스가 대학사회와 일반 사회에 노출돼 알려지는 것이 꺼려진다”며 간곡히 익명을 부탁한 것도 이같은 비판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최첨단의 이론은 못 가르치더라도 전문대답게 실용적 교육을 위해 교수들이 밤이나 방학기간을 이용해 대학원에 재진학, 전공을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는 현실은 교수로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적자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만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오히려 대학교육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신입사원을 다시 가르쳐야 할 지경”이라며 현실성을 외면한 대학 교육체계에 대해 볼멘소리를 터뜨리는 기업 현실을 감안할 때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 평준화의 미명아래 대학교육의 대중화를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니 고등교육이 제 위상과 역할을 찾지 못하고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게 지금 우리의 실상이다. 아울러 이런 학문의 천박성으로 고등교육이 근본적으로 부실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한마디로 대학교육이 너무 가벼워지고, 학문조차 천박하게 시대유행만을 좇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제 아무리 학문연구를 업으로 삼는 교수라고 하지만 최소 수년에서 십년 이상 가르쳐온 본래의 전공과목을 하루 아침에 버리고 이웃 경계의 학문, 심지어 전혀 다른 학문을 단기간에 습득해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물음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 특히 사립 전문대들이 생존경쟁에 내몰린 끝에 학문의 경박성이라는, 교육적으로 가장 경계해야 할 함정에 스스로 빠져드는 것 아닌지 자문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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