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끌 만한 학과면 뭐든 만드는 대학들
교수들도 “전공 바꿔 살아남자”…’맞춤교육’명분삼아

주교야습(晝敎夜習;낮엔 가르치고 밤에 배우는) 신풍속도 유행

고등학교 찾아가 학생 구걸하는 교수들

# 1년 간 교환교수 생활을 마치고 7월말 미국에서 귀국한 Q대학의 A교수는 깜짝 놀랐다. 전문대중에서는 비교적 신입생 모집률이 높은 등 상황이 양호한 것으로 알려진 Q대학이건만 2학기 수시 모집을 앞두고 신입생을 끌어오라는 특명이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이 교수는 다른 동료 교수들처럼 인문계 고교는 물론 실업계 고교를 발로 찾아다니며 선생님들에게 대학을 홍보하고 진로상담 때 학생들이 Q대학에 많이 지원하도록 협조해 줄 것을 머리 숙여 부탁하고 다녔다. 하지만 A교수는 어느 순간 발걸음이 굳어버렸다. 한 고교 교무실 앞에 ‘전문대 교수 출입 사절’이란 문구가 덩그러니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전공 바꿔 학과신설 “목숨 보전하자”# 청주 C고교와 미술분야에서 명성이 자자한 서울의 H대학교를 졸업한 충북출신 K씨. 현재 경기도 Y 전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K교수(44)는 이름을 밝히지 말아줄 것을 전제로 자신이 시도하고 있는 일종의 모험을 담담히 얘기했다. K 교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였다가 인테리어학과로 전공학과를 바꿨다”고 했다. 인테리어학과가 학생들에게 더 인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K 교수는 이것도 부족했는지 서울 K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 조명학을 공부했다. 그는 지난 7월 졸업논문을 발표했다. 이 뿐이 아니다. 그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피부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등 소위 웰빙 신드롬이 일 것을 미리 예견, 스킨케어 분야에 대한 공부도 병행했다.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분야이지만 “쓸모가 있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K 교수가 올 초 대학 측과 사전에 조율, 2학기 수시 모집을 앞두고 ‘뷰티스타일 학과’를 신설해 교육부에 승인요청을 한 것도 이런 치밀한 사전 준비 덕분이었다.

# 한 명의 신입생이라도 더 받아들이기 위해 대학들이 쏟는 ‘맞춤교육’의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새 학과목을 공장에서 제품 만들듯 그때그때 만들어 내는 대학들을 보노라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모 전문대 교직원들은 아예 명함에 맞춤 교육(tailored education)을 지향함을 명기하고 다닌다.

“비인기 학과를 없앴을 수 밖에 없다면 인기를 끌만한 학과를 새로 만들어서라도 신입생을 놓쳐선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대학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교수직 유지를 위한 학과 신설에 대비, 전공 전환 준비를 미리 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낮엔 강의 밤엔 대학원 수강 위해 서울 오가는 교수들 많아

#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위 인기 없는 학과목 교수들이 받아들이는 위기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사립 전문대 경우 재단 측으로부터 “정원을 못 채우면 폐과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상의 협박성 통고(?)를 즉각 받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몰려들 만한 새로운 학과를 만들기 위해 낮에는 가르치고 밤에는 타 대학의 대학원 학생으로 변신, ‘주교야습(晝敎夜習)’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한때 유행처럼 회자되던 ‘평생교육’이라는 말이 상아탑의 지존으로 여겨지던 ‘교수님’들의 적자생존을 위한 처절한 구호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점잖게 말하면 교육 수요자이지만 그들에겐 곧 ‘돈 줄’이자 생명줄인 학생들의 입맛에 맞춰 재빨리 학과제도를 변경하기 위해 변신을 시도하는 교수들의 모습은 눈물겹다.

# 영동대학교는 전문대는 아니지만 학생 모집에 매년 어려움을 겪으면서 위기감에 사로잡힌 지 오래다. 그런데 이 대학의 화학과 및 수학과 교수 2명이 지난해와 올들어 잇따라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기간은 1년. 대학 측은 “해당 교수들은 자비로 유학을 갔지만 학교에서도 유학비용 일부를 지원해 주고 있다”며 “이들 교수는 현지 대학에서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는 한편 학교의 교과과정 개발을 위한 준비로써 선진 대학들의 학과를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교수가 귀국한 다음 영동대에 어떤 학과가 신설될 지 벌써부터 궁금증이 인다.

# 주성대학은 올해 부동산학과를 신설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이 학과의 학과장은 경제학 교수며 또 다른 교수는 토목건축학 전공자다. 경제학을 전공한 김홍구 학과장은 “경제학의 하위 부문인 부동산학으로 전공을 옮긴 셈”이라며 “동료인 윤득호 교수 역시 토목건축학과에서 부동산학으로 전환한 케이스”라고 소개했다. 윤 교수는 “토목공학과 부동산학과 사이에 연관관계가 없지만 평소 관련분야에 대한 연구를 통해 미리 준비해 온 덕에 전공을 전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몇 년전 우리 사회에 크게 유행했던 “바꿔, 바꿔, 확 바꿔“라는 구호가 이제 교수사회에까지 상륙, 점령하고 있다.
/ 임철의 기자

변화에 가장 적극적인 주성대학
최근 2년 새 4명 전공전환 유도
교육부도 충격 없는 구조조정위해 지원

주성대학은 도내 전문대 중에서도 교수들의 전공전환 노력을 가장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편. 지난해 2명에 이어 올해 2명의 교수를 교육 인적자원부가 시행하는 연수지원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는 데 성공했다. 전공전환을 돕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교수들에게는 1인당 연간 1500만원의 연수비(보조금)가 지원된다. 대학은 교수들의 전공전환을 돕기 위해 강의 시수를 최소화하고 학교업무를 덜어주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평가지원과 관계자는 “대학의 구조조정은 시대적으로 회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그렇다고 대학교 교원의 신분보장 문제를 도외시 할 수 없어 지난해 처음으로 구제차원에서 전공전환 지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전문대 특성화를 돕기 위해 총 61억 9000만원을 지원했는데, 충북에서 전공전환 교육과정에 들어간 교수는 3명”이라며 “대학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돼야 할 교수들이 구제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지만 어쨌거나 가능하면 유사전공으로 전환토록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철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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